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일기 - 경기도 수원 여행
수원은 둘째 언니가 살고 있는 곳이다. 그래서 다른 지역들에 비해 여행이라는 목적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쉽게 가는 곳이기도 하고, 익숙한 곳이기도 하다. 이번 수원 여행을 계획한 이유는 순전히 곱창 때문이었다. 나는 안 먹는 곱창을 바로 위에 언니와 신랑은 참 좋아한다. 내가 곱창을 안 먹다 보니 예전엔 곱창을 먹으러 가면 나는 꿔다 놓은 보릿자루 마냥 가만히 지켜만 보다 왔다. 하지만 요즘은 곱창을 먹으러 가면 곱창은 아니더라도, 곱창과 함께 나오는 염통을 먹는다. 편식이 심한 나에게 염통은 그나마 입에 맞는 음식이다. 아직 곱창까지는 나에게 어려운 음식이지만, 그래도 염통을 먹으니 언니들과 함께 곱창을 즐기러 식당에 갈 수 있다는 점은 참 좋다.
내가 이렇게 언니와 같이 먹을 수 있는 메뉴가 생기니, 언니는 수원에 있는 곱창 맛집을 방문해야 한다며 수원 여행을 계획하였다. 보통 어딘가 여행을 떠날 땐 주로 신랑이 운전을 하는 것이 익숙한데, 이번엔 언니가 운전하고 신랑은 서울에서 수원으로 바로 오기로 하였다.
곱창 투어가 목적이었던 이번 수원여행이지만 언니의 첫 수도권 운전이라는 데에 의미를 둘 수 있었다. 여담으로 우리 집은 아빠가 고3 수능 시험을 치르고 나면 무조건 운전면허 시험을 치르게 하셨다. 운전면허는 시간 있을 때 미리 따놔야 하는 거라며 언니도 나도 당장 운전을 할 일도 차를 살일도 없었지만, 아빠의 권유로 당연하게 운전면허를 몇십 년 전에 땄다. 하지만 언니는 일본에서 지내고 나는 운전 잘하는 신랑을 둔 덕에 면허만 있을 뿐 운전할 기회가 없었다. 그러다 언니와 내가 거의 동시에 운전연수를 신랑에게 받고 운전을 시작하게 되었다. 하지만 운전할 기회가 자주 없었던 나는, 아니 엄밀하게 말하자면 운전하는 것보다는 걸어 다니는 것을 좋아하다 보니 웬만한 거리는 걸어서 다녔다. 그래서 지금도 동네 운전만 가능한 상태다.
나와 다르게 언니는 운전하기 시작하면서 정확하게는 언니 차를 갖기 시작하면서 아이들 등 하원과 언니의 출퇴근, 시댁을 오가는 장거리까지 하다 보니 초보운전 스티커만 붙여놓은 무늬만 초보운전자였다. 하지만 서울이나 경기도 같은 수도권은 여전히 운전할 기회가 없었고, 워낙 차도 많고 길도 복잡하다 보니 운전대를 잡고 거의 2년 만에 시도한 수도권 진입이라고 할 수 있겠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언니의 운전실력은 훌륭했다. 길눈이 워낙 밝아서 그런 건지 지도를 잘 보는 것인지, 출발하기 전 네비가 안내해주는 길을 한번 쓰윽 보고 난 후 길 한번 헤매지 않고 둘째 언니의 집에 잘 도착했다.
수원 여행은 금요일 오후에 시작되었다. 초등학생인 언니 아들을 학교에서 데려와 부지런히 달리고 달려서 점심을 용인휴게소에서 먹었다. 둘째 언니 집까지 가는 길에 지나가는 휴게소는 용인휴게소 전에 아주 크고 푸드코트의 음식도 매우 다양한 덕평휴게소도 있지만, 아이들 데리고 휴게소를 여기저기 다녀 본 결과 너무 큰 휴게소는 아이들이 화장실이 급할 때 데리고 다니기 힘들다는 결론을 내린 우리였다. 그래서 우린 크기가 큰 휴게소보다는 작은 휴게소를 더 좋아하는 편이다.
