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HD로부터 숨지 않기
많은 ADHD인들이 자신의 ADHD를
대처하는 방법이 뭘까요?
물론 실천적인 대안을 생각하기도 합니다.
알람을 많이 맞추고, 메모를 많이 하고,
말하거나 움직이고픈 충동을 억지로 참기 위해서
다리를 꼬집는 등, 대안적인 방법을 나름대로
고심하지요.
그러나, 대부분 많은 이들이 생각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바로 'ADHD인거 티내지 않기' 입니다.
아마 ADHD인 당신도 그런 경험이 있을 것입니다.
말을 끊으려는 게 아니었는데 무례해 보였고,
몰입해서 얘기한 것이
열정이 아니라 “유난”이 되었으며,
좋아하는 것에 깊이 빠졌던 순간이
“과함”으로 오해받았던 순간들.
그리고 그 순간마다
“그냥 조용히 있을 걸.”
“이제는 내 색을 덜 드러내야겠다.”
그렇게 생각하며 조금씩 스스로를
접어 넣었을지 모릅니다.
아마 많은 ADHD 여러분이 자신의 진단 사실이나
증상을 숨겨온 것은,
그동안 주변사람들에게 이해받지 못한다고
느꼈기 때문일 것입니다.
심지어 본인 스스로도 자신과 타인의 차이점이
별로 장점이 아니라고 생각해서일수도 있고요.
아마 ADHD인 당신은 지금까지 당신의 의도가 다른
사람들에게 부정적인 모습으로 오해되었을 거에요.
또는 자신과 유사한 특징을 가진 다른 사람들에 대해서
사람들이 부정적으로 말하는 것을 듣고,
나도 저런 평가를 들을 거라는 두려움에 본인 스스로를
'감추고자' 했을지도 모르고요.
아마도 그 ADHD 특성을 숨겨 온 방식은
여러 가지일 것입니다.
내가 틀릴거 같다는 두려움에 내 의견을 공공연히
펴지는 못한 채 주변 가까운 한둘에게만 얘기한다거나,
내 치부가 들킬까 두려워 나의 사적인 영역(가령 난장판
인 집이나 자동차)에 다가오는 사람들을 거부한다거나,
나에게 좋은 기회가 왔음에도 나의 'ADHD적 특성'에
대한 도움을 요청하는 것이 부담스러워 기회를 거절한다
거나 하는 등으로요.
어쩌면 반대로, ADHD 인들은 자신의 단점이 아닌
장점을 드러내길 꺼릴 수도 있습니다.
왜냐하면, '내가 잘하는 부분을 말하게 되면 사람들은
더 높은 기대를 할 텐데,
그 기대만큼 꾸준히 해낼 자신이 없다.'는 불안이 있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어떤 날은 누구보다 집중하고 몰입해서
괄목상대할만한 성과를 내지만,
또 어떤 날은 기본적인 일상조차 감당하기 어려운
날이 찾아옵니다.
이렇게 들쑥날쑥한 집중력의 진폭 속에서,
우리는 자신의 능력을 드러내는 것조차
조심스러워지게 됩니다.
불안은 실패 때문만 아니라,
성공의 그림자에서도 자라기 때문입니다.
ADHD의 창의성, 몰입력, 통찰력, 열정 같은 강점조차
“과한 사람”, “튀는 사람”, “유난스럽다”라는 말로
쉽게 축소되는 사회 분위기 속에 우리는 자연스럽게
자신을 낮추고 조심하게 됩니다.
그러나 이는 단순한 개인적 불안이 아닙니다.
이 감정은 당신이 약하거나 의지가 부족해서
생긴 것이 아니라, 다름이 쉽게 오해되고,
예측 가능성만이 미덕으로 여겨지는 환경 속에서
오랜 시간 자신을 다듬어가며 버텨온 사람의 마음이
기억해낸 방식입니다.
