질문

by 동유럽말갈족

솔직히 안 궁금하다. 내가 지금 참여하고 있는 프로젝트의 궁극적 목표가 뭔지, 타임라인을 줄이기 위한 효율적인 방안이 뭐가 있을지, 부장님이 혼자 10분째 구구절절 설명하시는 ‘의견’이란 게 도대체 뭘 말씀하고 싶어 하시는 건지 정말 하나도 궁금하지가 않다. 궁금은커녕 그냥 귀 닫고 눈 감은 채 저기 사무실 뒤편 바닥에 자리 깔고 자는 게 나을 것 같은데 나는 알아야만 하는 직장인이니까 안광 바랜 눈깔을 갈아 끼울 친절함은 없어도 최대한 공격적이지 않은 말투로 되묻는다. “그래서 지금 가장 우선순위를 둬야 하는 게 어떤 걸까요?”, “초안을 빨리 드리면 2일 안에 검토해 주실 수 있을까요?”, “제가 이해한 바가 맞을까요? “


가슴 뛰는 질문을 해본 게 언제였더라. 좋아하는 상대에게 이미 눈치챘던 커피 취향을 물어보곤 “저도 에스프레소 도피오 좋아해요” 배시시 웃으며 거짓말 치던 순간도 있었고 다니엘 시저를 좋아한다는 낯선 사람에게 “미친 저도요. 어떤 노래를 가장 좋아하세요?” 흥분하며 곡마다의 감상평을 일장연설 늘어놓던 순간도 있었다. 질문은 궁금한 것을 묻는 행위이지만 동시에 나를 드러내는 표현이기도 해서 내가 하던 많은 질문들은 너랑 이야기하는 게 너무 좋으니 너를 더 많이 알 수 있게 해줘라는 암묵적인 고백이기도 했다. 손으로 파내도 곧 다시 메꿔지는 질퍽한 펄 갯벌처럼 대화가 끝날 것 같아도 하고 싶은 질문은 계속 차고 넘쳤고 나는 채워지는 바닷물에 자꾸만 갈증이 났었다. 상대방의 바다에 서서히 잠기고 있는 줄도 모르고 말이다. 알고 싶은 게 너무 많은 걸 어떡해.


아 이건 과거인가 꿈인가. 저 멀리서 “윤정 님 이거 우리가 맞는 거죠?”라는 멍청한 질문이 아득히 들려온다. 삼백오십 번 듣던 질문에 삼백오십 번 설명드렸는데도 들려오는 삼백오십일 번째 질문. 나는 또 하는 수없이 말한다. “네. 전에 말씀드린 바와 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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