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을 바라보는 자전적 에세이
가끔 어떤 말은, 그 순간에는 제대로 들리지 않다가 나중에서야 마음 깊은 곳으로 내려오는 경우가 있다.
어제 코치님의 말이 그랬다. "지앤님, 이미 하고 있잖아요. 이미 그 길을 걷고 있어요."
처음에는 단순한 격려처럼 들렸다. 그러나 마음속에서 여러 감정이 가라앉고 난 뒤, 그 말의 무게가 전혀 다르게 다가왔다. 마치 오래전부터 내 속에 있었던 진심을 누군가가 대신 꺼내서 보여준 느낌이었다.
나는 늘 내 자신을 '언젠가 ADHD 관련해서 영향력을 미치는 사람이 되고 싶은 사람'으로 정의해 왔다.
아직 준비중이고, 아직 멀었고, 보여줄 만한 결과도 없다고 생각했다.
사실 틀린말은 아니지만, 코치님의 시선은 나보다 한걸음 더 깊이 들어가 계셨다.
"이미 하고 있잖아요." 라는 말은 "미래에 그 일을 꿈꾸는 사람" 이 아니라, "이미 그 삶을 시작한 사람"이란 의미였다. 그 차이가 얼마나 큰지, 나는 지금 이렇게 감정이 다 해갈된 상태에서야 깨닫는다.
나는 내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전부터 이 길 위에 있었다.
브런치에 ADHD 관련된 글을 쓰고, Threads를 발행하고, ADHD라는 경험을 스스로 해석해 언어로 풀어내는 일. 나는 그저 그것을 '미래의 커리어를 위해 준비하는 단계들'로만 여겼다. 나는 그걸 그저 '내 방식대로 정리하는 습관'이라고만 생각했다. 하지만 사실 그 글들은 누군가에게 시선을 건네고, 감정의 이름을 붙여주고, 자기 자신을 이해하는 단서를 이미 제공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걸 통해 협업 제안이 들어온 것만으로도 이미 나는 그 길을 시작한 사람이었던 것이다. 그게 바로 영향력이었다. 나는 내가 무엇인가 되어서, 그 자격으로 당당하게 사람들 앞에 서는것만을 생각했는데, 코치님은 내게 새로운 시선을 주셨다.
거창한 결과가 아닌, 누군가의 생각이나 감정을 조금 움직이게 만드는 힘. 코치님은 내 시선을 그쪽으로 조금이라도 돌릴 수 있게 하셨던 것 같다.
나는 이미 조력전문가의 아주 기초적인 단계를 시작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누군가 패턴을 말하면 그 마음의 구조를 함께 들여다보고, 감정의 요동을 말하면 실행기능과 리듬의 관점으로 설명하고, 혼란을 나누면 그 속에 있는 의미를 함께 찾으려 했다. 그건 단순한 친절이나 조언이 아니었다. 사람들의 마음을 듣고 정리하고 방향을 함께 찾는 조력자의 방식이었다. 나는 아직 멀었다고 생각했지만, 코치님의 눈에는 이미 내가 그 역할을 시작하고 있는 것이 보이셨던 것 같다.
하지만 나는 그걸 스스로 바라보거나 인정하지 못하고, 스스로 더 더 더 하면서 몰아붙이고 있었나보다.
어제, 실로 오랜만에 아주 깊은 울음을 쏟아냈다.
서울에서 코치님과의 만남을 마치고 인천 병원에 서류떼러 갈 일이 있어서 주차하고 올라갔다가,
먼저 화장실을 갔는데 변기에 앉자마자 갑자기 1차 눈물이 나왔다.
나중에 정신을 차리고 보니 한시간이 지나 있었다.
이후 병원에서 서류를 떼고 약 30분을 달려 집으로 왔다. 집으로 오는 길에는 괜찮았다. 그러나 주차하고 시동을 끌 무렵, 또다시 눈물이 올라왔다.
