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손윤제 Oct 08. 2023

《파도》

시간이 비처럼 내린다. 하지만 땅은 금세 말라버린다.


그래서 시간을 고이게 만들어야 한다. 시간이 고일 수 있게 골을 파내야 한다. 만들어진 골은 기억이 된다. 기억은 저절로 생기는 게 아니라, 형성되는 무언가다.


그래서 파인 골의 서로 다른 깊이와 모습이 그 사람의 꼴을 결정한다.


그 어떤 의미와 가치도 시간에 적셔지지 않는다면 싹을 틔우지 못한다. 가뭄이 든 메마른 땅에서 사람의 의욕과 행위는 타 죽는다. 허무주의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사람들은 그 자리에서 선인장이 된다. 그리고 가시 돋친 말만 내뱉는다. 모든 것이 “부질없다”, “덧없다”, “헛되다” (···)


반대로 시간을 고이게 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다른 곳으로 흐르게 만드는 사람이 있다. 흐르는 어떤 시간은 시냇물로, 강으로, 바다로 흘러가기도 한다. 바다로 흘러간 시간은 대류 한다. 과거와 현재, 미래가 뒤섞인 채 시간은 파도처럼 밀려오고, 다시 쓸려나간다.


파도는 예술과 학문이라는 이름으로 불린다.


孫潤祭, 2023. 10. 08.

작가의 이전글 《비극으로서의 음악 II》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