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 그대로

17. 오늘은 생각보다 나쁘지 않았다

by 이헨

아침에 눈을 뜨는데 유난히 피곤했다.

밤새 잠을 설쳤는지 온몸이 무겁고 출근 준비를 하는 내내 마음이 자꾸 뒤로 쳐졌다.

거울 속 내 얼굴은 붓기도 덜 빠진 채 무표정으로 하루를 버틸 준비를 하고 있었다.


회사에 도착하니 여전히 정신이 없었다.

누군가는 급하게 찾아오고 또 누군가는 실수를 해서 문제를 수습하느라 시간을 썼다.

솔직히 이런 일이 하루 이틀도 아니고 이미 익숙해져야 할 것 같은데

어쩐지 요즘은 그 '익숙함'조차도 지겹고 버거워졌다.


점심시간.

딱히 입맛도 없었지만 억지로 밥을 먹고 돌아오는데

구내식당 옆 작은 화단에서 민들레 한송이가 피어 있는 걸 봤다.

그냥 스쳐지나칠 수도 있었는데 이상하게 그 노란색이 눈에 밟혔다.

잠깐 멈춰서서 그 작은 꽃을 바라보는데 괜히 웃음이 났다.

'참 별거 아니구나' 싶으면서도 그 별거 아닌 게 내 하루를 조금 가볍게 만들어줬다.


오후엔 옆자리 동료가 커피 하나를 책상에 살짝 올려뒀다.

"오늘 좀 지쳐 보여서."

그 말 한마디에 속이 묘하게 따뜻해졌다.

요즘 사람들에게 이런 작은 배려를 기대하지도 않았는데

그게 생각보다 큰 위로로 다가왔다.


하루 종일 사소한 일에 치이고 마음이 바닥을 긁는 것 같은 날이 이어지다가

오늘은 뜻밖의 작은 순간들이 내 하루를 덜 힘들게 만들어줬다.

민들레 한 송이와 따뜻한 커피 한 잔, 그리고 별거 아닌 말 한마디.

이 정도면 나쁘지 않은 하루였던 것 같다.


사실 요즘은 매일 같은 감정으로 하루를 버텨내는 게 지쳐서

에세이도 쓰면서 내가 너무 같은 이야기만 하고 있나 싶었는데

어쩌면 이런 작고 소소한 것들이 반복되는 일상 안에서

조금씩 감정을 돌보는 법을 배우고 있는 건 아닐까 싶다.


오늘은 그냥 그걸로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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