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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프라스타 Jul 06. 2022

지우개 사용금지

제대로 피드백받기 위해서

'사랑은 연필로 쓰세요.'


오래 전, 전영록이 노래한 곡입니다.


사랑을 쓰다가 쓰다가 틀리면 지우개로 지우면 되니까 연필로 쓰라는 것이죠. 말이 되는지는 모르겠지만 재미있습니다.


그런데 저는 이런 노래를 부르고 싶습니다.


'수학은 볼펜으로 쓰세요.'


문제를 풀다가 풀다가 틀려도 지우지를 못하니까 말입니다.


저는 수학은 운동과 비슷하다고 늘 생각해 왔습니다.


폼생폼사


운동은 폼으로 시작해서 폼으로 끝납니다. 자세가 안 좋으면 특이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발전이 더딘게 사실입니다. 그래서 어떤 운동이든 처음 배울 때는 자세를 바로 잡는 것에 레슨의 초점을 맞춥니다. 피드백의 연속이죠.


수학도 피드백이 매우 중요합니다. 심지어 정답을 맞힌 경우에도 논리의 정당성이나 풀이 과정의 간결성을 체크해야 합니다. 오답의 피드백은 더 복잡합니다. 오답이라도 답을 구했는지 못 구했는지, 시작은 했는지 못했는지, 문제는 제대로 이해했는지 아닌지, 계산 실수인지 개념 착각인지, 문제 해결에 필요한 개념을 모르는 건지 아니면 떠올리지 못한 건지 등 피드백할 내용이 넘쳐납니다.


문제는 연필로 쓰면 이 모든 것이 날아가 버린다는 겁니다. 많은 학생들이 모든 도전 과정을 깨끗이 지운 채 그야말로 nothing상태로 질문합니다. 그러면 피드백할 게 없습니다. 그저 문제를 다시 풀어주는 것이 전부입니다. 물론 그 학생은 조금만 지나도 그 문제를 다시 풀지 못할 겁니다. 그 문제를 못풀게 만든 진짜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으니까요.


연필로 쓰더라도 피드백받을 수 있게 기록을 잘 남기는 학생이 있기는 하지만, 아예 처음부터 볼펜으로 문제를 푸는 습관을 들이면 지우개로 지우는 습관까지 한번에 해결됩니다. 그래서 수학은 볼펜으로 써야 한다는 겁니다.


 가르치는 강사는 차고 넘치는데 막상 피드백 잘하는 코치는 주변에서 잘 찾아보기 어렵더군요. 하나하나 자세하게 피드백해주는 것은 시간도 많이 걸리고 에너지도 많이 소모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학생이 틀리든 맞든 자신의 풀이 과정을 빠짐없이 써서 질문하면 어떤 강사든지 즉답이 아니라 피드백 모드로 바뀔 겁니다. 피드백은 학생의 권리입니다만, 권리 위에서 잠을 자면 누구도 그 권리를 챙겨주지 않습니다.  


오늘의 결론/지우지 말자. 왜? 그래야 제대로 된 피드백받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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