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점에 새로운 ‘알바’가 왔다. 왔다는 것은 떠난 사람이 있다는 것. 난 자리는 든 자리로 채워진다. 새 사람의 처음 인상은 밝은 친절이었다. 나는 사근사근과는 거리가 있고, 특히 서비스업에 요구되는 친절함에는 익숙지 않다. 사실 사회가 요구하는 친절이 과하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가전제품이나 인터넷을 설치, 수리하러 온 서비스 기사님의 친절은 늘 과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기사님이 떠난 자리에 걸려 온 서비스 만족도 전화나 문자로 그 이유를 짐작할 수 있다. 친절을 팔고 요구하는 사회, 그게 자본주의다. 그 사회는 현재진행형이다.
음식점이든 병원이든 누구나 평을 남길 수 있는 ‘별점의 세상’이 되었다. 맛이나 의술이나 기능보다 가장 불만이 많은 것(내가 보기엔 욕설에 가까운)이 서비스, 친절함이다. 친절함을 마다할 사람은 없다. 다만 친절이란 서비스는 너무 자의적 기준이고 부자연스럽다는 것이다. 웃는 얼굴, 좋다. 하지만 웃음은 자연스럽게 흐르거나 새는 것 아닌가. 면접관 앞에서 미인대회 출전자의 자세로 미소를 띠고 있어 보라. 금세 경련이 인다. “고객님, 아메리카노 나오셨습니다!” 아무래도 이상하다. 친절을 내가 구매하는 물건에 포함된 가격이라고 생각하지 말고, 덤이라고 생각하면 모두가 조금 더 편한 세상에서 살게 되진 않을까. 무례하지만 않다면, 제발 남을 피곤하게는 말자.
암튼 새로운 친구는 서점이 ‘너무 좋다’며 출근을 일찍 하더라. “아!” 나도 처음엔 서점에서 일하는 것이 좋았더랬다. 지금은?! 일상의 업무! 무언가가 너무나도 좋은 건, 처음에만 가질 수 있는 마음인가. 두 번의 설도 보내고 2023년도 이제 새롭지 않은 계절이다. 초심을 생각한다. 서점에는 커플 손님이 꽤 오신다. 한동안은 커플 관찰이 재미있었다. 왜 한동안이냐고? 커플은 여전히 오지만 커플의 양태는 그리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진부하달까? 사랑은 늘 오직, 자기에게만 특별한 모양이다. 전형적인 커플 유형을 하나 소개하겠다. 서점에는 오직 둘만 있다. 점원은 식물이거나 배경이다.
연인은 늘 대학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교양으로 들은 철학 수업이 나온다. (철학 강의하시는 분은 수년이 지난 후에도 서점에서 안주가 될 수 있음을 유념하시라!) 열받게 한 교수, 넘지 못한 철학자와 책, 좋아하는 철학자와 읽었던 철학 서적들이 나열된다. 자신과 관련된 철학에 관한 모든 정보를 들을 수 있다. 어떤 커플은 1시간이 넘게 서점을 돌며 이야기를 나눈다. 소요서가가 교보문고가 아님에도 그렇다. 서점의 식물로서 연인들의 연애드라마를 너무 들어서 이제 그 이야기는 크게 흥미롭지 않다. 다만, 커플들의 특징을 발견할 수 있는데 이야기를 나누며 책을 밀어 넣는다는 것이다. 그것도 아주 깊게. 무의식적인 행동일 것인데, 책의 입장에서는 등이 아프겠지 싶다. 커플이 나가고 나면 알바생은 반드시 서가를 둘러보고 책장을 정리해야 한다. 물론 서가정리는 알바생의 몫이니 손님은 신경 쓸 일이 아니다.
언젠가 직원님과 커플의 특성을 이야기하면서 커플에게는 서점 이용 시간을 30분으로 제한해야겠다고 했다. 농담이었다. 그랬더니 깜짝 놀라며, 안된다고, 그 서점에 마녀가 있다는 소문이 날 것이라고 했다. 농담이었을 것이다. 어떤 학생이 어떤 교수를 지칭하며 ‘마녀’라고 했다. 못 들어본 별명이었다. “그 선생님 깐깐하셔?” 학생의 답은 그랬다. 재미도 없는 플라톤의 <국가>를 읽고 과제를 하라고 했다는 것, 그리고 학점도 짜게 줬다는 것. 마녀 되기란 얼마나 쉬운가.
내게 자신들의 철학 드라마를 들려준 커플은 ‘거의’ 빈손으로 나간다. 나는 주인이 아니므로 책을 사 가지 않아도 신나게 “또 오세요”라고 인사한다. 다만 이런 생각은 든다. 그들의 인생 드라마는 계속되지 않겠는가. 책 이야기도 계속되어야 하지 않을까. 대학 시절 읽은 책으로 우리의 레퍼토리가 끝나는 건, 좀 이상하다. 마녀 되기를 무릅쓰고 한마디 하자면, 둘의 연애드라마를 위해 연인에게 서로에게 책을 선물하시라. 다음에 만나서, 만나기 위해 책 안부를 전하는 것도 좋지 않을까.
소요서가의 스테디셀러에 드는 책이 에리히 프롬의 『사랑의 기술』이다. 아주 오래전 신입생 시절, 교양수업의 교재이기도 했다. 수십 년째 판매, 아주 잘 판매되고 있는 책이다. 책이 좋은 탓이 크겠지만, 우리의 영원한 관심사인 사랑이 주제이기 때문은 아닐까. “사랑은 수동적 감정이 아니라 활동이다. 사랑은 <참여하는 것>이며 <빠지는 것>은 아니다. 가장 보편적인 방식으로는 사랑은 원래 <주는 것>이지 받는 것이 아니라고 말함으로써 사랑의 능동적 성격을 설명할 수 있다.” 프롬의 말이다. 초심이 달라진다, 달라져야 한다.
(쓸데없는 사족) 프롬의 책이 몇 권 있는데, 그 책도 꾸준히 나가는 뻔이다. 프롬 없었으면 우리 서점, 어쩔 뻔했을까. 프롬의 힘을 느낀다. 그런데 다른 서점에서도 그런가가 몹시 궁금하기도 하다. 암튼, 프롬에게 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