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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항해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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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토리 Feb 05. 2023

바다에서 표류하다,
두 번째 이야기

고갈나기 시작한 식량





새로운 앵커링 장소 - 로밍을 위한 이동


회사에서 지정해 준 위치에서 30분 정도 거리까지 로밍 포인트를 찾아 이동했다. 아주 약간이지만 기존 앵커링 장소보다 육지에서 더 가까워져 로밍이 가능한 곳이었다. 우리는 그 장소에 앵커링을 하고 걱정하는 가족들에게 메일의 짧은 텍스트가 아닌 더 긴 연락을 할 수 있게 되었다. 그 인터넷이 뭐라고 사람이 그것만으로도 어느 정도 안정이 되었다.


며칠이 지나지 않아 회사에서 공문이 왔다.


회사의 이야기는 이러했다. 현 상황을 해결하는데 얼마나 걸릴지 모르니 일단 최소 인원 체제로 변경에 들어갈 것이고 회사의 재정 상황 및 법정관리 이야기는 업데이트되는 대로 추후에 이야기를 해준다고 했다.


그때 당시에는 하루하루 지나감이 너무 아쉽고 회사 측에서 제대로 된 이야기가 없어 너무 두려웠었는데 지금 생각해 보니 회사도 처음 맞는 법정관리여서 일 처리를 하는데 어느 정도 시간이 필요했던 것 같다. 배에서 실습을 하는 실습생들은 학교에서 회사 측으로 공문이 와서 내려갈 계획을 잡기 시작했고 외국인 부원들도 해당 국가에서 연락이 와 귀국 계획을 잡기 시작했다.


실습생*들은 근로계약을 맺지 않은 학생 신분이기에 그 상황에서 내리는 게 맞았다. 해기사가 되기 위해 총 1년간의 실습 경험이 필요하기에 이런 불안한 상황에서는 빨리 다른 회사 배에 승선하여 경험을 이어나가야 했다. 그리고 외국인 부원들도 현 회사가 월급을 제대로 줄 수 있을지 없을지 모르는 상황이었기에 다들 계약만료를 원했고 에이전트를 통해서 하선 및 귀국을 진행하였다.


결국 항해 파트에 선장, 1항사, 2항사, 3항사 이렇게 4명 / 기관 파트에 기관장, 1기사, 2기사, 3기사(나), 조기장 이렇게 5명 / 조리장 1명 총 10명의 사람만 배에 남았다.


사실 항해를 하지 않을 것이기에 본선에 많은 사람들은 필요하지 않았다. 이 앵커링 기간 동안 배가 고장 나지 않게 유지할 최소한의 인원만이 필요했다. 내릴 사람들은 다 내렸고 우리 배는 최소 인력으로 전환되었다.


우리 모두는 이 기다림이 장기화될 것이라는 걸 암묵적으로 알고 있었다.



새로운 문제의 시작 - 음식과 청수 부족


정말 이 기다림이 언제까지 되는 건지 알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이 기간 동안 제일 끔찍했던 건 외로움과 미래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뿐만이 아니었다.


바로 음식과 물이 문제였다.


배에는 여러 명의 사람이 타기에 대형 식당 냉장고같이 아주 큰 냉장고가 존재한다. 육고, 어고, 야채고 이렇게 구분되며 라면, 통조림 등 상온식품을 보관할 장소도 따로 있다. 하지만 스무 명이 넘는 사람들이 삼시 세끼를 항상 먹어야 하기에 많은 식량이 있더라도 금방 동이 나버린다. 그렇기에 항해 중 기항지에서 부식을 싣게 된다. 우리 배의 경우 한국을 기항하는 선박이었기에 한국에서 부식을 실었는데 싱가포르 앞바다에서 대기 기간이 길어지니 그 많은 식량들이 조금씩 떨어져 가고 있었다.


부식을 보급받으려면 싱가포르에 입항해야 하는데 만약 입항한다면 그와 동시에 억류가 예상되는 상황이었기에 새로운 식재료는 꿈꿀 수 없는 상황이었다. 신선한 야채는 이미 바닥이 났고 오래 보관 가능한 쌀, 냉동된 고기, 얼린 떡과 빵 그리고 레토르트 식품 위주로 식단이 바뀌었다.


본선의 선원이 반 정도로 줄었지만 그래도 날이 갈수록 먹는 식단은 부실해져 갔다.


배에서 거주하던 방 - 다행히 음료수와 식수는 넉넉했다


물도 마찬가지였다.


일단 표류가 어느 정도 장기화될지 모르기에 단수를 하기 시작했고 변기 물은 바닷물을 끌어올리거나 빗물을 받아서 해결했다. 어느 정도 배의 정비도 마친 상황이었고 작업복 빨래를 위해 물을 소비할 수 없기에 정말 하루에 최소한의 1,2 시간 정도의 순찰을 제외하고는 일을 하지 않기로 했다.


물을 만들려면 조수기*를 사용해야 하는데 조수기는 운항 중 생기는 폐열로 작동시켜야 하기에 정지되어 있는 상황에선 물을 새로이 만들 수가 없어 무조건 절수가 답인 상황이었다.


느린 인터넷으로 동료들과 연락을 해보니 우리 배는 싱가포르 앞바다에 있었지만 대다수의 배들은 상황을 모르고 입항하여 억류를 당하거나 부산 앞바다에서 대기를 하여 빠른 인터넷으로 새로운 직장을 구하거나 하는 중이었다.


배가 멈춘 지 한 달도 안 되는 기간이었지만 이런 상대적인 상황에 기본적인 의식주도 제대로 보장이 안되고 직장에 대한 문제까지 겹친 이런 상황은 짧은 기간임에도 사람을 상당히 지치게 만들었다.


하지만 이 즈음부터 생존과 별개로 또 새로운 힘듦이 시작되었다.


세 번째 이야기에서 계속.




실습생 : Apprentice officer - A/O (실습 항해사), Apprentice engineer - A/E (실습 기관사)로 승선을 하며 일을 배우게 된다. 회사별로 약간은 상이하지만 한 달에 약 30만 원 정도의 열정페이만 받고 일을 배운다.

Fresh water ejector - 조수기 : 물의 비등점은 압력이 내려가면 낮아지므로 내부의 압력을 진공 700mmHg 정도로 만들어 해수를 낮은 온도에서 끓여서 청수로 바꾸어주는 장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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