이는 곧, 스스로를 숨기며 살아야 했던 이들의
몸과 마음에 남은 흔적이며,
‘있는 그대로’ 존재할 자리를 찾지 못한 채
끊임없이 맞추고 조절해 온 삶이 남긴
조용한 피로입니다.
즉, 이것은 결함이 아니라 생존의 흔적입니다.
그리고 그 흔적을 이해하는 순간,
비로소 우리는 자신을 탓하던 자리에서 천천히 걸어나올 수 있습니다.
다시말해,
문제는 ADHD 의 장점이나 강점이 없는 것이 아니라,
튀는 특성조차도 불편하게 여겨지는
사회의 시선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조용하고, 규칙적이고, 계획적이며, 정돈되고,
예측 가능한 태도를 모범으로 삼는 사회구조에서
충동적 아이디어, 대담한 시도,
그리고 감정의 강한 진폭은
종종 '미숙함'이나 '노력부족'으로 여겨집니다.
그래서 많은 ADHD 인들은
자신의 강점과 개성이 분명히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정체성을 숨깁니다.
그저 ADHD 적 특성이 드러나지 않게
옷깃을 여미고 여미는 데 바쁩니다.
회사에서 아무도 내 ADHD를 몰랐으면 좋겠고,
그냥 오늘 하루 상사에게 깨지거나 짤리지만 않고
잘 출근하고 퇴근하기만 하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스스로의 고유한 장점을 보고싶지 않아서가 아니라,
자신의 강점을 인정받고 싶지 않아서가 아니라,
강점을 인정받는 상황조차도 불안을 유발하기 때문에
많은 ADHD인들은 자기 자신을 지키기 위해 자신을
숨깁니다.
하지만 숨는다고 해서 그것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지요.
억지로 감춰진 특성은 반드시
어디선가 삐져나오기 마련입니다.
그럴때마다 ADHD인들은 자신을 더욱 탓합니다.
"아 또." "나 또 실수했네."
"나 왜 이거밖에 못하지?"“ 나 왜 남들 다 하는거 이것 하나 제대로 못해서 전전긍긍하지?"
"그냥 참으면 되는 거 누가 몰라? 근데 아는데 난 왜 못하냐고."
ADHD 여러분,
이런 마음이 들 수 있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러나 기억할 것은,
이것은 우리의 문제만은 아니란 것입니다.
이런 마음이 드는 것은,
소위 '정상적으로' 살아야 한다고 말하는
사회의 메시지 속에서 살아남기 위한
여러분 자신의 발악이자 외침입니다.
여러분은 '다름을 허락하지 않는 구조 안에서
생존하려는 방식을 나름대로 체화해 온' 것입니다.
이 과정에서 여러분이 잃어온 것은
단순한 개인 고유의 행동 몇 가지가 아니라,
여러분 스스로의 가능성과 사회로부터 연결되고픈
연결감, 그리고 스스로에 대한 긍정입니다.
이제 우리는 조금 다른 방식으로
나아갈 필요가 있습니다.
완전히 A부터 Z까지 모든 것을
다 까라는 의미가 아닙니다.
"나는 이해받아야 하는 존재니까
세상아 나를 이해하여라~" 고 외치는 것도 아닙니다.
다만, 내가 안전하다고 느끼는 관계에서부터
조금씩 '온전한 나'로 서는 연습을 하는 것입니다.
이 작은 선택이 '다르게 기능하는 방식도
하나의 삶의 방식으로 존중받을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첫걸음' 이 될 것입니다.
무작정 숨는 것이 아니라,
내가 존재하는 방식 자체로 있는 것.
그리고 살아 내는 것이 아니라,
나 자체로 '살아가는' 방식을 찾는 과정이
여러분에게도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드러낸다는 건 크게 말하고,
증명하고, 모두에게 이해받는다는 뜻이 아닙니다.
그보다 훨씬 더 작고, 부드럽고, 개인적인 과정입니다.
내 방식으로 살아가겠다는 조용한 선택,
그게 바로 드러냄의 시작입니다.
