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무지가 흑역사로 남지 않으려면.
인터넷에서 한 사진을 보았다. 1950년대, 인종차별이 지금보다 훨씬 노골적으로 만연했던 시대. 미국의 어느 백인 학교에 ‘도로시 카운츠’라는 학생이 흑인으로서는 최초로 입학하게 된다. 아마도 입학식이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사진 속 도로시 뒤에 앉은 한 백인 학생이 멍청한 표정을 지으며 그를 조롱하고 있고, 도로시는 이를 무시하려는 듯 굳은 얼굴로 정면을 응시한다.
과연 이 학생은 시간이 흘러 자신의 못난 행동을 후회하고 반성했을까? 나는 높은 확률로 그랬을 거라고 믿는다. 상식이 있는 사람이었다면, 적어도 시대의 변화에 적응할 수 있는 지능을 갖춘 사람이었다면 그랬을 것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의 개과천선 여부 따위에는 관심이 없다. 이 이름 모를 백인 학생의 멍청한 얼굴은 그렇게 사진으로 기록되어 인류사의 영원한 흑역사로 남았다.
놀랍게도 왼손잡이라는 이유로 차별을 당하던 시절이 있었다. 약 25년 전, 그러니까 내가 90년대를 살아가던 시절에는 남들처럼 오른손이 아니라 왼손을 더 편하게 쓴다는 이유로 갖은 잔소리와 간섭에 시달려야 했다. 왼손을 쓴다고 글씨를 다른 아이들보다 못 쓰는 것도 아니고, 입으로 들어갈 숟가락이 코로 들어가는 것도 아닌데 그땐 다들 그리도 유난을 떨었다.
“우리 가족 중에 왼손잡이는 너밖에 없다.” 굳이 말하지 않아도 다 아는 사실을 수차례 말씀하시며 핀잔을 주었던 아버지, 공책의 네모난 칸에 삐뚤빼뚤한 오른손 글씨를 적어 넣으며 느꼈던 굴욕감, 옆자리의 짝지더러 ‘수빈이가 왼손을 쓰진 않는지 잘 지켜보라’고 시켰던 선생과 그로 인해 내가 느꼈던 압력, 왼손으로 글을 쓰거나 그림 그리는 나를 동물원의 원숭이 보듯 신기하게 구경했던 아이들의 시선. 지금도 문득 내가 왼손잡이임을 인식하게 되는 순간이면 이러한 과거의 기억들이 자동으로 소환되곤 한다.
중학교, 고등학교에 차례로 진학하면서 세상은 점점 내가 왼손잡이라는 사실에 관심을 덜 보였던 것 같다. 다만 그 치졸한 차별과 억압은 나 같은 왼손잡이뿐만 아니라 전교생을 괴롭히는 데까지 그 범위를 넓혔는데, 그 명목은 바로 ‘두발 규제’였다.
예술계 학교와 같이 비교적 규제로부터 자유로웠던 곳 출신이 아니고서야, 두발 규제 문제로 스트레스 한번 안 받아 본 내 또래 세대가 있을까. 지금은 물론이고 당시에도 납득할 수 없는 이유로 몸에서 자연히 자라나는 머리털 따위도 마음껏 기를 수 없었던 시절. 이렇게 말하고 보니 마치 까마득한 옛날 일인 것 같지만, ‘버즈’와 ‘원더걸스’, ‘빅뱅’과 같은 그룹이 최전성기를 보냈던 불과 15년 전의 이야기다.
그렇게 ‘하지 말라’고 난리를 치면 도리어 안 하던 짓도 하게 된다. 그래서 중고등학교 시절엔 모두가 얄팍한 규제 안에서나마 멋을 부려 보겠다고 발버둥을 쳤었다. 머리카락 좀 길렀다는 이유로 단상에 불려가 구레나룻을 꼬집히고, 체육복 차림으로 운동장에 나란히 엎드려 몽둥이찜질을 받는 등 한심하기 짝이 없는 어른들의 체벌이 아이들의 몸과 마음을 멍들게 했다. 그런데 내가 참을 수 없었던 건 그들이 가하는 폭력이나 그로 인한 모멸감만이 아니었다. ‘얼마나 할 짓이 없으면 이딴 거나 눈에 불을 켜고 잡는 거야?’ 나는 머리카락에 대한 그들의 기괴하리만치 집요한 집착이 어쩐지 징그럽기까지 했다.
