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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들국화 Oct 20. 2024

하루 아침에

 도서관에서 공부를 끝내면 식당에서 식사를 한다. 그리고 카페에 출근을 했다. 오래된 습관처럼 이 일상의 패턴은 지속되었다. 식당 직원분과 사장님과는 가벼운 안부도 물을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식당과 카페에서 마주쳤던 여성 손님은 특히 카페에서 자주 마주친다. 서로의 존재를 인지하고 있지만 딱히 반가운 인사는 하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그녀는 하우스 와인을 주문했다.  


“안녕하세요. 주류 메뉴 주문 되는 거 맞죠?”

“아, 네. 안녕하세요. 주문 가능합니다.”

“다행이다. 그러면 화이트 와인 한 잔 주시겠어요?”

“네. 결제 도와드리겠습니다. 준비되면 자리로 가져다 드릴 게요.” 


 그런 날이 있지 않은가? 별 거 아닌 것 같은 미세한 변화가 주는 큰 새로움. 적어도 나는 그녀가 다른 메뉴를 주문한 것에 대해 그런 이상함을 감지했다. 그러고서 그녀를 제외한 손님은 자리를 비켜 주듯이 사라졌다. 나는 그녀에게 더 신경이 쓰이기 시작했고 한마디라도 건네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사장님께 내가 결제할 테니 서비스 안주를 조금 나가도 되겠냐고 여쭈어 보았고 사장님은 그냥 드리라는 답을 주셨다. 나는 감사하다고 전한 뒤 매장에 있는 감 말랭이에 크림치즈와 호두를 올린 간단한 스낵을 준비해서 그녀에게 전달했다. 처음 보는 그녀의 옅은 미소. 그 미소에는 설렘 같은 것을 묻힌 화살촉이 있었는지 활시위에 올려놓고 당긴 뒤 쏘아 내 마음에 꽂아 버렸다. 책과 공부는 머릿속을 떠 난지 오래. 무언가에 홀린 것 같이, 혹은 이상한 변태처럼 그녀를 흘깃 쳐다보게 되었다. 혹시나 그녀가 금방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을까 하는 불안감도 느낀다. 자연스럽게 손톱을 물어 뜯기도 한다. 오늘을 여느 날과 다를 것 없이 지나 보낸다면 후회할 것이라는 확신마저 든다. 말을 건넬 궁리를 멈추지 않고 용기를 끌어낸다. 그 순간 그녀가 자리를 정리 후 화장실로 향한다. 나는 화장실에서 나오는 그 짧은 순간을 어렵게 기다리던 중 그녀가 나온다. 


“아, 제가 드린 감 말랭이는 맛있게 드셨나요?”

“너무 잘 먹었어요. 저 원래 곶감을 엄청 좋아해서요.”

“다행이네요. 저기, 혹시 오늘 뒤에 일정이 더 있으세요?”

“아? 아니요. 다른 일정은 없어요.”

“괜찮으시면 카페 근처에 가 보고 싶었던 가게에서 이벤트 메뉴를 진행한다고 하는데요 제가 그… 뭐냐, 원래 혼자 가 볼까 했거든요? 근데 일정이 없으시고 괜찮으시다면 같이 가실래요?”

“좋아요.”

“아? 정말요? 그러면 그, 그 제가 퇴근이 한 시간 남았는데요. 혹시 기다려 주실 수 있으세요?”

“네. 그러면 책 읽고 있을게요.”

“네, 네. 뭐 좀 더 드릴까요?”

“아니요. 괜찮아요. 감사합니다.”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난 것 인가 싶다. 너무 순식간에 벌어졌다. 내가 말을 제대로 건넸는지도 기억이 안 난다. 멍청하게 한 시간이나 기다리게 했다는 것만큼은 확실하다. 그녀가 기다리는 한 시간 동안 지루해하거나 불편해하면 어떡하지? 아니면 피곤해질 수도 있지 않을까? 나는 십 여분을 고민하다 그녀에게 다시 진격했다.  

