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단의 순간 – 낙인이 아니라 시작이었다

by 지엔

ADHD라는 단어를 처음 들은 건 성인이 된 후가 아니었다. 내 마음의 기록을 거슬러 올라가 보면, 출발점은 언제나 중학교 3학년 3월로 돌아간다. 학년이 올라가면서 교실 분위기는 달라졌다. 선생님들이 말했다.

“이제부터는 진짜다. 고등학교는 성적으로 간다.”


그 말은 경고처럼 들렸다. 나도 조금은 긴장했다. 책상 앞에 앉아 중간고사 공부를 시작해야 할 때가 온 것이다. 국어 문제집을 펼쳤지만 한 페이지를 읽는 데 십 분이 걸렸다. 문장들은 눈앞에서 미끄러져 나갔다.

외워야 하는 영어 단어는 머릿속에서 금방 사라졌다. 수학 문제 앞에서는 시간만 흘렀다. 공부를 하려고 앉아 있어도 생각은 늘 다른 방향으로 튀어버렸다.


나는 나에게 화가 났다. 왜 이렇게 집중이 안 될까. 왜 이렇게 시간이 새어 나갈까. “정신 차리자”라고

스스로 다그쳤지만, 다그칠수록 머리는 더 하얘졌다. 불안이 서서히 몸으로 스며들기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 밤, 책상에 앉아 문제를 풀던 중 갑자기 이상한 감각이 밀려왔다.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고, 숨이 깊게 들어가지 않았다. 공기가 목에서 걸려 더 내려가지 않는 느낌. 손끝이 저리고 가슴이 조여왔다.

“왜 이러지? 잠깐만… 숨이, 숨이 안 쉬어져…”


처음 겪는 공포였다. 벽에 기댔지만 호흡은 더 빨라졌다. 몸이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가족이 놀라 응급실로 나를 데려갔다. 검사 기계들이 몸 위를 오갔고 간호사가 혈압을 재며 말을 걸었지만, 내 의식은 흐릿했다. 의사는 결과지를 들여다보더니 조용히 말했다.


“심장이나 폐에는 이상 없습니다. 불안으로 인한 과호흡일 가능성이 큽니다.”



그제야 나는 내가 무슨 상태인지 이해했다. 몸이 고장 난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마음이 몸을 흔들고 있었다. 응급실 의사는 정신건강의학과 협진을 권했다. 그 말은 내게 낯설었고, 동시에 조금 무서웠다.


며칠 뒤, 나는 생애 처음으로 정신과 진료실에 앉았다. 의사는 내 일상과 감정 패턴을 묻기 시작했다.

“갑자기 마음이 가라앉는 순간이 자주 있나요?

이유 없이 불안하거나 숨이 차오른 적이 있나요?

감정 기복이 있다는 말을 들어본 적 있나요? “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누군가 내 안을 들여다보고 있는 기분이었다. 결국 진단은 이렇게 내려졌다.

“기분 조절의 어려움과 불안 증상이 뚜렷. 조울증 경향이 의심.”


사실 조울증으로 치료받는 기간동안 ADHD라는 말은 진단 과정에서 한 번도 언급되지 않았다.

내가 이때 콘서타와 아토목을 같이 먹었다는 사실을 26살이 된 지금, ADHD를 배우고 난 이후 과거의 내 모습을 되짚어 가는 과정에서 당시 진료기록지의 처방내역을 보다가 발견했으니 이는 확실하다.

당시에 ADHD가 주 증상으로 다뤄지지 않았던 것은 불안과 감정 기복이 너무 선명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언제나 가장 눈에 띄는 증상부터 본다. 내 경우 그것은 부주의나 산만함이 아니라 감정의 요동이었다.


나는 조울증 치료를 시작했다. 약을 복용했고, 병원에 다니며 상담을 받았다.

그 시기는 말로 표현하기 어렵지만 이렇게 설명할 수 있을 것 같다.


“무너지지 않기 위해 애쓰던 시간. 겨우 균형을 잡아가는 연습.”


조울증 치료는 분명 효과가 있었다. 감정의 파도는 점점 잔잔해졌고, 과호흡이나 극심한 불안 발작 같은 증상은 서서히 사라졌다. 약물 치료와 상담을 병행하면서 나는 어느 정도 일상의 균형을 되찾는 듯 보였다.


하지만 이상한 점이 있었다. 감정은 안정됐는데, 삶은 여전히 정리가 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공부는 늘 벼락치기였고 계획은 늘 계획에서 끝났다. 분명 책상에 앉아 공부를 시작하려 해도, 시작을 하기까지 한참이 걸렸다. 교과서를 펼쳐놓고도 공책 정리부터 해야 할 것 같고, 책상이 정리가 안 되면 마음이 불편하고, 정리를 시작하면 본래 하려던 일을 잊어버리기 일쑤였다. 어떤 날은 공부보다 계획표를 더 오래 만드는 날도 있었다.


선생님은 말했다.

“너는 할 말도 많고 생각도 깊은데, 왜 결과가 안 나오니?”


그 질문은 칭찬처럼 시작했지만 결국 실망의 메시지로 끝났다. 나는 노력하고 있었지만, 결과는 노력의 양과 비례하지 않았다. 사람들은 나를 보고 말했다.

“집중력이 좀 약하네.”

“덜렁대는 거 고치면 훨씬 나아질 텐데.”

“계획을 세웠으면 좀 지켜야지.”


하지만 아무도 내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는 몰랐다. 나조차 몰랐으니까.


그러던 어느 날, 의사 선생님은 차분하게 말했다.

“이제 증상이 충분히 호전됐습니다. 치료를 종료해도 괜찮겠습니다.”

그 말을 들었을 때 나는 안도했다. 이제 나는 괜찮아졌다. 그렇게 믿고 싶었다.

그래서 약을 끊었고 병원을 떠났다. 그 후로 5년 동안 나는 다시는 병원을 찾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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