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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담이 Jan 18. 2023

잠이 오질 않을 뿐인데 우울증이라니요?

정신과는 처음입니다만





  “24시간 동안 한숨도 못 잤어요. 저는 더 자고 싶은데 잠을 잘 수가 없어요.” 어떻게 오게 되셨나요 라는 의사 선생님의 질문에 몽롱한 정신으로 입을 열었다. 그 당시 졸업 작품 준비로 인해 매주 3일을 연달아 밤을 새웠다. 지금 생각해 보면 도저히 제정신일 수가 없었다.


  그는 나에 대해서 전혀 모르고 있다. 최선을 다해 내 상태를 일목요연하게 설명하려 애썼다. 결과는 엉망진창이었다. 어떻게 말하든 괜찮다는 선생님의 따스한 격려 속에서 우울 일대기를 풀어나가기 시작했다.


  얼마 큼의 시간이 흘렀는지 모른다. 이야기를 끝맺고 잠깐의 침묵 속에서 ‘이렇게 뒤죽박죽 횡설수설 하려던 게 아닌데 이게 맞는 건가, 원래 다들 이런 걸까? 정신과에 오면 입을 떼자마자 아니면 이야기하다가 왈칵 눈물이 터진다는데 꼭 그런 건 아닌가 보다.’라고 생각했다.

“현재 담이님은 마치 컵에 물이 가득 차서 조금만 더 따르면 흘러넘치기 직전인 상태예요.” 정적을 깬 의사 선생님의 한 마디는 예상 밖이었다. 상태가 생각보다 훨씬 심각했다.


  “그럼 저는 불면증이 있는 건가요?” 이때까지만 해도 단순히 네, 불면증입니다. 수면제를 조금 처방해 드릴게요. 하는 엔딩쯤으로 생각했었다. 심각한 상태임은 인지했으나 받아들이지는 못했던 모양이다.

  “불면증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불면은 우울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어요.” 사실은 의사 선생님의 은유적 표현 보다도 더 충격적이었다. 나 자신에게 진단을 내린다면 불면증+α  일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면 제가 우울증이라는 건가요?” 내과나 여타 다른 과 진료처럼 진단명이 내려질 것이라 생각했다. 의사 선생님의 사견에 따라 진단은 나중에 내리기로 결정됐다. 굉장히 조심스러워하는 선생님의 모습에 더 이상 묻고 싶은 마음도 없었다.


  “항우울제를 처방해 드릴게요. 약의 부작용이 있을 순 있지만 안전한 약이에요. 그러니 안심하고 드셔도 돼요. 우리 약 잘 챙겨 먹고 일주일 뒤에 어떤지 또 봅시다. 조심히 들어가요. “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거리곤 진료실을 나왔다. 약간의 두려움과 오해로 얼룩진 정신과 첫 진료는 너무나 평화롭게 끝이 났다.


  뭐지, 생각보다 별 거 아니었네. 병원 건물을 나서며 생각했다. 초진 전날 가지 말까 고민하다 취소하지 않고 방문한 내가 조금 기특했다.

  병원을 고르며 같은 병원이라도 누구는 좋았다는데 누구는 아주 별로였다는 후기들을 보았다. 한참 검색하는 도중, 정신과는 특히 환자 본인에게 맞는 의사를 만나는 게 중요하다는 것을 알았다. 아무리 좋다고 소문난 병원이라도 주치의가 나와 맞지 않으면 소용없다. 크게 재고 따질 것 없이 급히 고른 병원이었는데 꽤 운이 좋았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단 한 가지만 빼고 모든 게 완벽한 병원에 다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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