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강낭토끼 Sep 14. 2022

그놈의 밥! 밥! 밥!

당신의 아들의 밥을 해주기 위해 결혼한 것이 아닙니다만...!

 오늘도 어김없이 어머니로부터 전화가 울렸다. 어머니와 통화하다 보면 빠지지 않는 단골 멘트는 "밥은 먹었니?"다. 나는 어머니께서 나에게 이 질문을 하실 때마다 진짜로 밥을 뭘 먹었는지 메뉴가 궁금해서 물으시는 건지, 아니면 그냥 밥을 가장한 안부를 물으시는 것인지 그것도 아니면 어머니 아들 밥을 며느리가 차려주지 않을까 걱정인지를 의심할 만큼 어머니는 밥에 대해 집요하시다. 


 얼마 전 신랑의 회사 이전 문제로 몇 달을 신랑과 주말 부부로 지낸 적이 있었다. 신랑이 지내게 된 곳은 어머니와 같은 지역인 서울이었지만, 서울이 워낙 크다 보니, 어머니 동네에서 출퇴근하기는 어려워 보여 회사 근처에 오피스텔을 얻었다. 어머니께서는 본인의 아들이 늘 물가에 내놓은 아이 같은지, 이런 소식을 접하고서 가장 먼저 물어보신 것이 "그럼 밥은?"이었다. 그놈의 밥! 밥! 밥! 어린이도 아니고 불 사용할 줄 알고 칼 쓸 줄 알고 돈도 쓸 줄 아는데 뭘 그렇게 걱정하시는 건지, 이해할 수 없었지만 며느리라는 나의 입장을 고려하여 최대한 차분하게 대답했다. 점심은 회사에서 먹을 거고, 저녁도 회사에서 먹거나 아니면 친구들 만나거나 집에서 먹거나 하겠죠. 그랬더니 어머니에게 돌아온 대답은 "그럼 아침은?"이었다. 순간 너무 황당하고 어이가 없어서 웃음이 나왔다. 정말 궁금해서 물어보시는 건지 아니면 나보고 아침밥을 챙기라는 것인지 이해가 되질 않았다. 그래서 "아침밥은 알아서 먹어야죠! 제가 가서 해줄 수 없잖아요"하고 어머니의 질문의 의도를 모르겠다는듯한 황당함 섞인 말투로 대답을 해버렸다. 나의 대답에 어머니께서도 할 말이 없으셨는지 멋쩍은 웃음이 돌아왔다. 


 이렇게 아들의 밥 걱정을 하시는 어머니께서는, 너무 아이러니하게도 결혼하기 전 아들의 아침밥을 한 번도 챙겨주신 적이 없으셨다. 아들의 생일에도 어머니께서는 아침밥은 물론 저녁밥도 챙겨주신 적이 없는 분이다. 어머니께서는 아침잠이 아주 많으신 분이다. 그러다 보니 아들이 출근하고 나서야 어머니께서 일어나셨기 때문에, 아들의 아침 밥상을 차려주는 것은 고사하고 아들이 출근하는 모습을 지켜보신 적도 없으신 분이다.  


 그런데 아들이 결혼하여 며느리가 생기니, 그 며느리는 꼭 아들의 아침밥을 챙겨줘야 한다고 생각하셨던 건지 나만 보면 아들의 밥을 찾으셨다. 어머니 본인은 하지 못하셨던 일이었지만, 며느리로서는 당연하게 해야 하는 일이 되어버렸다. 나는 아들의 밥을 차려주기 위해 결혼한 여자가 아니다. 어느 고리짝 시대의 이야기인지, 요즘은 결혼해도 밥하는 것 포함해서 집안일은 반반하는 시대인데, 밥만큼은 며느리가 해줬으면 생각하시는 어머니께 나는 아들의 식순이라 생각하시는 것은 아닌지 알 수가 없었다.  