어릴 때 내가 그랬던 것처럼 아이들은 휴게소를 참 좋아한다. 엄마 아빠와 여행을 할 때면 늘 한 번씩은 들렀던 휴게소에서 먹는 통감자 구이가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아마 아이들도 나처럼 이날의 기억이 어릴 때 추억으로 자리 잡게 될지 기대해보았다. 용인휴게소에는 크기는 작아도 꽤 여러 가지 종류의 음식들이 있었다. 만약 군것질로 배를 채울 요량이었다면, 원래도 감자를 좋아하는 나는 어릴 때 추억을 생각하며 통감자구이나 떡볶이 같은 여러 가지 종류의 군것질을 선택해서 먹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러기엔 여행 준비를 하느라 오전 내내 분주하게 움직인 나의 뱃속이 허락하지 않았다.
그래서 김치우동을 한 그릇 먹었다. 국물이 꽤 시원한 것이 내 취향이라 금방 한 그릇 비울 수 있었다. 우동 좋아하는 아이 덕분에 어딜 가서도 우동은 꼭 빼놓지 않고 주문하는데, 이날은 아이도 우동 나도 우동 둘 다 우동을 후루룩후루룩하면서 아주 맛있게 먹었다. 휴게소에서 먹는 우동은 유난히 더 맛있게 느껴진다.
둘째 언니의 집에 도착하고 난 후 우리의 목적이 곱창이었던 만큼 어른들의 저녁 메뉴는 곱창으로 정해져 있었다지만, 아이들의 메뉴는 고민이었다. 그래서 다음날 아침 반찬도 해결할 겸 반찬가게에 다녀오자며 언니들과 함께 나섰다. 둘째 언니가 소개해준 언니의 집 근처 반찬가게는 들어서는 입구에서부터 여기는 보통이 아니다는 생각을 하게 하는 곳이었다.
수도권은 반찬가게의 클래스도 남다르다고 하면서 구경하기 바빠지는 곳이었고, 그렇게 구경하다 보니 어느새 우리 손에는 자신이 먹고 싶은 반찬 위주로 여러 가지의 반찬이 들려있었다. 물론 아이들의 반찬도 모두 담아두었다. 종류가 얼마나 다양한지, 각자가 원하는 반찬을 담았는데도 겹치는 것이 하나도 없을 만큼 정말 다양한 종류의 반찬이 있는 반찬가게였다. 만약 내가 사는 곳 근처에 이런 곳이 있다면 매일 퇴근길에 들러 반찬 쇼핑을 하게 될 곳이라며 부러워했다. 우리 동네에는 이런 크기의 반찬가게가 없다.
요즘 혼자 서울에서 지내고 있는 신랑 오피스텔 근처에도 이런 반찬가게가 있다면, 퇴근길에 들러서 신랑 저녁을 해결하기 좋을 거 같아서 찾아보니 회사 앞에 있는 것으로 나왔다. 그래서 같은 이름의 반찬가게가 있다면서 조금 더 자세히 보았는데, 거긴 반찬가게가 아니라 여기 회사 본점이었다. 하마터면 남의 회사 사무실에 가서 여기 반찬이 왜 없냐고 찾을 뻔했다.
저녁은 우리의 수원 여행의 목적을 해결하러 갔다. 이곳은 나만 처음 방문하는 곱창 맛집이었다. 작년에 언니들이 곱창 투어를 위해 수원에 방문한 적이 있었다. 근데 그때 정직한 몸뚱아리를 가진 나는 일적인 스트레스로 인해 밤부터 앓아누우면서 아무것도 먹을 수 없는 상태가 되어있었다. 결국 나는 둘째 언니의 집에서 계속 잠만 잤고 그런 나를 두고 나간 언니들이 이곳에 다녀왔다. 그때 먹은 곱창이 너무 맛있어서 또 먹으러 와야 한다고 곱창 중에서는 여기가 최고라고 입에 침이 마르도록 이야기하였던 곳이었다.
그렇게 여러 번 곱창 맛집에 대한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들어보기만 하였던 곳에 드디어 첫 방문을 하였다. 여태 언니들이 먹던 곱창들과 다르게 곱창 속에 통마늘을 넣어서 구워 먹는 곱창이었다. 알곱창이라는 이름의 곱창이 확실히 여태 먹던 곱창들과 비주얼부터 달랐다. 언니와 입맛이 비슷한 신랑도 여기 알곱창도 맛있지만, 밑반찬으로 나오는 대파 김치가 특히 맛있어서 불판에 대파 김치를 구워 함께 먹는 맛을 잊을 수 없다고 하였다. 이쯤 되면 이곳에 곱창을 먹으러 방문하는 것인지, 대파 김치를 먹으려고 방문하는 것인지 알 수가 없다.
