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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윤제 Oct 06. 2023

《비극으로서의 음악 I》

헨리 퍼셀 — 오페라 <디도와 아이네이아스>, Z. 626

로마 제국 건립의 시초가 되는 트로이의 영웅 아이네이아스와 카르타고의 여왕 디도의 운명적인 사랑 이야기를 토대로 영국의 작곡가 헨리 퍼셀이 지은 오페라 <디도와 아이네이아스>. 줄거리를 요약하자면,


트로이 전쟁에서 패해 피난길에 오른 아이네이아스는 패망한 나라를 재건하라는 신탁을 받고 이탈리아로 향한다. 그러던 와중에 그는 카르타고에 도착해 카르타고의 여왕 디도와 만난다. 아이네이아스는 디도와 운명적인 사랑에 빠지지만, 디도를 질투한 마녀의 계략에 의해 사랑은 끝내 이뤄지지 못한다. 처음에는 망설이지만 결국 아이네이아스는 주어진 사명을 이루기 위해 디도를 떠난다. 이에 디도는 자신의 운명을 비관하며 스스로 삶을 거둔다.


  <디도와 아이네이아스>의 2번째 곡, <Ah, Belinda>는 위치나 구조상으로 볼 때 디도의 오페라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형식 구조상으로는 운명이 암시되는 극의 초반부이고, 이야기상으로는 디도와 아이네이아스가 만나 운명적 사랑을 시작하기 직전이다. 그녀는 “눈에 먹구름”—오페라의 첫 아리아는 <Shake the cloud>이다—을 드리운 채 카르타고의 불안정한 미래에 대한 걱정과 고뇌를 노래한다.


이 곡에서 여러 파라미터들을 통해 표현되는 것은 비극성, 즉 그리스 비극의 핵심인 ‘운명’이다. 4마디로 이루어진 규칙적인 프레이즈의 베이스 오스티나토는 반복을 통해 인간에게 주어진 ‘운명’을 상징한다. 고대 그리스 비극의 경우 대개 주요 등장인물에게 참혹한 결말로 이루어진 운명이 예언 혹은 신탁을 통해 암시된다.


이후 비극의 전반적인 내용은 운명의 대상이 되는 등장인물이 정해진 운명에 대해 저항하는 것이 된다. 음악에서는 이를 오스티나토와와 달리 불규칙한 주기로 노래됨으로써 오스티나토와 소프라노 멜로디가 상충한다. 우리는 여기서 정해진 운명에 순종하지 못하고 저항하는 인간의 자유의지를  발견할 수 있다.


종국에는 참혹한 운명이 현실화됨으로써 비극이 끝나게 된다. 이러한 비극의 형식을 한 문장으로 요약한다면, 인간에게 주어진 운명과 자유의 대립구도에서 운명이 승리하는 것’이라 말할 수 있겠다. 그러나 “평화는 나의 이방인일 뿐”이라는 의미심장한 가사와 함께 노래가 종결되고, 기악반주가 등장하며 디도의 멜로디는 오스티나토와 맞물린다. 인간은 여하간 처절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항상 운명에 패함으로써 운명을 실현시키는 자로 귀속되는 것이다.


이것의 전형적인 예를 소포클레스의 《오이디푸스 왕》에서 만날 수 있다. 주인공 오이디푸스는 자신이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와 결혼해 자식을 낳을 것이라는 끔찍한 예언을 받고 이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키워준 부모와 나라를 떠난다. 그는 떠나는 중 마주친 무뢰배를 해치우고, 스핑크스의 수수께끼를 풀어내 테바이 시민들을 구원함으로써 인간으로서 최고의 명예, 즉 영웅이라는 칭호와 왕이라는 권력, 영예를 모두 얻는다. 소포클레스의 비극이 시작하는 지점이 이처럼 그가 가장 높은 자리에 위치한 때다.


그러나 극이 진행됨에 따라 운명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피난길이 곧 운명을 향한 지름길이었음을 깨닫게 되며, 현실을 보지 못한 죄에 대한 응벌로 스스로 눈을 뽑아내고, 나라로부터 추방되어 떠돌이가 된다. —근친이라는 불미스러운 결합을 통해 낳은 그의 자식들도 다른 작품에서 모두 오이디푸스와 유사하게 비참한 결말을 맞는다.


오이디푸스의 비상과 추락을 모두 관찰한 소포클레스가 우리에게 전하는 말은 다음과 같다. “그래서 우리는 마지막 날을 볼 때까지 기다리고 인간들 중 그 누구도 행복한 사람이라고 부르지 말아야 하오. 그가 고통을 겪지 않고 삶의 경계를 지나갈 때까지는.”


그러므로 이 곡을 구성 자체가 ‘비극성’의 모방으로 해석할 수 있다. 또한 이 악곡이 극 전체의 초반부에 배치된 것을 상기해보면 극의 결말—아리스토텔레스는 『시학』에서 비극이 세 가지 요소를 가지고 있다고 말한다. muthos(이야기)와 ethos(성격), 그리고 telos(결말)이다—을 가리키는 일종의 ‘예언’으로써 기능하게 됨을 알게 된다.


孫潤祭, 2023. 10. 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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