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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수빈 Mar 21. 2024

정말로 잘하는 사람은 드물다

차라리 못난이와 비교하기를 권장합니다.

  영화제 상영작 목록을 볼 때면 경쟁부문에 오른 감독들의 나이를 먼저 확인하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나와 비슷한 또래 감독들의 성과를 보며 질투하고 비교하는 못난 습성을 나도 모르는 새 가지게 된 것이다. 저들은 그동안 뭘 먹고 무슨 일을 겪으며 살아왔기에 나보다 뛰어난 작품을 만들 수 있게 된 걸까? 나이가 중요한 게 아니라지만, 물리적으로 비슷한 양의 시간을 살아온 이들이 확연히 구별되는 재능으로 내가 못 이룬 성취를 이뤘다는 건 꽤 큰 타격을 준다. 


  나보다 시나리오를 잘 쓰는 사람, 영화를 잘 만드는 사람, 일을 잘하는 사람이 지천에 널려 있는 것 같다. 습관적으로 접속한 인스타그램에는 오늘도 저마다의 성공과 행복을 자랑하는 이들로 넘쳐난다. 이름 있는 영화제에 초청되어 본 지도 벌써 2년이 지났고, 더 이상 자랑할 것이 남아 있지 않은 나는 ‘이런 걸 왜 하고 있나’ 하는 자각이 찾아오면서 조용히 계정을 비활성화했다.

  세상은 때로 나 같은 평범이들이 살아 숨쉬기가 버거울 만큼 재능 있고 잘난 사람들로 넘쳐나는 것처럼 보인다. 특히 소셜 미디어에서 우리는 그런 이들이 자랑하는 멋진 일상의 구경꾼으로 전락하기 쉽다. 일상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시간을 포착해 수많은 팔로워들이 들여다보는 공간에 전시하는 데 의미를 두는 이들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반편에 오프라인에서는 세계의 대다수를 구성하는 평범한(적어도 그렇게 보이는) 사람들 혹은 못난이들을 수시로 마주친다. 길바닥에 칵칵 침을 뱉어 대는 ‘코리안 라마’들, 술에 취해 비틀거리며 소리 지르고, 대중교통에서 시끄럽게 떠들고, 다짜고짜 반말로 시비를 걸고, 노상 방뇨를 하는 사람들. 그밖에 일일이 묘사하기도 벅찬 인간들의 아름답지 못한 모습을 차고 넘치게 구경할 수 있다.


  전에 한 유명 코미디언이 강연에서 했던 말이 꽤 인상적으로 남았다. 누군가를 인생의 멘토로 삼으려면 존경받아 마땅한 인물이 아닌, 한심한 인간들을 대상으로 해야 된다는 말. 나 역시 이 말에 깊이 동감하는데, 살면서 한심한 추태를 보이는 사람들을 마주치거나, 그런 이들로 인해 화를 입을 때면 기분이 상하기보다는 오히려 안도의 한숨을 내쉬게 된다. ‘휴, 적어도 난 저렇게 살지 않아서 참 다행이다!’

  남과 나를 비교하지 않는 게 정신 건강에 이롭다는 건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다. 하지만 내 마음이 어디 내 뜻대로 작동하는가. 마음을 고쳐먹으려면 우선 무의식적인 습관부터 달리하는 게 좋다. 소셜 미디어 앱을 삭제하거나 계정을 비활성화함으로써 무의미하게 반복하는 행동에 제동을 걸고, 의식을 현실 세계에 노출시켜 온라인의 잘난 사람들보다 오프라인의 못난 사람들을 더 많이 구경하자. 그렇게 자연히 보통 사람들 속에 자리하고 있는 나를 인식하고, 비교에서 오는 비생산적인 고통을 줄인다면 그만큼 내 삶에 더 집중할 수 있을 것이다.


  나보다 못한 이들과 비교해 심리적 우위에 선다는 건 어쩐지 도덕적으로 찜찜하고 권장하기 힘든 마음가짐이다. TV를 통해 저 멀리 타국의 어느 가난한 아이들을 소파에 기대어 구경하면서 스스로의 처지를 긍정하는 게 매우 위험한 것처럼. 그러나 부와 가난과 같은 환경적 불평등 혹은 차이가 아닌, 개인의 인성과 도덕성 문제에 있어 타인과의 비교는 때로 긍정적인 효과를 준다. ‘당신은 유일하고 특별한 존재다’ 따위의 미심쩍은 위로보다 더 큰 힘과 안도감을 주는 것이다. 적어도 좋은 사람으로서, 아니 멀쩡한 사회의 일원으로서 살아갈 최소한의 의지도 없어 보이는 저들보다야 내가 낫지. 그렇게 인식하는 한 내게도 더 나은 존재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이 남아 있는 게 아닐까.


  다음 영화제 시즌이 다가오면, 내가 오르지 못한 영광의 자리에 선 많은 또래 감독들을 여지없이 보게 될 것이다. 그때도 그들의 프로필과 나이를 확인하며 우울감에 젖지 않으리라고는 장담할 수 없다. 다만 그들의 빛나는 성취 역시 소셜 미디어 속 수많은 게시물처럼 하이라이트 모음집에 불과하다는 것을 지금은 알고 있다. 한 편의 영화를 만들어 그 자리에 서기까지 그들이 겪어야만 했을 지난한 고민과 갈등의 시간들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기 때문에. 그리고 상영작 목록에 오르지 못한 수백 편의 작품과 그 수에 비례하는 감독들이 있음을 분명히 알고 있기 때문에. 그들 또한 나처럼 질투하고 비교하며 더 나은 작품을 만들 궁리를 하고 있을 것이다.

  오늘도 그런 생각으로 질투를 잠재우고 의지를 되새긴다. 영화제 홈페이지를 닫고 문서 작성 프로그램을 켠다. 온라인에서 오프라인으로. 그곳에는 다른 감독들을 곁눈질하는 내가 아닌, 다음 영화를 위해 시나리오를 쓰는 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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