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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담이 Jan 19. 2023

일이라는 딜레마에 빠졌다

일을 해도, 안 해도 우울했다



  시린 추위보다 내 마음이 더 차가울 때였다. 졸업과 취업이 엇비슷한 시기에 이루어졌다. 기쁨도 느낄 새 없이 코로나 또한 터져버렸다. 코로나는 내게 두 번의 권고사직을 안겨 주었다. 그는 이전부터 이어진 무기력과 우울이 극심해지기에 충분한 역할을 해주었다.

 

얼마 간의 공백기를 두고 다시금 일자리를 마련했다. 녹록지 않은 강도의 근무와 대체 인력이 없어 휴가를 내기 어려운 구조 탓에 공휴일과 주말이 아니면 제대로 쉴 수 없는 일은 손쉽게 나를 무너뜨렸다. 인간관계 트러블과 익숙하지 않은 일들 사이에 끊임없는 실수들은 잦은 좌절과 자기 비하, 자기 비난을 불렀다.


  사소한 일에도 감정이 요동쳤다. 거대한 우울에 쓰러지고 마는 모습이 참으로 나약하기 짝이 없었다. 돈을 벌기 시작했다고 해서 생활이 안정되는 건 전혀 아니었다. 이 바닥에서 사명감의 수고는 터무니없이 낮은 값어치로 돌아오기 일쑤였다. 대단한 걸 기대한 건 아니지만 정말 이건 아니야, 때려치우던가 해야지. 하고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가 내가 이만큼을 하는데 그게 이 정도로 그치고 마네, 그래 내가 그렇지 뭐. 하며 곤두박질치는 기분이 번갈아가며 날 괴롭혔다.


  일을 한다고 해도 나아지지 않을 기분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썩어버린 기분과 스러져버린 감정에 유의미한 변화를 가져오는 게 차고 넘치는 돈인지, 일에 대한 만족도인지, 사명감인지는 손톱만큼도 알지 못했다.

  “일을 하고 나면 적절한 보상이라는 게 이루어져야 하는데 지금 그 보상이 적절하지 않은 것 같아요. “

  “고생이 많아요. 담이님 뿐만 아니라 누가 한다 해도 쉽지 않은 일이에요.” 환자의 한숨과 자조가 한데 섞인 하소연을 가만히 듣다가 조금 낮고 조용한 목소리로 답하시는 의사 선생님의 말씀들은 큰 위안으로 남았다.


  일을 하기 전후로 우울한 건 매한가지였으나 그 양상이 달랐다. 이전은 삶의 의지가 완전히 꺾여 일이 끼어들 틈 따위는 없었다. 이후는 일 자체만으로 스트레스를 받는 것과 동시에 우울과 자기 비난이라는 악순환의 반복이었다. 살기 위해서 퇴사를 바랐다.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몰라 불안했다. 터질 것만 같은 심장을 부여잡고 출근하는 나날이 이어졌다. 갈수록 미쳐가는 느낌이었다. 웃음이 사라진 굳은 얼굴과 저조한 컨디션, 거지 같은 체력과 겨우 체면을 차릴 정도의 겉모습, 비인간적인 감정. 이 모든 것들을 감내할 수 있는 나는 없었다.


  직장인과 무직자 중 득이 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했다. 남은 것은 재가 되어 흩날리는 낙과 조각난 채 찢겨버린 마음 그리고 절망적인 나락뿐이었다. 죽은 마음을 이끌고 작게 숨을 쉴 수 있는 곳은 진료실 안이었다. 의사 선생님 앞에서 만큼은 최대한 감정을 숨기지 않았다. 떠오르는 말들을 뱉어내었다. 털어두는 것만으로 살 것 같지는 않았다. 다만 은연중에 살려달라고 외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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