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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담이 Jan 18. 2023

병원은 가까울수록 좋다

단순한 왕복 길에도 에너지가 든다




  우리 동네는 정신건강의학과 병원을 보기가 힘들다. 집 근처 병원을 고를 선택지가 그리 많지 않았다는 뜻이다. 어차피 학교에서 본가로 일주일에 한 번씩은 올라왔기 때문에 동네 밖으로 지역을 좀 넓혀보자 생각했다.

  단번에 나에게 맞는 병원을 고른 것은 큰 행운이다. 다만 하나 걸리는 것이 있었다. 병원과 집의 거리였다.    아주 떨어진 거리는 아니지만 동네라고 부르기엔 먼 거리에 위치한 병원을 굳이 고른 이유는 단순했다. 이 정도 거리이면 다닐만할 것 같아서였다. 제대로 된 착각이었다.


  집순이라 나가는 것을 별로 선호하지 않는다. 나갈 일이 있으면 몰아서 우르르 쏟아내듯 일을 처리하고 뿌듯한 마음으로 귀가한다. 나가서 미뤄둔 일들을 처리한다는 건 ‘밖으로 나감‘을 전제로 한다. 그것을 고려하지 못한 나는 진료해야 하는 날마다 자신과 싸웠다. 병원에 가면 그 간의 일들과 내가 느낀 증상을 말한다. 그다음엔 의사 선생님의 위로와 칭찬을 가득 받는다. 마지막으로 새로운 증상 혹은 심해진 증상과 약물을 등가교환한다.


  병원을 갈 때마다 약이 늘어났다. 추가되는 약물을 보고 있자니 기분이 썩 좋지 않았다. 약이 많다는 것은 그만큼 상태가 좋지 않다는 증거니까. 주기적으로 늘어난다는 것은 갈수록 나빠진다는 증거니까. 하나로 시작했던 약이 두세 개를 넘어 여섯 개에 이르렀을 때 나는 기분 나쁨과 타협했다. 우울을 여태까지 방치한 나의 잘못이려니 하고 말이다.


  성실히 내원하는 건 생각보다 어려웠다. 예약 시간에 늦지 않아야만 했고 그러기 위해서는 체계적으로 움직여야 했다. 녹아 들러붙어버린 진득한 치즈처럼 침대에만 붙어 있던 나에게는 그 조차도 하나의 과업이었다. 왜 병원은 가까운 곳으로 가야 한다고 의사들이 강조하는지 알 것 같았다. 자주 ‘병원에 가기 싫은 게 아니라 갈 준비를 하는 게, 몇 십분 동안 지하철을 타야 하는 게 귀찮다’고 생각했다.


  물론 내가 싫다고 한들 병원에 오지 않아도 되는 것은 아니다. 치료를 하면서 현 상황이 어떻든 얼마나 괴롭고 아프든 두 가지는 지키려 노력했다.

 병원에 제시간에 내원하기 그리고 제때 약 복용하기. 가장 기본적인 것이 어렵다고 했던가, 내게도 예외는 아니었던 걸 보면 말 잘 듣는 환자 되기란 참 어려운 일이다. 왜 용기 내어 정신과에 진료를 받으러 오는 것이, 잊지 않고 약을 다 챙겨 먹은 것이 칭찬받을 일인지 이제는 알 것 같다. 칭찬받을 일 맞다. 그 어려운 걸 해내는 사람들은 뭐든 할 수 있을 것이다.


  7일에 한 번 병원행이 익숙해지다 못해 무덤덤해질 때쯤 대학을 졸업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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