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렸을 때부터 달리기를 좋아했다.
더 정확히 표현하자면 남들보다 달리기를 잘했다.
다른 친구들에 비해
압도적인 실력을 가지고 있었기에
늘 초등학교 운동회 때마다
반 대표 계주 선수로 뽑혔었다.
하지만 그런 나에게도
지우고 싶은 기억이 있다.
초등학교 3학년
운동회.
이전 주자에게 바통을 넘겨받던 중
손에서 놓쳐 버린 것이다.
급한 나머지 바통을 주어 달리려고 했지만
발이 꼬여 넘어지게 되면서
나 때문에 늘 2등만 하던 친구가
나를 이기고 결승선을 통과하는 일이 발생하게 됐다.
우리 팀은 결국 나 때문에 지게 됐고
패배를 한 나는 엄마품에 안겨 엉엉 울었던 걸로 기억을 한다.
물론 그렇다고 달리기는 것을 포기하지 않았다.
그 뒤로도 나는 달리기가 좋았고 달리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그런데 성인이 된 후 내가 좋아하는 달리기를
멈추게 된 사건이 있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교를 졸업하고
사회에 들어서려고 준비를 하고 있던 나에게
또 한 번의 달리기 경주가 찾아왔다.
그런데 내가 지금까지 알고 있던 달리기 경주와는 달랐다.
출발선에 서서 몸을 풀며 옆 레인에 서 있는 친구를 보니
나보다 더 좋은 운동복을 입고 더 좋은 운동화를 신고 있었고
심지어 또 다른 친구는 이미 50m 앞에 서서 출발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만 그렇게 느꼈을 뿐 다른 사람들은 평온했다.
그러던 중 심판으로부터
출발 사인이 떨어졌다.
나는 온 힘을 다해 달렸다.
결과는 처참했다.
솔직히 억울했다.
그래서 경기가 끝난 후 심판에게 가서 따졌다.
심판은 나에게
너보다 좋은 운동복을 입었건, 좋은 운동화를 신었건
50m 앞에서 출발했건 그건 중요한 게 아니야.
가장 먼저 들어온 사람이 이길 뿐이야.
라는 말을 하며 돌아섰다.
나는 돌아서는 심판을 잡아
다시 한번 하소연했다.
"이건 공정하지 않습니다."
그러자 심판은 내게
"원래 세상은 공정하지 않아."라는 대답을
남기고 다시 돌아섰다.
처음으로 달리기가 싫어졌다.
하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2년 넘는 시간 동안 달리는 것을
포기하고 지냈다.
그러던 중 갑작스럽게
초등학교 3학년 운동회 기억이 떠올랐다.
나한테 늘 지던 친구는 어차피 나에게 질 텐데
왜 최선을 다해 달렸을까 궁금했다.
솔직히 이유를 찾진 못했다.
그런데 돌아 돌아 생각한 결과
최선을 다했기에 그 친구가 나를
이길 수 있었다는 결론은 내리게 됐다.
번뜩였다.
결국 나는 최선을 다하지도 않은 채
겁먹고 도망간 게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다시 열심히 뛰기로 마음먹었다.
열심히 뛰다 보면
나보다 더 좋은 운동복, 운동화를 신은
경쟁자가 바통을 놓칠 수도 있는 것이고
50m 앞에서 뛰던 사람이
넘어질 수 도 있다고 생각했다.
난 그저 최선을 다해 열심히
달리기만 하면 되는 것이었다.
그래서 결과는 어떻게 됐냐고?
솔직히 이기진 못했다.
그래도 첫 번째 달렸을 때보다
더 큰 가능성을 보게 됐고
다음 경기를 위한
추진력을 얻을 수 있었다.
그렇게 나는 30년이 넘는 세월을 달리게 됐고
여전히 지금도 열심히 달리고 있는 중이다.
그리고 계속 달리면서
한 가지 깨달은 게 있다면
인생에서의 달리기는 단거리 경주가 아닌
장거리 경주라는 것이다.
눈앞에 있는 결승선만 지나면 끝나는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그게 시작인 경우가 더 많았다.
그런 매력 덕분에 내가 달리기를
좋아한 것 같기도 하다.
나는 여전히 달리기가 좋다.
그리고 여전히 달리는 것을 잘한다.
그 끝이 어딜지는 모르겠지만
앞으로도 계속해서 열심히 달려볼 예정이다.
그리고 이번엔 반드시
바통을 놓치지도 않을 거고
넘어지지도 않을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