우리는 서로에게 작은 질문들을 던지고 받으며 아주 조금 알아가는 시간을 가졌다. 마치 하늘에서 점을 쳐 준 듯이 자연스럽고 당연한 것처럼 느껴졌다. 서로를 바라보는 게 부끄럽지만 시선을 떼어내는 것이 어렵고 목소리와 몸이 미세하게 떨리지만 태연한 척 한 마디라도 더 건넨다. 어느덧 시간은 삭제된 것처럼 흘러 있었고 가게의 마감 정리를 해야 할 시간이 다가왔다. 금방 돌아오겠다는 한 마디를 전하고는 열심히 마감 정리를 했다. 그녀가 지켜볼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에 평소 보다 더 열심히 행동했다. 모든 정리를 마친 뒤 다시 처음처럼 수줍게 동행을 제안했다. 그곳에 가는 길은 짧았지만 서로 보폭을 맞추는 것 혹은 내가 그녀의 보폭을 맞춘 것 때문인지 평소의 걸음걸이 와는 다르게 속도가 매우 느리다. 걸음은 느리며 가는 길은 짧다. 그리고 시간은 사라진다. 우리는 가는 길을 시작으로 첫 번째, 두 번째, 세 번째 가게까지 들러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술에 취한 것은 부정할 수 없다. 모든 기억이 정확한 것은 아니기에. 하지만 우리는 정말 정말 이상하게도 첫 만남에 서로의 깊은 내면에 대해 나누었다. 누군가는 오해할 수도 있는 개인적인 이야기들을 말이다. 그리고 중간에 이마 때리기 내기에 대한 그녀의 도발과 마지막 자리에서 마주 앉은 상태로 서로의 양손을 깍지 낀 상태로 연인이 된 것에 대한 약속, 그녀를 데려다주는 택시 안, 그녀를 내려 준 뒤 방향이 잘못된 것 같아서 건 전화, 이사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방향을 잃은 그녀, 집에 도착해서도 이어진 통화의 끝. 그 후로도 나는 어안이 벙벙한 체로 쉽사리 눈을 감지 못 했다. 이 현실이 눈을 감고 다시 떴을 때 휘발되진 않을까 하는 조바심에.  


 나의 걱정은 말 그대로 괜한 걱정이었다. 알 수 없는 불안감을 미리 구입해서 가지고 있는 것에 대해서는 경계하기로 마음먹었다. 내가 느꼈던 그녀에 대한 특별한 감정들은 현재와 미래가 되어 안정되어갔다. 서로의 마음의 속도가 맞춰지기까지는 어떠한 물리적인 시간이 필요했다. 나는 주체할 수 없는 감정을 그녀의 심장에 밀어 넣기 바빴고, 그녀는 그런 나의 마음을 그녀는 자신의 속도로 차곡차곡 정리해 두기 바빴다. 늘 좋을 수만은 없었다. 나조차도 버거운 나의 마음은 때때로 그녀에게 부담으로 다가갔다. 그녀는 날 배려해 인내하다가 솔직하게 토로하는 날 도 있었다. 그러면 나는 서운함을 감추며 지내다가 부적절 한 순간에 표출하기도 했다. 그렇게 나는 그녀, 그리고 나라는 두 인생에 아주 큰. 어쩌면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의 넓은 퍼즐의 바탕을 생각하게 되었다. 그 까마득한 텅 비어 있는 그곳에 우리의 크고 작은 퍼즐들이 붙어가고 있구나 하고 말이다. 지진에 의해 흔들리는 날 에는 힘겹게 맞추었던 퍼즐들의 거리가 벌어진다. 그러면 다시 돌아가서 조심스럽게 붙여 놓는다. 그녀는 근래에 하루에 오분 씩 잔소리를 할 것이라고 선전포고를 한 뒤 정말 하루 한 번씩 잔소리를 해준다. “하고 싶은 것을 해.”,“가만히 있지 말고 움직여.”자연스레 나는 하고 싶은 것에 대해서 더 집중하고 고민하게 되었다. 나는 “음식을 만드는 게 재미있던데?”라고 답을 한다. 우리는 정말 잘 지내고 있으며 논쟁이 생길 땐 화끈하게 붙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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