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로 비평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습니까?
종종 영화를 준비하는 동료 감독이나 후배, 지인 등으로부터 자신이 쓴 시나리오를 읽고 피드백 해달라는 요청을 받을 때가 있다. ‘읽어 보시고 솔직한 피드백 부탁 드려요!’ 내 의견이 도움이 된다면 얼마든지 환영할 일이라 앉은 자세도 고쳐 앉고, 중요해 보이거나 이해가 안 되는 대목은 메모도 해 가면서 두세 차례 반복해 읽는다.
솔직히 말하자면, 이렇게 받아 보는 시나리오의 거의 대부분이 완성도 면에서 썩 훌륭하지 못하다. 뭐, 시나리오야 별로일 수 있다. 하지만 그보다 심각한 건 기본적인 맞춤법도 제대로 못 쓰는 경우가 수두룩하다는 것이다. 완벽한 맞춤법을 요구하는 거야 유난일 수 있다지만, 기본적으로 시나리오를 쓰는 ‘작가’라면 기본적인 맞춤법 정도는 알고 글을 써야, 그게 어렵다면 맞춤법 검사기를 돌리는 성의라도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엉망인 맞춤법과 비문으로 점철된 시나리오를 읽을 때면 ‘기본도 안 되어 있으면서 무슨 시나리오야...’ 하는 마음의 소리가 머릿속에 메아리친다.
하지만 고심 끝에 장문의 글로 정리한 피드백을 전달할 땐 최대한 상대방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도록 조심한다. 시나리오 피드백을 부탁한다는 게 얼마나 큰 용기를 필요로 하는 일인지 알기 때문이다. 글이 눈 뜨고 봐주기 힘든 수준이 아닌 이상, 이미 어느 정도 비판을 각오하고 있을 상대에게 ‘맞춤법부터 제대로 쓰라’는 모진 이야기를 할 필요까진 없다. 웬만하면 시나리오의 희미한 장점과 가능성이라도 찾아내려 하는 편이다. 그러니까, 솔직한 비평을 전해주지는 못하는 거다.
“일단 네 시나리오는 재미가 없어. 딱히 사건이라고 할 만한 게 없으니까 페이지가 잘 안 넘어가. 인물들도 하나같이 개성 없고 매력도 없어서 다 동일 인물 같아. 이름만 다르지 구분이 안 된다고. 혹시 시나리오 작법서를 읽어 보긴 한 거야? 상업영화처럼 뻔한 플롯의 시나리오를 쓰긴 싫다고? 그럼 이런 맹탕이나 계속 끓이겠다는 거네?”
만일 내가 누군가에게 한없이 솔직해질 수 있었다면 아마도 이런 말을 했을 것이다. 단지 내가 느낀 그대로 사실을 말할 뿐이지만, 뺨을 맞는다 하더라도 충분히 수긍이 간다. 나 역시 누군가에게 내 시나리오 피드백을 받을 때, 이토록 솔직하고 뼈아픈 피드백은 사양하고 싶다.
‘사람들은 평가를 요청하지만 사실은 칭찬을 듣고 싶을 뿐이다.’
- 윌리엄 서머싯 몸
시나리오 피드백은 여러 모로 참 난감하다. 피드백을 요청하는 입장에서도 마음은 반반일 것이다. 본인의 시나리오가 볼만한 작품이라는 걸 인정받고 싶은 마음과, 객관적인 시선으로 글의 부족한 점을 파악해 더 나은 방향으로 수정하고 발전시키고 싶은 마음. 나는 그 사이의 균형을 가늠하는 동시에 성실하게 피드백을 전해 줄 의무를 부여받은 셈이지만, 칭찬과 비판을 적절하게 배분하기란 생각처럼 쉽지 않다. 앞서 밝혔듯, 애석하게도 대부분의 시나리오는 완성도가 구리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대부분의 피드백은
1. 우선 시나리오 잘 읽었고, 이런 부분이 이해가 안 되거나 아쉬웠다.
2. 하지만 이런 점은 좋았다. (억지로 찾아낸 장점 한두 개)
3. 어설픈 격려의 한마디
순으로 정리해 상대에게 전달한다.
