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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수빈 Apr 04. 2024

대한민국 표준 서른 남성

표준보다 높은 마음으로.

높은 마음으로 살아야지

낮은 몸에 갇혀 있대도


9와 숫자들 - 높은 마음 中

     

  ‘대한민국 표준 서른 남성’을 주제로 한 어느 유튜브 영상을 보았다. 프로그램은 딱 서른 살에 해당하는 출연자들에게 자신의 외모, 학력, 연애 횟수, 수입, 자산 등이 표준에 속한다고 생각하는지, 이에 더해 표준의 기준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묻는다. 내 나이 또래 남성들이 한 자리에 모여 서로를 직접적으로 비교하는 포맷도 나름 신선했지만, 그들이 생각하는 표준 혹은 평균의 기준을 알 수 있어 흥미로운 실험이었다.

  하지만 영상을 보다 보니 왠지 점점 울적한 기분이 든다. 외모나 학력, 연애 횟수까지야 그러려니 했지만, 수입과 자산에 관한 대목에선 어쩔 수 없이 현실 자각 타임이 찾아온 것이다.


  영상 중간에 친절하게 자막으로 소개되는 통계청 자료에 의하면 30대 초반 남성의 평균 월 수익은 약 336만 원이라고 한다. 이는 물론 억대 연 수입을 벌어들이는 극소수와 평균을 밑도는 수익으로 살아가는 다수의 합을 나눠 단순 계산한 수치에 불과한 것이리라. 다만 또 한 명의 30대 초반 남성인 나로서는 당장 기대하기 힘든 수준의 자산을 가지고 있거나, 누구나 알 만한 수도권 대학을 나온 출연자가 당연하다는 듯 ‘이 정도면 평균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하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난 대체 무슨 인생을 살아온 거야?’ 하는 자괴감이 밀려왔다.


  그렇다면 이쯤에서 나를 객관적인 지표로 정리해 보자. 30대 초반의 나이, 평균보다는 살짝 큰 키, 외모는 대부분의 한국 남성들이 착각하듯 ‘이 정도면 나쁘지 않다’고 믿는 편이고, 부산 지방 대학교 출신이며, 연애 횟수는 세 번, 퇴사 후 수입은 처참한 수준, 모아 둔 돈은 죄다 영화 만드는 데 끌어다 썼고... 어쩐지 정리할수록 머릿속이 어지러워진다.

  ‘표준’이야 어쨌건 사회가 만든 기준일 뿐이라지만, 같은 출발점에서 시작한 이들이 가뿐히 뛰어넘은 허들을 나는 넘지 못해 저만치서 서성이고 있다는 걸 자각하는 경험은 꽤 복잡한 감정을 안겨준다. ‘남이야 어떻게 살든 그저 내면이 충만한 삶을 살면 돼.’ 그 말을 끊임없이 되뇌어야 겨우 내 존재를 긍정할 수 있다. 누군가처럼 당장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사업을 시작하거나, 주식에 재산을 투자할 모험심이나 열정 같은 건 내게 없기 때문에.


  내 분야에서 도약의 가능성을 찾아볼까. 가장 의욕적으로 덤벼들 수 있는 일이 영화인 만큼 그것으로 성공하고 싶은 마음은 있다. 누구나 알 만한 감독이 되어 각종 영화제나 시상식 등 좋은 자리에 초청받고, 대중이 사랑하는 영화를 만들어 돈도 많이 벌 수 있다면 좋겠다. 그러나 이는 현실적으로 극도로 낮은 가능성에 기대를 거는 것이고, 만일 가능하다 해도 오랜 시간이 지나야 실현될 수 있을 것이다.


  웬만한 방법으로는 가망이 없겠다 싶을 때도 반드시 돌파구를 찾아야 한다. 그 어떤 기준에서도 평균 이상의 30대 남성이 될 수 없다면, 이런 지표를 벗어나 고유의 매력을 찾는 노력으로 내 존재를 드높일 수 있지 않을까. 

  방구석에 처박혀 먼지에 질식해 가는 통기타를 닦아 본다. 케이팝 댄스 학원에 등록해 비루한 몸뚱이를 여과 없이 비춰 주는 전신거울 앞에 서 본다. 하지만 통기타를 튕겨 보고, 최신 케이팝 댄스를 배워 봐도 내게 그다지 큰 매력이 더해진 것 같진 않다. 

  어떤 것은 다가가려 하면 할수록 멀어지고, 그것을 체념했을 때 한 발짝 성큼 다가오기도 한다. 매력적인 존재가 되겠다고 아등바등 애쓰는 것보다 더 매력 없는 게 또 있을까. 그렇다면 아무 소용없는 매력 개발도 이쯤에서 포기한다.


  결국에는 묵묵히 하던 일을 계속하는 것밖에 별 수가 없어 보인다. 내가 가진 조그만 재능과 경험으로 돈을 벌고, 영화를 만드는 삶을 지속할 수밖에. 또래 30대 남성들과의 대결에선 처참히 깨진 것 같지만, 10년 후 40대 남성들과의 대결에서는 그나마 좀 비벼 볼 수 있지 않을까? 사실 그때는 그들과 비교해 앞서는 외모나 자산 따위가 아니라, 누구와도 비교하지 않고 홀로 서는 높은 마음을 더 갖고 싶다.


  표준이야 어쨌건, 고유의 매력으로 빛나는 사람이고 싶다. 어쩌면 앞으로 내가 이루게 될 성취가 나를 그런 사람으로 만들어 줄까? 모를 일이다. 지금이야 빈약한 통장 잔고와 별 볼 일 없는 낮은 몸에 갇혀 있지만, 언제까지고 높은 마음으로 살겠다는 의지만큼은 잃지 않으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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