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의 탄생
2023년 6월 7일 그날이 선명하다
2023년 6월 7일의 기억
초록색의 포대기에 싸여서 "응애, 응애" 소리를 내며 눈을 뜨고 세상을 보는 아이의 모습. 하루의 선명한 기억 중에서도 내게 가장 선명하게 남아 있는 기억이다.
2023년 6월 7일 하루는 32년 내 인생에서 가장 특별했던 경험이었다. 정말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장면 하나하나가 내 머리에 확실하게 남아있다.
와이프와 산부인과에 들어갈 때까지만 해도 거울에 비친 우리를 카메라에 담으며 웃었었는데 그 감정은 이내 아내를 따라 들어간 수술실 옆 대기 병실에서 초조함으로 바뀌었고 막상 나를 한 번도 뒤돌아보지 않고 쿨하게 수술실로 들어가는 아내를 보며 대단하다는 생각과 함께 나의 초조함은 큰 걱정으로 바뀌었다.
아빠는 밖에서 대기하라고 하는 간호사 선생님의 말을 듣고 나간 수술실 밖 대기실에는 남편들이 서너 명 모여있었다. 티브이가 틀어져 있었지만 아무도 보지 않았고 나 역시도 아무런 소리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의미 없이 핸드폰만 계속 바라보고 있었다. 기다리는 다른 예비 아빠들이 하나둘씩 불렸고 이젠 내 차례가 되었다.
첫 울음소리
와이프의 이름이 불렸고 보호자인 나를 찾는 소리가 들렸다. 수술실 복도로 들어가니 정말 아주 작은 아이가 포대기에 싸여 우렁차게 울고 있었다. 아이가 이쁘다는 생각보다는 세상에 건강하게 나왔구나 정말 다행이다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빠르게 아이의 사진을 몇 장 찍었고 어쩔 줄 몰라하는 나를 두고 간호사 선생님은 아이를 데리고 들어가셨다.
막상 아이가 나온 걸 보고 아이의 상태가 괜찮은 걸 보고 나니 걱정되는 건 산모였다.
출산에 대해서 유튜브로 본 지식 밖에 없는 나는 혼자 생각하기에 산모가 너무 늦게 나온다고 느꼈다. 기다리는 시간은 실제보다 몇 배로 느리게 흘러가는 느낌이었다. 그렇게 꽤 오랜 시간을 기다렸던 것 같다. 마침내 와이프가 나왔고 제왕절개를 했기에 병실로 가기 전 상태를 좀 지켜보고 올라가야 한다고 하여 옆의 안정실로 같이 들어갔다. 아직 마취가 덜 깨어있는 그 모습을 보니 내가 한건 하나도 없지만 울컥해서 눈물이 났다. 별 탈 없이 아이와 산모 모두 건강해서 너무 고마웠고 이 아이를 낳기 위해 고생한 와이프에게 감사했다.
와이프의 상태가 괜찮은 걸 보고 얼른 올라가 아내가 들어갈 병실에 짐을 옮겨두고 정리를 했다. 그리고는 다시 돌아와 상태가 괜찮아질 때까지 손을 잡고 옆에서 대기했다.
시간이 30분 정도 흘렀을까? 이제 병실로 이동한다고 했고 그전에 아이를 한번 더 보여주셨다. 와이프의 얼굴 옆에 아이를 두고 보여주셨는데 이제야 좀 실감이 났다. 아이는 두 눈을 뜨고 입을 오물거리고 있었는데 그 모습이 정말 너무나도 예뻤다.
와이프는 그 순간이 꽤 기억에 강하게 남은 것 같다. "오빠, 내 애라서 그런가? 정말 세상에서 제일 예뻤어." 지금도 와이프가 하는 이야기이다.
병실로 돌아와서
움직이지 못하는 와이프를 간호사 선생님과 같이 병실 침대로 옮기고 나니 안정이 되었다. 뭔가 이제야 끝났다는 느낌? 안정이 되니 그제야 배가 고파와서 처제가 가져다준 샌드위치를 허겁지겁 먹었다.
참 아빠는 크게 하는 게 없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하루종일 걱정만 엄청 한 것 말고는 사실한 게 없긴 했다.
양가 부모님께 산모와 아이의 상태를 말씀드리고 움직이지 못하는 와이프를 대신하여 신생아실 면회 시간이 될 때마다 가서 아이의 모습을 담아왔다. 코로나로 인해 병원에 보호자 한 명만 있을 수 있었고 그 한 명이 나였기에 양가 부모님께서는 당연히 아이를 보실 수가 없어서 보내드릴 사진과 영상이 필요했다. 신생아실 앞에 가서 전화를 걸었고 바로 커튼이 걷히며 아이가 등장했다. 배에 와이프의 이름을 정말 크게 붙이고 있었는데 사실 그게 없었어도 우리 애라는 걸 알겠다는 느낌이 들었다. 찰나의 시간밖에 아이를 보지 못한다는 사실이 너무 아쉬웠다. 그렇게 세 번의 면회를 마치고 정신없이 잠에 빠져 들었다.
밤 새 와이프의 상태를 체크하러 간호사 선생님들께서는 바삐 움직였고 몇 번의 깨고 잠듦을 반복하니 어느새 병실에서의 둘 쨋날이 밝아 왔다.
두 번째 이야기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