파도 곱창도 별로 좋아하지 않는 나는 옆에 따로 구운 염통만 다 먹었지만, 염통도 확실히 부드럽고 맛있었다. 하지만 곱창을 안 먹는 나에겐 염통도 염통이지만 다 먹고 나중에 먹는 볶음밥이 특히 맛있었다. 적당히 반질반질한 기름기 있는 불판에 노릿노릿하게 잘 눌린 볶음밥이 마지막까지 수저를 놓지 못하게 만들었다.
둘째 날에는 수원화성 북문과 수원 행궁에 다녀왔다. 수원에서 나고 자라신 작은 형부는 수원 화성으로 가면서부터 집으로 돌아올 때까지 가이드 역할을 톡톡히 해주셨다. 덕분에 다음에 오게 되면 수원 화성 근처에 들러야 할 곳들을 주로 맛집들이지만, 미리 마음속에 저장해 둘 수 있었다.
나는 이번에 수원화성을 두 번째 방문한 것이었다. 아이를 임신하여 안정기에 들었을 가을쯤 수원화성을 방문했던 때와 많은 것이 달라져있었다. 그때는 수원화성 거리라고 할 수 있는 곳들보다는 허허버당에 잔디밭이었던 기억만 남아있다. 하지만 이번에 방문해보니 거리들이 전체적으로 잘 정비되어있었고, 예쁜 카페들은 물론이고 소품샵에 맛집들까지 관광이라는 단어가 훨씬 더 적합한 모습으로 자리 잡은 느낌이었다. 한 곳 한 곳 둘러보기에 시간이 부족할 정도로 볼거리가 가득한 곳이라 가는 곳마다 발걸음이 느려졌다.
사실 수원화성은 야경이 유명한 곳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처음 방문에서도 두 번째 방문에서도 아이들과 함께 방문하다 보니 야경은 우리에게 그림의 떡이나 마찬가지였다. 언젠가는 SNS에서 보았던 멋진 수원 화성의 야경을 내 눈으로 확인하는 날이 오기를 바라보았다.
수원화성 북문에서 점심을 먹기 위해 이동하는 동안 아이들이 길 위에 바쁘게 지나가는 행궁 열차를 보았다. 너도 나도 타고 싶다며 아우성이었고, 행궁 열차를 탑승하기 위해서는 화성행궁으로 이동해야 한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점심 식사 후 화성행궁으로 이동하였다. 이동하는 거리도 중간중간 볼거리가 가득하였는데, 아이들을 데리고 구석구석 돌아보는 것은 무리였다. 결국 다음을 기약할 수밖에 없었다. 수원화성은 물론이고 화성행궁 역시 날 좋을 때 방문한다면 하루 종일 관광해도 좋을 곳이라고 생각하게 되는 부분이었다. 화성행궁에 도착해서는 아이들이 도장 찍기를 하러 다니기에 바빴다. 도장을 다 찍었다고 해서 상품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아이들은 도장 찍기에 열중하였고, 아이들이 도장을 찾으러 다니는 덕분에 걷기 싫다고 징징 거리는 아이 없이 편하게 이동할 수 있다는 점도 좋았다.
수원 화성에서 돌아와 저녁을 먹으러 들렀던 곳은 둘째 언니 집 근처에 있는 숯불갈비 맛집 화평동이다. 사실 배가 안 고프다며 나는 가서 별로 먹을 생각이 없었다. 날씨가 너무 추웠던 탓에 벌벌 떨면서 바깥 외출을 했더니 소화가 다 안 된 기분이었다.
그런데 그건 그냥 단순히 내 기분이었나 보다. 그전에 내가 별로 배 안고프다고 안 먹겠다고 한 사람이 맞는 건지, 테이블에서 가장 늦게까지 젓가락질을 하고 있는 사람은 나였다. 신랑이 내가 많이 추워했다는 걸 알고 나중에 고기가 다 구워질 무렵 된장찌개를 불 위에 올려주었는데, 바글바글 끓는 된장찌개를 먹고 나니 속이 뜨끈해지면서 속에 있던 것들이 쑤욱 내려가는 기분이었다. 성격도 경운기 같아서 늘 뒤늦게 발동이 걸려 가장 늦게 움직이면서, 밥 먹는 것 역시 뒤늦게 맛들 릴 필요는 없는데, 갈비 먹으러 가서도 뒤늦게 그것도 신랑이 경운기의 시동을 걸듯 시동을 걸어주어서 마지막의 마지막 한 점까지 싹 싹 비워서 먹고 나왔다.
