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 그대로

5. 말은 하지 않아도 마음은 흘러간다

by 이헨

크게 화를 내고 나면

어디선가 들려오는 내면의 소리가 있다.

"너 너무한거 아니었어?"

"좀 더 참을 순 없었을까?"


그런 날이면 면

나는 내가 나를 꾸짖는 기분이 든다.

화를 낸 것도 지쳤는데

이젠 스스로를 탓하기까지 해야 하다니.

이중으로 피로해진다.


하지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그렇게까지 화를 냈던 건

사실 이미 오래전부터 내 감정이 도움 요청을 보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말 대신 쌓이고 침묵 대신 참다보니

결국 폭발밖에 방법이 없었던 거다.


그래서 그날 이후,

나는 감정을 기록하기로 했다.


분노가 올라오기 직전

몸이 어떻게 반응했는지.

누구의 말에서, 어떤 표정에서,

내 마음이 가장 크게 흔들렸는지.


아주 작은 메모부터 시작했다.


"오후 1시, 숨을 세 번 크게 쉬었다.

말을 삼켰는데 그게 내 마음을 더 무겁게 했다."

"오늘은 억울했다.

내가 참는 게 이제 미덕 같지 않다."


그런 기록이 쌓이다 보니

내 감정의 패턴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다.

무작저 터트리지 않기 위해,

나는 미리 '감정의 기미'를 알아차릴 수 있어야 했던 거다.


요즘 감정이 올라오면

가능하면 한 박자 늦게 반응하려고 한다.

심호흡을 하고 고개를 살짝 돌려 눈을 감는다.

아무도 모르는 사이에

나 혼자 나를 지키는 루틴이다.



감정이 휩쓸고 간 자리에

무너진 나만 남지 않기 위해서.

나는 오늘도 나를 기록한다.

살아 있는 마음을 느끼기 위해,

그리고 다시 숨을 고르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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