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단의 순간 – 낙인이 아니라 시작이었다 2

by 지엔

하지만 감정이 잠잠해졌다고 해서 모든 것이 해결된 것은 아니었다.

여전히 나는 물건을 자주 잃어버렸다. 쉬는 시간에 친구에게 연필을 빌려줬는데 어디에 뒀는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가방 안을 뒤지고 교실 전체를 돌아다녀도 보이지 않았다. 결국 “미안, 잃어버린 것 같아”라는 말을 반복해야 했다. 그런 일이 계속되자 나는 사람들에게 이런 말을 하기 시작했다.


“내가 좀 덤벙대.”


덤벙댄다는 말은 편리한 가면이었다. 하지만 그 말은 진실을 가리기 위한 가벼운 농담일 뿐이었다.

나에게 일어나는 문제는 덤벙댐으로 설명하기엔 너무 체계적이고 지속적이었다. 항상 중요한 것을 놓쳤고,

시작은 늦고, 마감은 벼랑 끝이었다. 마음은 분명 있는데 시작이 안 되고, 생각은 많은데 실행은 되지 않았다.


그 당시 나는 ADHD의 존재를 알고 있었지만, 나와는 무관한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ADHD는 산만하고 가만히 못 앉아 있는 아이들의 이야기라고만 배워왔기 때문이다.

나는 산만하기보다는 깊이 생각에 잠기는 사람이었고, 적어도 겉으로 드러나는 외향적인 주의 전환은 심하지 않았다. 그래서 내 삶 속에 있는 ADHD의 흔적을 보지 못했다.


그렇게 나는 5년을 지냈다. 감정은 안정됐고, 그럭저럭 살아가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보이지 않는 차원의 어려움은 여전히 내 일상에 눌러앉아 있었다. 더 나빠진 건 외부가 아니라 내 안이었다.


나는 나를 믿지 못하게 되었다.

“너는 왜 늘 시작을 못 해?”
“왜 약속시간을 또 놓쳤니?”
“왜 자꾸 똑같은 실수를 반복해?”

나는 정말 알고 싶었다.
내가 진짜 게으른 걸까? 아니면 뭔가 이유가 있는 걸까?


스물여섯이 되던 1월, 나는 어느 순간 깨달았다.
“나 ADHD인가봐."


결정적인 계기는 아주 갑작스럽게 다가왔다.
어느 날, 대학교 운동장 한쪽에 앉아 친한 동생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때였다.

찬 공기가 볼을 스치고 지나가던 겨울 오후였다. 동생은 진지한 표정으로 자기 고민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의 말을 듣고 있었다. 분명 그렇게 믿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동생이 내 말을 끊었다.


“언니… 내 얘기 듣고 있어?”


그 말은 예상치 못한 질문이었다. 나는 당황해서 답했다.

“응, 듣고 있지. 왜?”


동생은 잠시 망설이다가 말했다.

“아니… 듣고 있긴 한 것 같은데, 근데 아닌 것 같아서. 언니 내가 무슨 말 했는지 안듣고있지?"


그 순간, 나는 그 말의 의미를 깨달았다.
내 시선은 동생에게 가 있는 듯했지만, 동시에 운동장을 가로질러 지나가는 빨간색 자동차와, 그 뒤로 펼쳐진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분명 동생의 말을 이해하고 반응하고 있었지만, 동시에 다른 장면에 시선과 의식이 분산돼 있었다.


그 순간, 가슴이 서늘해졌다.
'나 방금… 나도 모르게 다른 곳을 보고 있었어. 근데 나는 그걸 의식하지 못했어. 내 집중은… 왜 항상 두 갈래로 나뉘는 거지?'

그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묘한 생각이 스쳤다.

이전에 교과서에서 읽었던 한 줄이 갑작스레 떠올랐다.

"청소년기 ADHD를 겪은 경우 대부분 자라면서 증상이 호전되지만, 약 23% 정도는 성인기까지 그 증상이 이어지기도 한다."

'나 진짜 ADHD 맞나봐'


그날 밤 나는 오랜 침묵 끝에 스스로 인정했다.

“나는 설명되지 않은 어떤 문제를 안고 살아왔고, 그 이름이 어쩌면 ADHD일지도 모른다.”

그 다음 날, 나는 병원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성인 ADHD 검사를 받고 싶습니다.”

cat검사를 하고, 결과를 들었다.
검사지는 조용한 목소리로 진실을 적어냈다.


“주의력 결핍과 실행 기능의 어려움이 명확히 보입니다. 성인 ADHD 특성이 확인됩니다.”


놀랍게도 눈물이 나오지 않았다. 충격도 아니었다.
그보다 더 강하게 밀려온 감정은 안도감이었다.

“아, 그래서였구나.”
“그래서 나는 늘 나를 의심하며 살았던 거구나.”
“그래서 감정은 괜찮아졌는데, 삶은 여전히 뒤엉켜 있었던 거구나.”


나는 그날 알았다.

문제가 나라는 사람 전체가 아니었다.

문제는 설명되지 않은 채 남아 있던 내 뇌의 실행 체계였다.

게으른 게 아니었다. 다만 방법을 몰랐을 뿐이었다.


그날 이후,
그 대신 이렇게 부르기로 했다.


“나는 설명이 필요한 사람이었다.”


그리고 진단은 나를 규정한 것이 아니라 나를 설명할 언어를 주었다.
언어가 생기자 방향이 생겼다. 그리고 방향이 생기자 삶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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