그렇게 차에 2시간 동안 있었다. 한시간은 감정을 쏟아내는 데, 나머지 한시간은 해갈한 감정을 가라앉히는 데 필요했다.
나는 왜 이렇게 울었을까. 주체할 수 없었을까.
그 울음은 단순한 슬픔이나 속상함을 넘어, 그동안 마음 깊숙히 눌려있던 감정들이
조용하지만, 한꺼번에 몰려왔기 때문이다.
요즘 나는 머리로 아는 것과 마음이 움직이는 방향이 자꾸만 어긋난다.
마음은 뜨겁고, 하고 싶은 일은 명확한데, 현실의 내가 아직 준비되지 않았다는 것과 그로 인한 확신없음이 뒤에서 허둥거리며 따라오고, 그 이상과 현실의 간격이 계속 부딪히며 나를 흔든다.
나는 그 틈 사이에서 서럽고 무력하고 답답했던 것이었다. 열정은 불타고 하고싶은 일은 많고 되고싶은 나도 명확한데, 그것들을 받쳐줄 기반과 단단함은 아직 내가 느끼기에 한참 뒤에 있던 것 같다.
이 간극이 얼마나 나를 흔드는지, 오늘처럼 크게 느낀 적은 잘 없었다.
나는 늘 '더 잘하고 싶다.'라는 마음으로 살아왔다. 그 마음이 너무나 진심이라, 마음만큼 빨리 도달하지 못하는 지금의 나를 볼 때 나는 자주 아프고, 서러운 것 같다. 그 서러움에는 여러 개의 감정이 겹쳐있다.
내가 얼마나 애써왔는지 나만 알고 있다는 서러움, 내가 걷고 싶은 이 길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그래서 진심으로 준비되고 싶은데 마음의 속도가 내 맘 같지 않은 것에 대한 서러움, 열정은 앞서가는데 단단함이 따라오지 않아서 느끼는 답답함, 내가 세운 기준에 닿지 못하는 지금의 나에 대한 아쉬움, 조금 흔들렸을 뿐인데 그게 너무 크게 느껴져 버리는 불안, 누군가에게 알아주었으면 하는 마음을 오래 숨기고 버틴 외로움까지.
오늘 나는 그러한 감정들과 마주했다. 그 중심에는 이런 깨달음이 있었다.
"나는 사실 무서웠다. 그래서 계속 쎈척, 당당한 척 하며 달려왔던 것 같다."
나는 강하고 당당한 사람이 되고 싶었다. 준비된 사람, 능력있는 사람,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단단한 사람.
그렇게 되면 내 안의 불안을 감출 수 있을 것 같았고, 누가 나를 의심하거나 놓고 갈까봐 무서워서 나는 더 빨리, 더 많이, 더 세게 나를 밀어붙였다. 이는 최근에 어떤 에피소드가 있었다기 보단, 어려서부터 살아온 생존 방식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제야 조금 깨닫는다. 이런 방식은 단순히 성향이나 욕심 뿐만 아니라, ADHD라는 특성이 가진 정서적 민감성과 거절 민감성이 만들어낸, 내 26년의 삶을 지탱해 왔던 방식이기도 하다는 것을 말이다. 나는 늘 타인의 반응에 민감했다. 표정 하나, 말투의 작은 떨림, 답장의 템포 같은 사소한 0.1초 동안의 신호도 놓치지 못하고 캐치할 때가 많았다. 그리고 그런 경우 이런 생각으로 대개 이어졌다. "혹시 내가 잘못됬나?" 하는 불안이 즉각 올라왔다. 왜냐하면 어려서부터, 나의 행동 생각 말 등은 내 의도와는 관계없이 '상황에 맞지않고 틀린' 것으로 지적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내 의도를 누가 알아주면 좋겠다는 욕구' 와 '내 모습이 나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남들이 봤을때 잘못된 모습으로 비춰질 것에 대한 불안' 사이에서 늘 저울질해야 했다. 나의 욕구나 불안 둘 중 어느 것이라도 통제가 안되면 안되기 때문이었다.
