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찍은 건 전데, 이 사람은 누구죠?"
서른한 살이 되던 해, 이제는 정말 더 이상 운전면허 취득을 미룰 수 없다고 생각했다. 누구는 성인이 되자마자 바로 따 버렸다는 운전면허. 나만 빼고 다 가지고 있는 그 운전면허. ‘내가 정말 저 바퀴 달린 살인기계를 몰고 도로를 달려도 되는 사람일까?’ 그런 의심과 공포로 달달 떨리는 마음을 진정시키며 운전면허 학원에 등록했다. 그러고 나니 면허증 발급에 사용할 증명사진이 필요했고, 곧바로 부산 서면의 한 사진관을 찾았다.
방문 전 미리 사용자 리뷰를 찾아본 결과, 직원 분들이 모두 친절하고 일을 잘하시기로 정평이 나 있는 곳이었다. 비교적 높은 가격이었지만, 카메라 앞에만 서면 안면 근육이 오작동을 일으키는 나를 능숙하게 컨트롤 해주실 만큼의 실력과 시스템이 갖춰진 곳이라 과연 그럴 만하다고 생각했다.
“지금 너무 무표정이라 좀 무서워요. 조금 더 웃어 보실게요!”
순식간에 촬영이 끝나고 사진관 한편에 놓인 모니터를 보니, 하얀 조명에 내 얼굴이 창피할 만큼 적나라하게 드러나 있었다. 그러고 나서 사진을 찍어 준 직원 분이 나를 옆에 앉혀 두고 보정 작업에 열중하셨다. 그것도 아주 한참 동안을.
10분 정도 지났을까. 실시간으로 보정이 이뤄지는 모니터 속 생경한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자니 그 시간이 아주 길게 느껴졌다. 그날따라 유난히 자기주장이 강해 보이는 점, 웃으라길래 겨우 희미한 곡선을 그린 입꼬리, 입술 아래 채 아물지 않은 빨간 뾰루지, 곱슬거리는 머리칼, 각진 턱, 잡티, 짝눈까지. 나는 직원 분의 미친 듯이 현란하고 빠른 작업 속도에 한 번 놀라고, 내 얼굴에 고쳐야 할 부분이 이렇게까지 많이 보인다는 것에 또 한 번 놀랐다. 직원 분의 눈, 혹은 세상의 기준에는 확연한 단점으로 인식될 부분들이 교정되는 모습을 지켜보며 어딘가 몹시 망연해지는 기분이었다.
얼마 후 모든 보정 작업이 끝나고 매끈하게 다듬어진 증명사진을 받아 들었지만, 사진 속의 얼굴은 온전히 내가 아니었다. 나를 모델로 만든 AI 로봇이 있다면 바로 이런 모습이 아닐까 싶은, ‘불쾌한 골짜기’를 아슬아슬하게 피해 간 형상이었다. 이걸 과연 나라고 할 수 있을까. 난 어떻게 내 돈 주고 남의 사진을 손에 들고 있는 걸까.
직원 분께서 너무나 능숙하게 작업해 주신 것과는 별개로, 나는 어딘가 석연찮은 기분으로 사진관을 나왔다. 지금껏 내 얼굴에 크게 불만을 가져 본 적이 없는데, 솔직히 말하자면 화장실 거울 속에서 간헐적으로 발견하는 찰나의 잘생김에 종종 부모님께 감사해하며 살아왔는데. 가는 길에 놓인 거울 속 얼굴을 들여다보며 침울해졌던 그날의 기억은 이따금 ‘외모라는 건 무엇인가’ 따위의 상념에 잠기게 만들었다.
살면서 가장 많이 들은 외모 지적 멘트를 꼽으라면 “왜 그렇게 말랐냐?”가 단연 1위를 차지한다. 가족은 물론이고 친구, 지인, 심지어 처음 보는 사람들에게도 마른 체형을 진저리날 만큼 지적받아왔는데, 그때마다 반사적으로 “제가 좀 살이 안 찌는 체질이라서...”라는 준비 답안을 내놓곤 했다. ‘왜 그렇게 살쪘냐’는 물음이 무례하기 짝이 없다는 건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인데, 어째서인지 그 반대의 물음 역시 듣는 이의 기분을 잡칠 수 있다는 사실에는 아직까지 꽤 많은 이들이 둔감한 것 같다.
하도 세뇌를 당해 온 탓인지, 나도 점차 내 몸이 부끄럽고 불만족스럽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때문에 의식적으로 더 많은 칼로리를 섭취하고 근력 운동도 보다 열심히 하고 있다. 누군가는 이것을 ‘콤플렉스를 극복하기 위한 좋은 변화’라고 말하겠지만, 사실은 본연의 몸을 긍정하지 못한 연약한 마음이 억지로 등을 떠밀고 있는 거라고 보는 게 맞겠다.
사람들은 대게 어떤 대상을 자신만의 잣대로 빠르게 판단하고 평가하는 데 익숙하다. 누군가를 봤을 때 가장 먼저 눈에 띄는 외모에 대해서도 이런저런 상이 떠오르는 걸 부정할 순 없다. 그런데 문제는 일부 바보들이 그것을 ‘굳이’ 입 밖에 내서 분위기를 싸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미인이시네요, 하하.”, “수빈 씨는 식사를 좀 많이 하셔야겠어요.”, “오랜만에 보니 살쪘네?”, “피곤한가 봐? 너 오늘 피부 상태가 영 안 좋네.”
친밀해지기 위한 스몰 토크의 일환으로써 외모 평가가 적당하다고 생각한다면, 그런 이들은 재사회화가 시급하다고 본다. 나는 다짜고짜 내게 말랐다고 지적하는 이들의 외모에 대한 속마음을 결코 입 밖으로 꺼낸 적이 없는데, 만약 그랬다면 최소 두세 명과 초면에 멱살잡이를 한 추억이 남았을 것이다.
누구도 외모 평가 따위를 하지 않는 평행우주를 한번 상상해 본다. 그날 사진관을 빠져나오는 내 모습이 보인다. 손에 쥔 사진 속엔 나를 닮은 매끈한 AI 로봇이 아니라, 잡티 하나까지 원본의 모습을 그대로 보존한 ‘못생긴’ 내 모습이 있다. 하지만 마른 몸과 곱슬머리, 뾰루지와 짝눈이 이상하다고 그 누구에게도 지적받아 본 적 없는 나는 이내 만족스럽게 웃으며 생각한다. ‘사진 잘 나왔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