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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윤제 Sep 13. 2023

이편 혹은 저편, 그 무엇도 아닌 불의 신

숫자 3과 영화 <오펜하이머>의 관계에 대하여

“Batter my heart, three person'd God.
내 심장을 두드리소서, 삼위일체의 신이여.”


존 던의 소네트의 영감을 받아 핵실험의 이름을 ‘트리니티’로 지은 오펜하이머의 영향 때문인지, 감독인 크리스토퍼 놀란은 디테일에 집착하듯 영화 내내 3을 표현하고 강조한다.


영화 내에서 표현되는 3은 다음과 같으며, 삼원성은 1:1:1이 아니라 2:1로 구성되어 있음을 유념해야 한다. 미국의 자본주의와 소련의 공산주의, 그리고 나치의 파시즘이 이루는 균형이 붕괴되는 것에서 본격적인 오펜하이머의 몰락이 시작되기 때문이다.


세 개의 시간선(1. 오펜하이머가 주축인 핵분열 2. 스트로스가 주축인 핵융합 그리고 3. 두 개의 시간선이 종국에 수렴하는 AEC 보안인가 청문회)

스트로스의 정치 공작이 기원이 된 삼자대면(오펜하이머와 아인슈타인, 그리고 스트로스)

아인슈타인과 오펜하이머의 세 번의 만남(낮에 두 번, 밤에 한 번) 연못 장면의 디테일이 미친 건 아인슈타인이 연못에 돌을 던짐으로써 확정적인 파장을 보여주고, 오펜하이머는 비를 통한 연못의 불확정적인 파장을 보여줌으로써 둘의 차이를 만드는 것.

세 번의 비(흐린 날의 비: 영화 처음과 파장을 보여주기 위한 비와 핵실험 직전 호우, 그리고 마지막 파장의 결과와 시작을 동시에 보여주기 위한 장면인 맑은 날의 비)

세 번의 핵폭발(심리적인 폭발 2번과 실제 폭발을 보여 준 트리니티 핵실험) 핵폭발 자체도 또한 감각적인 버섯구름과 소음, 그리고 비감각적인 방사능. 실험 결과 장면도 세 개의 쇼트를 나눠서 비춘다.

세 번의 내파실험(2번 성공, 1번의 실패)

에드워드 텔러의 수소폭탄 제의(2번의 거부와 1번의 유보)

세 명의 여자ㅋㅋ(내연녀인 진 태트록과 루스 톨만, 그리고 정실인 캐서린 키티 오펜하이머)

트루먼 대통령과 면담(대통령과 장관, 그리고 질질 짜는 오펜하이머)

비공식 청문회에서의 세 명으로 꾸려 진 AEC 보안인가 위원회(찬성 2 : 반대 1)

맨해튼 프로젝트에서 이론가인 그는 실험과 실제 사용(트루먼)에서 유리되어 있음.

크레딧을 제외한 영화의 러닝타임 정확히 “3시간”


과학의 영역 내에서는 양자역학을 거부하고 평화주의를 고수하는 아인슈타인과 수소 폭탄 제작을 통한 핵무기 체계의 극대화를 주장하는 에드워드 텔러, 그 사이에 핵무기를 만들고 핵무기를 통한 평화를 꿈꾸는 오펜하이머가 있다. 이는 핵무기를 통한 전쟁의 불가능성이라는 희망과 지구의 파멸이라는 절망의 양가성 사이에서 오펜하이머는 인류가 평화를 이뤄낼 수 있다는 믿음만을 가지고 행동하기 때문이다.


정치적 영역에서 우익과 좌익 세력 사이에서 중립을 고수한 채 스트로스의 정치적 공작과 이에 적극적으로 맞서야 한다는 아내 키티의 요구 사이에서 무기력한 듯 수동적인 입장을 취한다. 마찬가지로 정치와 과학 사이에서 그는 윤리로 무장한 채 양쪽에서 공격당한다.

결론적으로 영화 내내 등장하는 삼원성이 1:1:1이 아니라 2:1의 한쪽으로 기울어져 있거나, 흑백 논리에서 회색론자를 자처함으로써 공격당하는 것이 핵심이다. 이 영화의 비극적 기원인 프로메테우스 신화가 도출되기 때문이다.


즉, 신과 인간 사이에서 고뇌하고 족쇄에 묶인 채 고통받는 티탄인 프로메테우스. 그가 신을 거역하고 인간에게 불을 전달함으로써 형벌을 받는 것이 인간을 사랑하는 마음 때문이었듯, 오펜하이머가 찬성과 반대, 양극단의 사이에서 중립을 유지한 채 수동적으로 공격당하는 것은 애국심과 더불어 핵을 통한 전쟁의 종식이라는 희망을 품고 있었기 때문 일터다.


번외 : 프로메테우스의 불이 무엇을 의미하는가? 신화의 프로메테우스가 인간에게 가져다준 불은 어둠에서 벗어나기 위한 것, 즉 합리성과 이성의 추구에 따른 확실성, 그리고 이를 통해 자연을 지배할 수 있는 능력이었다. 그러나 아메리칸 프로메테우스가 인류에게 가져다준 불은 반대로 광대한 어둠이 그 영역을 둘러싸고 있다는 것이다. 달리 말해 불확실성에 의해 인간이 휘둘리고 고통받게 되는 것. 이로써 불의 의미는 희망에서 절망으로 전환된다.


孫潤祭, 2023. 09.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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