그 불안을 덮으려고 나는 더 잘해야 했고, 흔들려 보이면 안됬고, 늘 '준비된 나''설명될 수 있는 나'를 유지해야 했다. 그 감각은 타인에게만 향한 것은 아니었다. 내 스스로도 나를 통제해야 한다는 강한 압박을 느꼈다. 감정이 흔들리면 안 되고, 속도가 늦춰지면 안 되고, 불안이 드러나면 안되는 것처럼 느껴졌다.
내 마음이 갑자기 솟구치거나 급발진 할때마다, "이걸 빨리 잡아야 한다.""내가 나를 통제하지 못하면 큰일난다."는 깊은 불안이 몰려왔고, 그 불안이 나를 더 강하게, 더 빠르게, 더 세게 움직이게 했다.
그래서 나는 더 단단해 보이려 했고, 더 흔들림 없는, 최대한 준비된 존재로 서고 싶었던 것이다.
결국 강한 모습과 당당한 모습이라는
껍데기를 방패처럼 들고 살아왔다.
스스로를 방어할 수 없던 어린 지앤에게
그것은 분명 필요한 생존 전략이었다.
하지만 지금 돌아보면
그 방패가 나를 지켜주기도 하지만,
동시에 나를 더 몰아붙이고 더 지치게 만들기도 했다. 이제야 그 사실을 천천히, 그러나 분명하게 깨닫는다. 그걸 인정하는 순간, 나는 참 작고 어린 마음처럼 느껴졌다.
나는 왜 이 길을 걷고 싶은가?
나는 왜 이 길을 걷고 있을까. 여기서 말하는 이 길은, 단순히 상담이나 코칭 같은 직업을 의미하지 않는다.
나는 사람의 마음을 깊이 만나고, 흩어진 감정의 매듭을 함께 풀어주고, 그 사람의 속도에 맞춰 오래 걸어주는 조력자의 길을 말하고 있다. 누군가가 흔들릴 때 그 흔들림 자체를 판단하거나 고치려 하지 않고, 그 마음이 왜 그런 모양으로 찾아왔는지 함께 바라봐 주는 사람, 말보다 태도로 그 안전함을 느끼게 해주고, 빠른 해결보다 함께 머무는 시간을 더 소중히 여기는 사람, 감정을 있는 그대로 만나주는 것에서부터 그 사람의 삶이 이어질 수 있도록 작은 불을 켜 주는 사람. 나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어서 이 길을 걷고 있다. 사실 어제까지만 해도, 나는 내가 이 길을 걷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나는 아직 자격을 갖추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는 코치님을 보며 '미래의 나'를 보았다.
"코치님 제 멘토해주세요.""코치님처럼 살고싶어요."라는 말은 단순한 의존이나 동경의 마음이 아니었다.
그런 마음이 없었다고 하면 거짓말이긴 하지만, 그것보다 더 큰것은 '나도 저 삶의 길을 걷고 싶다, 나도 코치님의 저런 마음과 태도와 자세를 배우고 싶다, 나도 누군가에게 코치님같은 사람이 되고싶다.' 에 가까웠다.
코치님이 그동안 자신의 삶을 조율하시면서 얻어오신 단단함, 그러면서도 따뜻하고 단호하면서도 부드럽고, 나의 흐름을 존중하면서도 마음의 결을 좇아 주시는 분이었기에.. 이상하게 코치님 앞에만 서면 오랫동안 숨어왔던 마음들이 조심스럽게 흘러나오는 것 같다는 생각도 했다. "아 이분 앞에서는 나를 방어하지 않아도 되겠구나." 하는 스스로의 허락이 고요히 떨어진다.
또한 나는 코치님을 보며, 내가 되고싶은 미래의 나를 보았다. 사람의 마음을 깊이 만나고, 그 마음이 숨을 고를 수 있는 공간이 되어주고, 삶의 흐름이 다시 이어지도록 작은 불을 켜주는 사람. 그리고 나의 다양한 특징과 개성을 있는 그대로 보여드려도 된다는 안정적인 허가를 내어줄 수 있는 사람.
