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서점알바 03화

서점의 개점과 마감, 그리고 로망

by 수경


서점 일을 시작한 지 두 달쯤 되었다. 내게는 ‘오랜 로망의 충족’이라는 만족감이 주어졌다. 다수의 현대인들은 지나치게 머리/정신만 사용하면서 산다. 근무시간 내내 컴퓨터 앞에 앉아있는 직장인을 생각해 보라! 사람이 온전하려면 머리와 눈만이 아니라 육체/몸도 사용해야 한다. 그래야 자아의 비대를 막고 정신과 몸도 건강할 수 있다. 물론 책을 읽고 쓰는 행위도 육체노동에 가깝다. 누구나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 <순수이성비판>을 읽을 수 있는 건 아니라는 점에서 그렇다. 김영민 선생이 말하는 공부를 위한 정신의 척추 기립근을 세우기 위해서는 육신의 버팀이 필수다.


“정신의 척추 기립근이야말로 유용성의 신화가 지배하는 21세기, 무용한 공부에 매진하는 이에게 허여된 마지막 기대 효과와 같은 것이다(김영민, 공부란 무엇인가, 어크르스, 2020, 87쪽).”


서점의 일은 묘하게 육체와 정신이 결합된다. 책을 배치하거나 손님이 찾아달라는 책을 찾는 일은 육체를 움직이는 활동 같지만, 시실 머리가 더 빨리 움직여야 가능하다. 알바 처음에는 오후에 출근해서 마감업무만 경험했는데, 최근에 개점업무도 하게 되었다. 서점의 알바는 오픈직원과 마감직원으로 나뉜다. 오픈직원은 개점업무와 일과업무를 수행하고, 마감직원은 일과업무와 마감업무를 수행한다. 일과업무는 중복되기도 하고, 개점업무와 마감업무는 반대의 일을 수행해야 한다. 문을 닫고 닫힌 문을 열고, 포스기를 끄고 켜고 블라인드를 내리고 올리고, 불을 끄고 켜고, 의자와 입간판을 들여놓고 꺼내놓고….


의자와 입간판은 무게가 상당하다. 특히 의자 다섯 개는 늘 같은 질문을 하면서 들여놓는다. “굳이 이걸 왜 안에 들여놓아야 하는가?” 무거워서 누가 들고 갈 수도 없을 것 같고, 무엇보다 다시 꺼내야 하는데! 그러다가 생각한다. 혹시 없어지면 내 로망도 사라지니깐 열심히 옮기자! 볕 좋고 공기까지 맑은 어느 날 나는 이 의자에 앉아 시원한 맥주 ‘한’ 캔을 마시고 싶다. 의자와 조우한 첫날부터의 로망이다. 3시에 인계하고 나올 때는 안 되겠지? 다음 알바생이 얼마나 부럽고 일하기 싫겠는가. 사장님도 째려볼 수 있겠다. 마감하고 나오는 8시는 괜찮을까? 어두울까, 좀 무서울까. 실현이 좀 힘든 로망이 되겠다 싶지만, 그래도 계속될 것이다.


햇살이 적당히 내리쬐고 미세먼지는 없으며 오가는 사람도 약간 있는 좋은 날. 이 테크의 끝에 있는 수제맥주집의 것도 좋고 편의점에서 파는 맥주도 좋겠다. 좋은 사람과 책 이야기하면서 늙어가는 모습을 그려보고 척추 기립근을 어떻게 보존할지에 대해 수다 떠는 것은 행복한 일일 터이다. 아니다, 아무 말 없이 나란히 앉아 맥주만 홀짝이는 것이 더 좋을지도 모르겠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알바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닌 것 같다. 손님이 해보면 맞춤한 일이겠다. 도전하시라! 길거리/골목에서 삼겹살도 구워 먹는 힙한 곳, 을지로 아닌가.



(사족) 그 사이 밖에 두는 테이블이 2개 생겼다. 디자인적으로는 돌의자와 썩 어울린다고 할 수 없지만, 로망 실현을 위해서는 유용하다. 간혹 거기에 앉아서 서점 안을 들여다보며 쉬어가거나 대화를 나누다 가는 분들도 있다. 인간이 만들어낸 모든 것에는 미와 기능이 있다. 양자가 조화를 이루면 좋지만, 극단으로 흐리기도 한다. 서점에서 만나는 책도 그렇다. 내용을 보기도 전에 책의 외피가 화려한 것도 있고, 내용은 좋은데 외피가 너무한 것도 있다. 무엇보다 짜증나는 건 화려한 외피에 비해 내용이 없을 때다. 내 경우에는 그렇다. 하지만 서점에서 일하며 느낀 것인데, 책은 디자인도 상당히 중요하다. 젊은 친구들이 사가는 책, 많이 팔리는 책은 가볍고 이쁜 책들도 상당한 비중을 차지한다. 유동 인구가 꽤 있는 힙한 곳이기 때문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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