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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수빈 Mar 17. 2024

영화인 농담 클리셰

당신의 유머는 업그레이드가 필요하다.

  독립영화에 관심이 깊은 사람이라면 한 번쯤 들어 봤을 만한 어느 단편영화 전문 배급사 대표님의 강연을 들을 기회가 있었다. 단편영화 배급 업무를 시작하게 된 계기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십수 년 간의 과정에서 겪었던 시행착오를 들을 수 있는 흥미진진한 시간이었다. 막연히 상상만 해 왔던 영화 배급 업무의 이면을 알 수 있어서 더 궁금해지려던 차, 대표님이 무심한 듯 농담 한마디를 툭 던졌다.

  “혹시 ‘내가 영화 배급 일을 해보고 싶다’ 하는 분이 계신다면... 다시 한 번 잘 생각해 보세요.”

  그 말에 곳곳에서 웃음이 터졌다. 반응이 좋아서인지, 대표님은 강연이 진행되는 내내 이런 자조적인 농담을 수차례 반복했다. 그런데 문득, 그 농담이 내게 어떤 기시감을 불러일으켰다.


  영화 일을 하다 보면, 영화를 하는 스스로의 처지를 한탄하며 쓴웃음 짓는 동료들을 흔히 마주하게 된다. “내가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영화를 해 가지고...” 그러면 그 옆에서 무거운 촬영 장비를 잠시 내려놓고 담배를 피우던 다른 스태프가 ‘그러게 말이다’ 하는 표정으로 담배 연기를 허공에 흩날리는 식이다.

  가끔 영화와는 거리가 먼 일을 하는 사람들이 영화에 대한 막연한 동경심으로 질문을 할 때면, 어김없이 쓴웃음을 지으며 의미심장한 말을 던지곤 한다. “OO 님은 영화 같은 거 절대 하지 마세요.” 마치 인생의 쓴맛 삼키듯 담배를 빨아들이며 사촌 동생에게 “넌 담배 같은 거 배우지 마라”라고 충고하는 못난 삼촌처럼.

  그러나 습관처럼 이런 말을 내뱉는 영화인들의 얼굴에서는 직업에 대한 피로나 환멸과는 사뭇 다른 마음을 엿볼 수 있다. ‘이렇게나 힘든 일을 해내고 있는 나’에 대한 일종의 자부심과 자기 연민 같은 것. 이것은 결국 ‘영화라는 건 애정 없이는 아무나 할 수 없는 특별한 일’이라는 인식에서 나오는 게 아닐까.


  이 같은 영화인의 자의식을 발견할 수 있는 건 매년 영화제마다 꼭 한 편씩은 볼 수 있는, ‘영화 만드는 사람들’을 소재로 제작된 숱한 독립영화에서도 마찬가지다. 영화의 한 장면, 촬영 과정에서 배우나 스태프와의 갈등, 재능에 대한 고민, 그밖에 돌발 상황 등 온갖 고초를 겪은 주인공(대게는 감독이다)이 돌파구를 찾지 못해 좌절하거나 영화 자체에 환멸을 느낀다. 영화를 완성하지 못하거나 아예 그만둘 위기에 처한 주인공. 그러나 한동안 달콤한 자기 연민에 빠져 있던 그는 절망 속에서도 한 줄기 희망을 발견하고, 스스로를 위로하는 결말을 선물 받는다.

  충분한 재능이 없어서, 경제적으로 어려워서, 육체적 또는 정신적으로 힘들어서. 그밖에 여러 모로 거지같은 현실에 부딪히지만 결코 놓치고 싶지 않은 영화라는 꿈. 나 역시 그들과 같은 상황에 있는 사람으로서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지만, 이제는 그보다 한 발짝 더 나아간 지점을 상상할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여러분은 영화 같은 거 절대 하지 마세요.” 나는 더 이상 이런 농담에 웃지 않는다. 시시한 영화 클리셰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이는 어쩐지 군대에서 겪은 고생담을 늘어놓으며 애써 알량한 자부심을 숨기는 것과 별다를 게 없어 보인다. 실제로 영화 일은 육체적, 정신적으로 굉장히 고된 일이고, 하나의 작품을 낳는다는 데서 큰 의미가 발생한다. 하지만 그것이 남다른 자부심을 가질 만큼 다른 분야의 일과 구분되는 특별함이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영화는 결국 ‘예술’이라는 결과물에 앞서 ‘노동’이라는 과정임을 알고 있기에. 

  하지만 나 또한 때로는 이런 뻔한 농담의 유혹을 뿌리치기 힘들다. 내가 진행하던 영화 제작 수업의 수강생 분들이 호기심 어린 질문을 던질 때면, 사촌 동생이 배우나 감독 일을 해보고 싶다는 막연한 바람을 비칠 때면 여지없이 피식 웃으며 말하곤 했다. “영화는 하는 게 아니라 보는 거야.” 그러면 마치 그들과 나눠야 할 짐을 기꺼이 홀로 짊어지기로 결정한 사람마냥 으쓱한 기분이 된다.


  지금도 그 지겨운 농담을 반복하고 있을 영화인들을 만류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때로는 그런 은근한 자부심이 내가 사랑하는 일을 지속하는 큰 힘이 되기도 하니까. 대신에 그 농담 패턴에 작은 변화를 줘 보자고 제안하고 싶다. 언젠가 영화에 대한 비영화인들의 환상이 말끔하게 걷히고 나면, 전과 같은 농담은 더 이상 사람들을 웃기지 못할 것이다.

  그러니 이제부터라도 맑은 눈으로 이렇게 말하고 다니자. “영화 하길 잘했다!”, “여러분, 꼭 영화 하세요!” 당장은 사람들을 웃기지 못할 것이다. 오히려 어리둥절해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모든 영화인들이 더 이상 엄살 피우지 않기로 약속하고 영화 일을 찬양하고 다닌다면, 비영화인들의 머릿속엔 점차 이런 마음이 새싹처럼 돋아날 것이다. ‘어라, 다들 영화 일은 엄청 힘들다고 하던데 그게 아닌가 보네... 그럼 나도 한번 해볼까?’

  그렇게 여러분의 꼬임에 넘어간 비영화인들이 영화 현장에 발을 들이고, 그곳에서 불지옥을 경험하게 된다. 시간과 사람에 정신없이 치이다 잠깐 짬을 내어 카스타드 한 입 베어 물던 그의 입에서 눈물 한 줄기와 함께 이런 말이 새어 나온다. “씨발, 영화 하길 차암 잘했네...”

  그제야 그는 ‘영화 하길 잘했다’는 말의 참뜻과 기성 영화인들의 농간을 깨닫고 박장대소한다. 영화판에 기어이 발을 들이게 만들고서야 웃음이 터진 것이다. 이로써 당신의 게으른 농담에 시간과 깊이, 아이러니라는 차원을 더했다. 게다가 인력난으로 허덕이는 영화 현장에 인재를 공급하는 생산성까지 획득했다.


  어쨌거나 지겨운 농담은 슬슬 그만하자는 눈치를 주고 싶었다. 클리셰도 그것이 클리셰임을 알아야 이후로 반복하지 않거나, 오히려 그것을 비틀어서 신선한 재미를 만들어낼 수 있는 거니까. 게다가 우린 항상 ‘올드’해지는 것을 경계해야 하는 영화인이니까. 진짜 자부심은 ‘다른 일보다 어렵고 특별한 일을 한다’는 착각에서 찾을 게 아니라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고민하는 일을 한다’는 사실에서 찾아야 하는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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