반면에 내가 시나리오 피드백을 요청할 때도 있다. 난 대체로 독선적이고 내 시나리오에 대한 확신이 넘치는 편이기 때문에, 굳이 객관적인 시선이 필요하다고 판단해 피드백을 요청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하지만 내 영화에 참여하도록 꼬드기고 싶은 스태프나 배우들이 있다면 가볍게 한번 읽어 봐줬으면 좋겠다는 명목으로 슬쩍 시나리오를 건네주기도 한다. 그러고 나면 얼마 후 피드백이 돌아온다.
함께 작품을 만들어 갈 사이라서 그런지 대부분은 ‘시나리오가 재밌더라’고 말해주는 편인데, 종종 생각지도 못했던 껄끄러운 피드백을 맞닥뜨릴 때도 있다. 플롯의 결함이나 인물이 성격, 특정 장면의 존재 이유 등 질문에 부딪히는 이유도 갖가지다. 하지만 내 기준에는 이미 완벽한 구조와 균형을 이루고 있는 시나리오기 때문에, 비판적인 피드백이 있다고 해서 글에 큰 수정이 가해지는 경우는 거의 없다. 좋은 말은 10배쯤 확대해서 듣고, 비판적인 의견은 ‘넌 그렇게 느낄 수도 있겠지, 뭐’ 하고 넘겨 버린다. 스스로에게 아주 관대하고 편의적인 시스템이 내장되어 있는 것이다.
그런데 나 또한 내 작품에 대한 타인의 따끔한 비평에 수긍하고, 또 통감할 때가 있다. ‘왓챠피디아’에서 내 영화의 별점과 코멘트를 확인할 때도 그랬고, 영화제나 상영회에서 내 영화를 보고 난 관객들의 반응을 직접 체감했을 때도 그랬다. ‘그래, 내가 생각해도 그 장면은 좀 유치했어.’ 그렇게 인정하고서 집으로 돌아가는 마음이 그토록 침울할 수가 없었다.
무릇 창작자는 자신의 창작물에 대한 세간의 평가와 스스로를 분리시킬 수 있어야 한다는데, 그게 말처럼 쉽지가 않다. ‘나를 욕하는 건 참을 수 있어도, 내 작품을 욕하는 건 못 참아!’ 내 작품이 욕을 먹는다는 건 곧 내 존재가 부정당하는 것과 같아서, 상상 이상으로 괴롭고 수치스럽기까지 한 일이다.
얼마나 솔직해야 하는 걸까? 그간 내 시나리오를 피드백 해 준 사람들은 얼마만큼 솔직했던 것일까? 누군가의 창작물에 가해지는 비판이 얼마나 뼈아픈 것인지 알기에, 나는 아직까지 내게 ‘솔직한 피드백’을 원하는 이들에게 그들이 원하는 만큼 솔직해질 수가 없다.
진정한 ‘솔직함’이라는 건 어디까지나 상대와 나의 관계를 깨지 않는 선에서 그 균형을 맞추고, 부단히 거리를 재는 수고로움을 더 이상 감수하지 않기로 했을 때나 가능할 것이다. 때로 솔직한 성격을 자랑삼아 타인에게 상처를 주고도, 타고난 성격이 그렇다며 스스로를 포장하는 사람들을 만나곤 한다. 그러고 보면 무조건 솔직하다고 해서 좋은 것만은 아닌 것 같다.
그러니 아무리 동료 감독의 시나리오가 구리더라도 ‘당신의 시나리오는 구립니다’라는 메시지를 보내지는 말자. 외국어를 한국어 자막으로 번역할 때 그렇듯이, 본래 뜻을 그대로 전달하겠답시고 지나친 직역을 고집하면 그 결과물이 어색하고 불쾌하기까지 하지 않나. 인간관계와 의사소통에도 적당한 의역이 필요하다.
그러고 보면 그동안 내 시나리오를 읽고 피드백 해 준 사람들 또한 자신의 솔직한 생각을 의역하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았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그들에게 새삼 감사한 마음을 전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