외모에 지나치게 신경쓰는 탓에 학업에 집중을 못하거나 불량 청소년이 될 가능성을 막기 위함이라는 게 명목이었다지만, 어린 내게도 규제의 진짜 이유는 따로 있다는 게 자명해 보였다. ‘그냥 꼴 보기 싫으니까.’ 예나 지금이나 어른들이 무작정 하지 말라는 것들에는 논리나 이성적인 이유가 결여되곤 한다. 수긍할 수 없는 규제에 굴복해야 했던 그 시절의 기억은 지금껏 내가 일부 ‘꼰대’ 기성세대에게 갖고 있는 반감의 불씨와도 같다.
과연 내가 90년대 한국 사회의 간절한 바람대로 오른손잡이가 되었을까? 어림도 없지. 이는 오히려 왼손잡이에 대한 사회의 편견과 차별을 극복하고 글씨를 90도로 눕혀서 쓸 수 있는 천재 어른이 되었다는 성장 서사를 만들어 줬을 뿐이다. 나는 90%의 오른손잡이들 속에서 왼손으로 밥을 먹는 10% 인간이라는 데 남몰래 자부심을 느낀다. 딱히 특출난 데가 없다 보니 이런 쓸데없는 부분에서 괜히 우쭐해지는 것. 어쩌면 이것이 왼손잡이를 억지로 교정하는 데서 발생한 심각한 부작용인지도 모르겠다.
머리카락을 마음껏 기르고 원한다면 색상도 바꿀 수 있는 지금, 나는 군대에 있었던 약 2년의 시간을 제외하면 10년 간 변함없이 평범한 머리 모양을 유지하고 있다. 외모에 정신을 빼앗겨 일에 집중을 못하거나, 남의 돈을 빼앗는 불량 어른이 되고픈 충동을 느낀 적도 없다. 이는 내가 그 시절의 중학생, 고등학생이었더라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설령 내가 휘황찬란한 모양에 무지개 색상으로 머리를 물들인 학생이었다 하더라도 간섭받을 이유는 전혀 없지만 말이다.
어른들의 간섭으로부터 자유로운 어른이 된 지금, 나를 교정하려 들거나 아니꼬운 시선으로 바라보는 이는 더 이상 없다. 간혹 일 년에 한두 번 꼴로 “왼손잡이시네요?” 하고 신기해하는 사람들이 있는 정도다.
졸업 후 간혹 두발 규제의 잔존 여부가 궁금해질 때면 중고등학교에 재학 중이던 사촌동생들에게 질문하곤 했다. “너희 학교에도 아직 두발 규제 같은 거 있어?” 사촌동생들이 말하길, 요즘엔 그런 거 없단다. 그러면 나는 세상 참 좋아졌다는 듯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아무도 궁금해하지 않는 내 시절의 이야기를 꺼낸다. “우리 때는 두발 규제가 어느 정도였냐면...”
남들과 다르다는 이유로 차별받고, 모발이 자라는 것과 같이 자연스러운 현상을 꼬투리 잡혀 갖가지 괴롭힘에 시달리는 일은 한반도의 어느 왼손잡이 고등학생만 겪는 일이 아니다. 성적 지향, 성별, 장애, 외모, 인종, 가치관 등의 면에서 ‘보편성’의 바깥에 위치한다고 여겨지는 이들이 차별을 넘어 생존까지 위협받는 세상이니까. 고작 왼손잡이로서 받은 알량한 차별을 예로 들며 이들과 비교한다는 게 몹시 송구스럽지만, 다행히도 세상은 이들을 차별하는 것이 왼손잡이를 유난스럽게 바라봤던 것만큼이나 한심한 일이었다는 걸 조금씩 깨닫고 있는 듯하다.
문득 궁금해진다. 2010년대에 태어나 청소년 시절의 내 나이가 되었을 왼손잡이 아이들은 과연 부모나 선생, 친구들에게 어떤 소리를 들으며 자라고 있을까? 여전히 어딘가에는 선생에게 구레나룻을 꼬집힐까 봐 두근거리는 심장을 부여잡고 교문을 통과하는 아이들이 있을까?
그 시절, 왼손잡이의 존재를 긍정하지 못하고, 길게 자라난 머리카락을 눈꼴사나워하며 제 잣대로 통제하려 했던 그들의 어리석은 순간을 포착한 사진이 남아 있다면 어땠을까 상상해 본다. 얄팍하고 보잘것없는 명목으로 자신의 혐오를 표출한다면, 과거 도로시 카운츠를 조롱했던 어느 백인 학생처럼 못난 얼굴이 평생 역사에 남게 된다. 나는 그 시절 그들의 무지와 폭력을 이처럼 역사로 남기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