 물론 나는 아침밥을 꼬박꼬박 챙겨서 먹는다. 아침밥을 먹지 않으면 아예 움직일 수 없는, 밥에 의해 움직이는 연비가 아주 나쁜 사람이기에, 어머니가 아끼는 아들의 밥은 내가 먹는 밥에 수저 하나 올리면 끝나는 일이다. 9첩 반상이라는 화려한 차림상은 아니라고 할지라도 빵 한 조각을 챙기더라도 아침밥을 꼭 먹는 나의 생활습관상 밥을 챙기는 것은 그렇게 큰일이 아니다. 하지만 누군가 옆에서 이렇게 밥밥 밥 하고 외쳐대면 청개구리의 심보가 발생하는지 밥하기가 싫어진다. 어머니께서 이런 나의 습성을 좀 아셨더라면 밥밥 밥 소리를 좀 덜하실지 궁금하기는 하다.  


 매번 통화할 때마다 돌아오는 그놈의 밥! 밥! 밥! 어머니께서는 한 번도 차려준 적 없는 아들의 아침밥을 알아서 잘 챙기고 있는 며느리의 노고를 생각하신다면, "밥 먹었니? 아침밥은? 점심밥은? 저녁밥은? 뭐 반찬 해서 먹었니?" 하는 질문 자체를 삼가셨으면 참 좋을 텐데, 도대체 왜 그렇게 밥에 집착 아닌 집착을 하시는 걸까 생각을 안 해볼 수 없었다. 


 한국인은 밥에 진심인 민족이라고 한다. 언제 밥 한번 먹 자하는 말이 서로의 안부인사이고 나 밥 안 먹어 굶을 거야 하는 말이 청소년기 아이들이 할 수 있는 최고의 반항이라는 유머가 생길 만큼 한국인은 밥에 진심이다. 직장인들은 회사의 점심시간에 메뉴 결정을 위해 오전 시간의 대부분을 투자할 만큼 점심식사에 신중하고, 주부들도 저녁 식사 메뉴를 하루 종일 고민할 만큼 밥은 중요한 문제다. 요즘처럼 먹을 수 있는걸 다 먹는 시대에도 밥이 중요한데, 우리보다 어려운 시대를 지나오신 어르신들이라면 밥을 먹는다는 것은 그냥 단순히 밥을 먹는다는 것이 아니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밥은 생활의 활력이며 생사를 이어 줄 수 있는 도구이고, 다른 사람과 함께하는 자리였다. 식사를 하는 자리는 단순히 밥을 먹는 것이 아니라 정을 나누는 자리였고, 그 사람의 시간을 공유하는 시간이었던 것이다. 밥은 밥으로서의 의미보다 더 많은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이었다. 


 그 의미가 시댁 어른들이 친정 식구들에 비하여 더 크게 자리 잡았다는 것을 나는 결혼해서야 알았다. 친정도 밥이라면 삼시 세 끼를 다 챙겨 먹으며, 함께 나누는 밥에 대한 의미가 컸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시댁 어른들에 비하면 친정에서 밥을 먹는다와는 또 다른 의미로 중요하게 작용했다. 한 가지 예를 들어보자면 맛집에서의 대기 시간이었다. 친정 식구들은 그곳이 아무리 맛집이라고 할지라도 기다리는 시간이 아까워 몇 시간씩 기다려서 밥을 먹는 일을 절대로 하지 않는다. 하지만 시댁에서는 맛있으니까 이 정도 기다리는 것은 당연하다가 허용되었다. 시간과 밥 두 개 중 선택을 해야 한다면 친정의 선택이 시간이라면 시댁은 밥이 되는 것이었다. 결혼하고 나서야 맛집이라는 곳을 앞에 두고 몇 시간 기다리는 것을 처음 해본 나로서는 당황스러웠지만, 앞으로 내가 속할 시댁의 문화라는 것을 깨닫고 조용히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어찌 보면 어머니께서는 삼시 세 끼를 다 먹는 며느리가 들어와서 좋으셨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며느리의 눈치가 보여 어머니 자신도 챙기지 않는 밥을 챙겨야 하는 번거로움도 있으셨을 수도 있겠다 생각하니 조금은 마음이 편해졌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머니께서 밥! 밥! 밥! 하는 것을 지금보다는 조금 덜 하시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 생각하는, 나는 참 이기적인 며느리다. 



매거진의 이전글 코로나가 휩쓸고 간 자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