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서점알바 02화

매대로 이어진 길

by 수경

<서울리뷰오브북스> 4호가 도착했다. 차례를 훑어보다가 ‘김연수’를 발견하고 그 페이지로 직진했다. 독애(獨愛/讀愛)하는 김연수. 작가는 소설가로 이름을 냈지만, 나는 작가의 산문을 더 좋아한다. “지저분하게 책 읽기를 권함”도 희미하게 웃으며 읽었다. 만난 적도 만날 일도 없지만, 작가와 나 사이에는 작은 길이 이어진 느낌…! 좋아하는 작가에게 독자가 갖게 되는 느낌일 것이다. 내 공간의 책들이 좀 정리되면, 작가가 제시했던 말년을 보내기 위한 서재 분류법도 해보고 싶지만, 수년째 궁리만 하고 있다. 궁리(窮理)하다 끝날 인생!

작가의 책이 프랑스어로 번역되었을 때의 에피소드로 글이 시작된다. 툴루즈의 한 서점에서 행사를 했는데, 그 서점은 중심가의 작은 서점에서 시작해 인근 가게들을 사들이며 서점을 확장시켜 미로처럼 이어진 큰 서점이 된 곳이었다. 미로처럼 이어진 서점이라니! ‘책이 모여 있는 집’의 느낌이 물씬 풍긴다. 문자 세계의 독자들도 끝없이 이어지는 책들을 찾아서 읽는 이들 아닌가. 대체로 독서는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칸트에서 스피노자로 가는 사람도 있고, 푸코를 읽다가 스피노자를 만나기도 하고, 누스바움을 읽다 스피노자를 만나는 식으로. 책들이 모인 작은 집, 소요서가에서는 그 길들을 수없이 만날 수 있다.

조금 일찍 출근했더니 서점의 매대 정리를 구경할 수 있었다. 출판대행업체에서 온 수십 권의 책들을 풀고, 권수를 확인하고, 매대와 서가로 책들을 이동시켰다. 그 모습의 재빠름과 통일성에 약간 놀랐다. 그녀의 머릿속은 이미 ‘서점화’되어 있었다. 옆에서 쓰잘데 없는 것을 물어대는 내가 좀 귀찮았을 것이지만, 그 손놀림으로 책들은 쓰잘데 있게 변화했다. “대형서점에서는 그 많은 책들을 어떻게 분류, 배치하는지 모르겠어요.” 모르긴 뭘 몰라, 알고 있구만!


“서점의 매대는 우리의 지식이 어떻게 구성되는지를 잘 보여준다. 모든 책은 다른 책 사이에 위치한다. 매대에서 한 책의 옆에 어떤 책들이 있는지는 매우 중요하다. 서점에서 나는 참고서가 있는 쪽 매대는 가지 않는다. 거기에 내가 찾는 책이 있을 확률은 거의 없기 때문이다. 만약 카프카와 마르케스와 귄터 그라스 사이에 처음 들어보는 작가의 소설이 있다면, 나는 주저 없이 그 책을 들춰볼 것이다. 그 위치만으로도 많은 것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식으로 지식의 세계에서는 무엇과 연결되느냐가 무척 중요하다. 이렇게 연결될 때 지식은 큰 힘을 가진다.”(김연수, “지저분하게 책 읽기를 권함”, 서울리뷰오브북스, 220쪽)


지식의 세계만 그러랴. 책과 책 사이에 책이 있듯 우리는 사람과 사물들 사이에 있다. 그렇게 우리는 늘 무엇들과 연결되어야 한다. 무엇과 연결되느냐에 따라 세상은 넓어지고 우리는 깊어진다. 넓어지고 깊어진 만큼만 우리는 나아지고 좋아질 것이다. 좋아하는 작가 덕분에 좋은 책을 읽었는데도 우울할 때, 어이없이 싸대기 맞은 것 같을 때면 <베를린 리즐링>을 마신다. 우울과 분함은 끊어내고, 다시 연결되기 위해, 연결의 자드락길을 찾기 위해서. 그 자드락길은 나만이 안다.


<사족> 서점 와서 만난 사람 중에 가장 ‘잰’ 몸을 가졌던 그는 이제 서점 매대를 정리하지는 않는다. 다른 업무도 많고 업무가 확장되기도 했는데, 그 업무의 속도도 빠르다. 그 입장에서는 다른 사람들이 거북이처럼 보일 것 같다. (답답해!) 서점에서 판매하는 책은 일주일에 두 번 입고된다. 입고도서를 정리하는 것도 알바의 일이다. 상자 포장을 풀고, 책 권수와 영수증을 확인하고, 빈 서가에 꽂고, 신간으로 입고된 책은 사진을 찍어 인스타에 올린다. 그리고 입고된 책들을 컴퓨터에 등록하는 것으로 끝난다. 아! 신간입고는 새로 자리를 내야 하기에 고민도 해야 한다. 서점이 크지 않으니 늘 책들이 싸우는 형국이다. 이 싸움의 주도권은 책의 디피를 하는 알바의 몫이겠다. 작고 철학으로 특성화된 서점에서 책의 전시·배치는 상당히 중요한 문제라고 생각하기에 이제는 신경 끊은 분야이기도 하다. 다만 전시와 배치가 변경될 때마다 따라가야 한다.

keyword
이전 01화판매처와 구매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