이것은 내가 그동안 되고 싶다고 생각했던 나의 모습이기도 했다.
그리고 이제는 생각이 조금 바꼈다. 나는 이미 이 길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영향력은 미래의 결과가 아니라, 지금 여기에서 시작되는 것이다.
나는 ADHD 커뮤니티를 운영해야, 프로그램을 만들어야, 사람들이 찾아와야, 그제서야 영향력이 생긴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끊임없이 나를 PR하려고'만' 했던 것 같다.
하지만 이제 좀 정리가 되었다. 영향력은 이름이 붙는 그 순간에 생기는 것이 아니라, 작은 말, 작은 글, 나의 작은 움직임 속에서 이미 조용히 시작되고 있다는 것을.
내가 지금 하고 있는 모든 작은 움직임들이, 바로 내가 되고 싶은 사람으로 향해 가는 삶의 일부라는 것을
이제 좀 마음속에서 정리할 수 있게 되었다.
나는 '내가 바라는 목표에 미치지 못해 부족해서 서럽고 불안한 사람'이 아니라 '이미 그 길로 진입했고 진심이기 때문에 나를 갖추어 가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사람'이다. 그걸 깨닫는 순간, 내 서러움의 결이 조금 바뀌었다. 나는 단순히 아프고 속상해서 울었던 것이 아니라, 간절했던 것이다. 아직 닿지 못해서 아픈게 아니라, 이미 그 길에 발걸음을 들였기에 더 깊이 흔들린 것이다.
나는 준비생이 아니었다. 단순히 '예비자'라는 말로만 설명될 수 있는 상태도 아니었다.
물론 현실적으로는 맞는 말이다. 전문상담사 2급을 따기 위한 수련 준비생, ADHD 코치가 되기 위한 수련생, ADHD 전문가가 되기 위한 공부를 하고 있는 사람이지 아직 이들 중 무엇 하나 이룬 것은 없다.
그러나 나는 단순히 예비자, 준비생의 단계에만 그치고 있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어제를 계기로 생각하게 되었다.
이미 나는 한걸음을 시작했고, 나의 방향성과 가치는 명확하며,
나는 이미 길 위에 있다.
<내가 내 생각을 정리하기 위해서 적어보는 요약본>
1. 내 기준을 다시 적어보기
-나는 결과로 나를 증명하려 했지만 나는 이미 그 삶을 살고있는 사람이었다
나는 이미 조력자의 길에 들어섰고, 나는 나의 속도로 단단해지고 있으며,
영향력은 미래가 아니라 지금 여기에서 만들어진다.
2. 방패를 내려놓는 연습
- 나는 늘 방패를 들고 살았다. 그러나 이제는 방패를 내려놓는 한 걸음을 해야 한다.
모르는 건 모른다고 말하기, 속도가 느리면 느리다고 말하기,
'준비된 나'가 아니라 지금 그대로의 나와 관계 맺기
3. 작은 단단함을 하나씩 쌓기
- 단단함은 한 번에 완성되는 수준이 아니라, 작은 결정이 매일 조금씩 쌓여 만들어지는 것
나에게 오늘 필요한 단단함은
- 오늘의 있는 그대로의 나를 인정하기
- 마음의 속도를 무작정 억누르지 말기
- 그 속도에 따라오는 현실을 기다리는 연습 하기
4. 이미 하고 있는 일들을 의미화하기
나는 이미 글을 쓰고, 조언을 하고, ADHD 개념을 전달하고, 감정을 언어화하고,
누군가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건 "준비가 아니라 현실을 살아가는 수행" 이다.
그리고 "이 자체가 조력자의 일" 이다.
5. 나는 지금 기준을 다시 쓰고 있는 사람이다.
어제 울었던 2시간은 마음이 무너진 시간이 아니라 기준이 새로이 자리잡는 시간이었다.
이제 내가 해야할 건 이것, '나는 이미 이 길을 걷고 있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잊지 않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