모든 사람 앞에서 용기 낼 필요는 없습니다.
내가 믿을 수 있고, 충분히 따뜻하다고 느끼는 사람
한 명이면 됩니다.
“요즘은 일을 쪼개서 하는 방식을 연습하고 있어.”
이 한 마디면 충분해요.
드러내기란 용기라기보다 대상 선택이니까요.
“나 ADHD라 힘들어…”보다 “나는 정보가 너무 많이 오면 멈추는 경향이 있어”라고 말해보는 것.
이렇게 나의 작동 방식을 이름 붙여 설명하는 연습은
타인의 이해 이전에,
내가 나를 이해하는 힘을 키워줍니다.
드러내기의 가장 중요한 시작점은 타인보다
내 앞에서 숨지 않는 것입니다.
오늘 나에게 필요한 게 휴식이라면,
그 사실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나는 부족한 게 아니라, 다르게 작동할 뿐”
이 문장을 내 안에 심어두는 것.
그 순간 나는 이미 나를 드러내고 있습니다.
드러내려다가 다시 숨고 싶어질 때도 있어요.
그건 실패가 아니라 과정입니다.
“오늘은 한 발 뒤로 갔구나. 괜찮아.”
파도처럼 왔다 가는 마음 속에서,
다시 시도하고 싶은 마음이 있다면
우리는 이미 앞으로 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분명히 이런 경우가 생길 수 있습니다.
100% 이런 상황을 마주했을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그냥 더 노력하면 되지 않나?” “다들 그래.” “그건 네 핑계 아니야?”
이런 말들은 우리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사람들이 아직 우리가 사는 세계를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내 경험은 사실이야. 당신이 아직 이해하지 못할 뿐이야.”
설득과 설명이 반드시 해답일 필요는 없습니다.
때때로 가장 큰 용기는 내 경험을 의심하지 않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배우려 하고, 이해하려 하지만
어떤 사람은 우리의 이야기를
가볍게 다룰 수도 있습니다.
그럴 때 거리를 두는 건 도망이 아니라 자기 보호입니다.
“내가 틀린 게 아니라 여기가
내가 숨 쉴 공간이 아닌 거야.”
경계는 건강한 인간관계의 한 부분입니다.
세상이 항상 이해해줄 순 없어요.
하지만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이해받지 못한다고 해서 내가 덜 중요한 건 아닙니다.
나의 ADHD적 특성을 보이는 것은
누군가에게 인정받기 위한 행동이 아니라
내가 나로 존재하겠다는 선언입니다.
그 선언이 쌓일수록, 세상은 천천히 바뀝니다.
먼저 변하는 건 세상이 아니라, 나 자신과의 관계입니다.
그래서 결국 우리는 숨지 않기 위해 드러나고,
상처받지 않기 위해 경계를 세우고,
그 사이에서 자신을 다시 배우게 됩니다.
우리가 나아가는 길은 숨지 않는 연습이자,
자신을 발견하는 과정입니다.
조금씩 드러나고, 필요할 땐 거리를 두고,
그 사이에서 우리는 자신을 다시 배워갑니다.
이는 생존을 넘어 존재로 살아가는 법을
찾는 여정입니다.
그리고 이것이야말로
ADHD인들이 만들어가는 회복의 역사입니다.
위에서도 말했지만,
생존해 내는 삶이 아니라 나의 존재 자체로서 영위해 가는 삶을 향해 가는 것입니다.
나를 입증하고 설명하기 위한 삶이 아니라,
그저 존재 자체로서 설 나의 자리를 찾아가는 삶이 되는 것입니다.
이 과정은 ADHD인들이 살아남는 방식이 아니라,
다시 살아나는 방식입니다.
그리고 그 첫 걸음은 거창한 용기가 아니라,
나 자신에게 내어주는 아주 작은 허용에서 시작됩니다.
오늘 당신에게 아주 작은 한 걸음의 용기가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