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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낭토끼 Aug 30. 2022

코로나가 휩쓸고 간 자리

코끼리가 밟고 지나갔다. 

 

 요즘 다시 유행하고 있는 코로나, 뉴스에서나 티비에서나 대유행이라는 말이 나올때도 지인이나 친척들이 돌아가며 코로나에 걸렸다며 연락이 올때도, 나와 아이 신랑만큼은 걸린적이 없었던 코로나에 걸렸다. 이번 코로나는 기존에 걸리지 않았던 사람들이 더욱 쉽게 걸린다고 했던가, 어디서 전염이되어왔는지, 무엇이 원인인지 조차 모르는 발열을 시작으로 우리 셋은 끙끙 앓아야만 했다. 


 주변에 코로나에 걸렸던 지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가족이 돌아가면서 차례로 걸리는것보다는 한꺼번에 앓고 한꺼번에 격리가 풀리는것이 수월하다는 이야기를 했다. 물론 제일 좋은건 코로나와 상관없는 삶을 사는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지금까지의 경험을 토대로 이제는 마스크가 익숙한 세상에서 코로나에 적응하면서 살아야 한다는 사실을 너무나 잘 알게 된것 같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코로나는 한꺼번에 걸려도 차례로 걸려도 매우 아프다. 코로나는 많은것을 바꾸어놓는다. 


 언제고 한번은 걸렸을거 같은 코로나는 내 몸이 먼저 알아차린다.  몸살감기나 독감을 수차례 경험해본 자로서 코로나는 또 다른 느낌이다. 그래서 이것이구나 하는 느낌이 딱 온다. 발열이 시작되는 순간 이것이 그 무시무시한 코로나구나라는걸 깨닫게 된다. 코끼리가 나를 밟기 시작한다. 누가 나를 계속 때리고 있는듯, 사방이 아프고 쑤시고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태가 된다. 근데 가족이 한꺼번에 아프다면 이렇게 아픈 상황에, 아이까지 돌봐야한다. 하루 먼저 진단을 받은 신랑은 아프다며 앓아누운지 오래이고, 아이와 나만 남겨진 상황에 병원도 아이와 둘이 다녀와야했다. 내 몸도 만신창이 상태에서 아이를 붙잡고 코로나 검사를 받는일은 굉장히 지치는 일이었다. 


 코로나 확진 후 주변에서는 잘 먹어야한다 잘 쉬어야한다 하는 위로의 연락들이 왔다. 다 맞는말이다. 코로나는 내가 쉬고 싶지 않아도, 쏟아지는 잠에 나를 쉬게 만들었다. 나만 그런것이 아니라 아이도 신랑도 나도 아침 11시가 되어서야 겨우 겨우 일어나서 아침 일과를 시작하게 만들만큼 사람을 무기력하게 만들었다. 코로나 이후 잘 먹고 싶었다. 하지만 밥을 주로 담당하는 내가 아프다보니, 밥 할 기력이 딸렸다. 정확하게는 밥에 대한 즐거움이 없었다. 먹는 즐거움이 워낙 컸던 나는, 뭘 하나 먹더라도 입이 정말 즐거웠던 사람이었다. 빵순이었고, 아침에 마시는 커피 한잔이 당연했지만,  커피 냄새가 싫어졌고, 빵은 쳐다도 보기도 싫어졌다. 평생 잃어본적 없던 입맛을 잃고나니 밥 차리는것도 귀찮았다. 내가 그렇다고 아이까지 굶길 수 없으니 꾸역 꾸역 밥을 차려보았다. 하지만 입맛은 나만 잃은것이 아니었다. 신랑도 아이도 똑같이 잃은 입맛에 평소와 같은 양의 밥을 하더라도 두끼는 먹을정도로 밥이 남았다. 아이는 입덧이라도 하는것처럼 먹고 싶다고 얘기해서 해준 음식을 한입 먹고는 자기가 생각한 맛이 아니라며 남기기 일쑤였다. 


 3-4일 겨우 겨우 끼니를 연명하는것 같은 느낌으로 코끼리가 밟고가는 시간을 지내고나니, 100%의 컨디션은 아니지만,  그래도 좀 살만하다 하는 시기가 드디어 찾아왔다. 정말 아파서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못하던때와 다르게 움직일만한 상태가 되니 주변의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여전히 입맛은 잃었지만, 조금은 밥 다운 밥을 먹을 수 있는 상태가 되었고, 청소라는 집안일을 시작해도 될만큼 컨디션이 회복되었다. 그동안 소홀히 하였던, 식물들에게 물을 줄 수 있는 여력까지 생겼다. 


 그동안 뉴스에서 하루가 멀다하고 쏟아지는 코로나 소식, 매일 우리에게 전달되는 코로나 확진자 관련 재난 문자에도 나는 코로나가 우리 가족과는 별개의 이야기로 자신 만만했던것 같다. 코로나는 나에게 너가 사는 세상도 결국 코로나와 함께사는 세상이라며 경고라도 하듯 휴유증을 주었다. 지인들이 말하길 코로나 이후 깜박 깜빡하는 건망증이 더 심해진다는 이야기를 해주었었다. 내가 그랬다. 머리속에 생각하던 일이 쉽게 떠오르지 않는 경우가 허다해졌다. 미각 후각을 완전히 잃은것은 아니었지만, 빵순이었던 내가 디저트라면 환장을 하던 내가 커피도 디저트도 전혀 먹고 싶지 않았다. 나와 반대로 신랑은 평소에 먹지도 않던 과일이 먹고 싶다며 과일을 찾았고, 아직도 잔기침으로 콜록거리며 고생하고 있다. 


 코로나는 걸리는 순간 아프기도 아프지만, 코로나에 걸리기 이전의 일상으로 회복하는데 오랜시간이 걸린다는 점도 나를 힘들게했다. 시도때도 없이 쏟아지는 잠에 며칠을 힘들었고, 운동도 마음껏 할 수 없었다. 입맛이 바뀌니 음식을 예전처럼 해놓아도 그 맛이 아닌것 같다는 생각에 맛잇게 먹는 일이 줄었다. 아이는 이제 코로나 자가진단을 위해 키트만 꺼내와도 벌벌 떨었다. 코로나블루는 이런 작은 나의 일상의 변화로 시작될 수 있는것이 아닐까 생각되었다. 코로나는 우리에게 많은 두려움과 변화를 주고 갔다. 생각해보면 지금까지 수 많은 전염병이 있었고, 전염병이라 누구에게나 찾아올 수 있는것인데, 그것이 내가 아닐 이유는 어디에도 없는것이었는데, 나는 괜찮을거야라는 안전불감증을 가지고 있었던것은 아니었는지 반성하게 만드는 코로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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