속이 든든해지니 그날의 추위가 조금 달래지는 기분이었다. 역시 나는 굶는 거랑은 상관없는 사람인가 보다 결론 내리는 순간이었다. 먹기 전에는 이 추위가 그저 짜증 나고 걷는 것조차 힘들게 느껴지더니, 배속을 뜨끈하고 든든하게 채워 넣었더니 이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 산책로처럼 느껴지는 것이 아주 좋았다. 아무래도 나의 짜증은 추위 때문만이 아니라 배속이 든든하지 못해서였나 싶기도 하였다. 이래서 사람은 화장실 들어갈 때 마음과 나올 때 마음이 다르다고 하는가 보다.
일요일 집으로 돌아오는 날 둘째 언니의 집에서 나오기 전 아침을 먹은 것도 안 먹은 것도 아닌 상태로 먹었다. 그렇게 아침을 대충 먹은 이유는 점심으로 망향비빔국수를 먹을 거라며 메뉴를 미리 정해놓았었기 때문이었다. 우리 집에 국수를 싫어하는 사람은 없다. 아이들은 물론이고 어른들도 참 좋아하는 국수인데, 국수를 판매하는 식당이 우리 동네에 없다. 예전에 있던 국수전문점이 문을 닫으면서, 이젠 국수를 먹으려면 집에서 끓여먹던가 아니면 다른 동네로 국수를 먹으러 이동해야 했다.
그렇게 어렵게 먹어야 하는 메뉴가 국수다 보니 수원에 오면 여기 망향비빔국수를 꼭 들른다. 여긴 잔치국수도 맛있지만, 비빔국수가 특히 맛있다. 망향비빔국수 특유의 양념 비법이 있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여기 비빔국수의 맛은 시간이 지나고 사진을 다시 보아도 아니면 망향비빔국수라는 단어만 생각해도 혀끝을 도는 맛이 생각날 만큼 기억에 남는 맛이다. 매운걸 잘 못 먹다 보니 비빔국수가 내 입에는 맵게 느껴졌지만, 매워도 맛있어서 계속 먹게 되는 맛이었다.
무한리필로 준비되어있는 육수로 혀 끝의 매운맛을 진정시키면서 후루록 후루록 넘기는 비빔국수는 뒤돌아서면 또 먹고 싶다 하고 생각나는 맛이다. 야채도 가득 들어있고 면발이 소면보다는 중면에 가까운데, 그것이 또 탱글탱글하다 보니 더욱 맛이 좋게 느껴진다. 다른 지점도 가보았지만 여기 지점만큼 면도 양념도 맛있지 않은 걸로 보아 유독 여기 지점이 내입에 더 맞는 것일 수도 있겠다.
망향비빔국수를 끝으로 수원에서의 우리의 일정은 끝이 났다. 다시 원주로 오는 고속도로를 타야 했다. 수도권 운전을 처음 해본 언니는 마지막까지 무사히 도착할 수 있기 위해 최선을 다해주었다. 다녀오는 길에 우리가 내린 결론은 언니는 앞으로 초보 딱지는 떼도 된다는 점이었다. 언니의 운전은 훌륭했고, 마지막에 커피를 찾는 나를 위해 휴게소까지 들러주는 여유를 발휘해주었다.
갈 때는 반대방향에서 점심을 해결하러 들렀던 용인휴게소였는데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는 커피를 마시기 위해 아이들의 간식거리를 사기 위해 들렀다. 확실히 일요일이라 그런가 출발했던 날인 금요일에 비해 도로에 차도 많았고 휴게소에 주차되어있는 차도 많았다. 그래도 돌아가는 길이 부담스럽지 않았던 건, 우리가 사는 지역까지 막히지 않고 한 시간이면 올 수 있다는 점에서 그런 것 아니었나 생각하게 된다.
내가 사는 지금 지역으로 이사 온 것을 또 한 번 감사할 수밖에 없는 여행의 끝이다. 신랑도 나도 지금이 좋은 이유는 어딜 다녀와도 부담스럽지 않다는 점이며, 활동 범위가 그만큼 넓어지면서 더 많은 것들을 볼 수 있다는 점이다. 사람의 여유라는 것은 이런 것에서 느끼는 것이 아닐까 그런 면에서 우리의 삶의 진 높아진 거라 결론 내리게 되는 이번 여행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