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서점알바 04화

미스터리

by 수경

우리 서점에서는 책을 사면 책갈피를 끼우고 계산한다. 책갈피는 직접 만든다. 책을 사지 않고 구경하고 나가는 손님에게도 책갈피는 주어진다. 소요서가의 방침(!)이다. “이번엔 빈손으로 가시지만, 다음에도 꼭 사가세요.”라는 바람을 담은! 지난주에는 책갈피 만드는 공정을 혼자 해봤다. 어느 정도 시간이 걸리는지 확인하고 싶었고, 혼자 근무이기도 하니까. 대략 7시간, 이틀의 아르바이트 시간이 소요된다.

대략의 공정은 다음과 같다.

⑴ 종이 사기. 소요 시간은 대략 1시간. 오가는 시간과 종이 고르고 계산하는 시간. 어릴 적 쓰던 도화지 2배 크기 장당 190mg, 색상은 6종 2장씩 구매.

⑵ 작두로 종이 자르기(찢기). 서서 순식간에 작두를 내려쳐야 함. 잘린 종이 총 522개.

⑶ 스티커 붙이기. 스티커 6종. 36종의 다양한 책갈피를 나옴.

⑷ 첫 번째 스탬프 찍기. “너 자신의 지성을 사용할 용기를 가져라!_임마누엘 칸트” 첫 번째와 두 번째 양 손가락 사용해서 빠르게 찍어야 고르게 찍힘.

⑸ 두 번째 스탬프 찍기. “@soyoseoga” 왼손 두 번째 손가락으로 종이를 누르고 오른손으로 가볍게 눌려야 함.

⑹ 이쁘게 정리해서 통에 담기.

후유증, 스티커의 접착제로 인해 오른쪽 세 손가락이 너덜거림. 비누로 씻고 핸드크림을 발라야 함.


몸보다는 머리를 더 쓰고 살아온 사람의 이상한 로망일 것인데, 몸을 잘 쓰는 사람에 대한 경이가 나에게 있다. ‘생활의 달인’에 나오는 이들은 언제나 신기하고 존경스럽다. 많이 오래 하면 책갈피 만들기의 달인이 될 수도 있겠지만 몸 상태는 몇 시간 책을 읽고 났을 때와 유사하다. 붙이고 찍는 행위나 책을 읽는 행위 모두 어깨가 무거운 건 왜일까. 인간은 그저 몸을 가진 존재인가. 독서인은 그런 의미에서 모두 노동자다. 그람시가 모든 사람은 철학자라고 했던 것처럼!

“호모 파베르는 호모 사피엔스로부터 분리할 수 없다. 결국 모든 사람은 그의 직업적인 활동 이외의 부분에서도 어떠한 형태로든지 지적인 활동을 한다. 즉 그는 ‘철학자’이며 예술가이고 멋을 아는 사람이며 세계에 대한 특수한 구성에 참여하고 도덕적 행동에 대한 의식적 방침을 견지하며, 따라서 세계에 대한 구상을 유지하거나 그것을 변용시키는 데, 즉 새로운 사고방식을 창출하는 데 기여하고 있다.”(안토니오 그람시, 옥중수고2, 거름, 1999, 18쪽)

이제 미스터리 이야기다. 책을 읽다 보면 늘 모자란 것이 있다. 시간, 기억력, 그리고 책갈피. 시간과 기억력에는 비밀이 없다. 내 한계일 뿐. 하지만 책갈피는 늘 미스터리다. 그 많던 책갈피는 다 어디로 갔을까? 책들이 먹어 치우는 것일까? 책상 위에서 늘 찾게 되는 그것. 급하면 다양한 종이(초콜릿이나 껌 포장지), 옷 라벨, 책 띠지, 심지어 새 지폐를 끼우기도 한다. (새 지폐를 발견할 때의 기쁨이란!) 서가의 한 자리를 비우고, 이월된 책과 1~2월에 읽어야 할 책을 꽂으며 비밀을 풀었다. 읽었던 책에 책갈피가 꽂혀있다. 소요서가에서 산 책에는 간혹 책갈피가 있었지만 아직 보지 않은 책에는 거의 없다. 원래 책의 수보다 책갈피가 훨씬 작은 탓이고, 책의 마지막을 덮으며 책갈피를 꺼내지 않은 탓이었다. 왜 이렇게 책갈피에 집착하냐고. 책을 접지 않고 보는 탓일 것이다.

이제 책갈피를 책과 함께 순장하지 않아야겠다.

책을 접지 않는 분들은 소요서가로 오시라. 책마다 책갈피 끼워드린다!

그냥도 드린다!


(덧붙임) 알바를 처음 시작할 때는 책갈피의 문구가 하나였다. “너 자신의 지성을 사용할 용기를 가져라!_임마누엘 칸트” 지금은 두 개가 추가되었다. “고귀한 모든 것은 어려울 뿐만 아니라 드물다._스피노자” “이성으로 비관하더라도 의지로 낙관하라._안토니오 그람시” 서점 운영자에게 읍소하여 내가 엄선한 문구다. 나의 흔적이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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