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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윤제 Oct 06. 2023

《비극으로서의 음악 II》

헨리 퍼셀 — 오페라 <디도와 아이네이아스>, Z. 626

비극의 ‘운명’이 암시적으로 주어지는 곳이 <Ah, Belinda>라면, 명시적으로 실현되는 곳은 극의 후반부에 위치한 디도의 라멘트로 유명한 <When I am laid in earth>이다. 역시나 운명을 암시하는 베이스 오스티나토가 등장하지만, 차이가 있다면 후자의 더 이상의 저항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노래와 베이스 오스티나토의 주기가 동일한 것은 이제 그녀가 비극적인 운명을 받아들이고, 스스로 생을 버리고자 함을 의미한다.


노래의 처음부터 끝까지 연주되는 것은 ‘라멘트 베이스’, 즉 으뜸음부터 딸림음까지 반음계적으로 하행하는 음형이다. 이 음형은 슬픔을 나타내며, 여러 바로크 작곡가들의 작품들에서 찾아볼 수 있을 만큼, 당시 바로크 시대에 자주 활용되는 음악적 장치였다.


“내가 죽은 후에 당신의 가슴에 어떠한 근심도 남아있지 않기를When I am laid in earth, may my wrongs make no trouble in thy breast” 떠나는 임에 대한 축복 아닌 축복과 원망으로 점철된, 흡사 김소월 <진달래꽃>풍의 가사를 시작으로 디도는 라멘트 베이스 위에서 노래하며, 기악 반주는 마치 깊은 한숨을 쉬듯 프레이즈를 짧은 단위로 끊으며 연주한다.  


이후 악곡의 클라이막스는 상충되는 가사로부터 비롯된다. 디도는 “나를 기억해 주오 Remember me”, 그러나 “내 운명은 잊어주오Forget my fate”처럼 상반되는 구도(각 가사의 음정도 가장 큰 옥타브 차이)의 가사를 노래하는데, 모순적인 가사가 운명으로 수렴되는 디도의 처절한 현실을 가감 없이 드러냄으로써 그녀의 파토스는 극대화된다.


《디도와 아이네이아스》를 지은 로마의 시인 베르길리우스가 전하길, 안색이 창백하고, 두 뺨은 떨리고, 눈에는 핏발이 선 디도가 스스로 삶을 거두기 직전에 유언처럼 남긴 말은 이렇다고 한다.


“나는 다 살았도다(Vixi). 이제 커다란 이미지(magna imago)가 되기 위해 지하로 내려가겠노라.”


운명은 디도를 하데스(Haidés라는 말은 시각이 없는 것, 즉 가시계 너머에 있는 비-가시계를 의미한다)에게 인도한다. 이를 끝까지 거부하는 것이 아닌, 스스로 지하세계로 내려갈 것을 결단한 그녀가 요청하는 단 한 가지는 ‘기억’, 즉 ‘이미지’이다. 키냐르는 쓴다. 예술에서 표현된 “‘이미지-행동’들은 ethos(성격)로 응축됨으로써 인간을 인간의 기억 속으로 들어가게 만든다.”


비극의 주인공들이 만들어내는 이미지 ‘이미지’, 즉 더 이상 운명을 부정하지 않고 받아들이고, 자기 처분(혹은 응징)을 가하는 결단의 순간으로 응축되는 이미지가 그로 하여금 운명을 극복하게 한다. “운명이 이긴 것처럼 보이는 순간, 그 개인은 스스로 받아들인 죽음을 통해 운명을 벗어”난다. 달리 말해, 운명이 점지한 길을 끌려가는 철저히 수동적인 상태가 아님이 드러난다. 그가 드러난 진실을 받아들임으로써 무엇으로부터도 회피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마지막을 스스로 결정하기 때문이다. 레비나스의 말이다.


이것이 바로 비극의 아이러니다. 달리 말해, 운명의 종착지로 향하는 개인은 수렴되어 그대로 소멸하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스스로 행한 결단과 결정을 통해 능동적인 존재로 거듭남으로써 존재를 발산한다.


사랑을 이어주는 큐피드가 이러한 아이러니를 뒤로한 채 세상을 떠난 그녀를 축복하며 오페라는 끝난다. 처음에 제시되었던 고뇌와 슬픔의 상징인 “구름” 위로 큐피드가 날아오르며.


(큐피드가 그녀의 무덤 위 구름 위에 나타난다)


늘어진 날개 달고 큐피드여 오라,

그녀의 무덤에 장미를 던져다오,

그녀의 영혼같이 부드럽고 다정하게.

여기서 언제까지나 그녀를 지켜다오.

With drooping wings you Cupids come,

To scatter roses on her tomb.

Soft and Gentle as her Heart.

Keep here your watch, and never part.


- THE END -


孫潤祭, 2023. 10. 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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