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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들국화 Oct 23. 2024

끝과 시작

우리는 오랜만에 식당에 방문하였다. 하지만 문 앞에는 손 글씨로 적힌 안내문이 있었다. 


‘안녕하세요. 우선 귀한 발걸음을 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하지만 공교롭게도 저희 식당은  당분간 휴가를 다녀와야 할 것 같습니다. 이유에 대해서 설명드리는 것이 쉽지가 않네요. 오랜 시간 동안 이곳을 지켜 온 어르신께서 아름다운 추억들을 잘 챙긴 뒤 생을 마감하셨습니다. 자신을 꼭 소나무 아래, 아주 건강한 흙에 묻어 달라고 하셨고 저는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해 다녀오겠습니다. 그리고 가게에 관한 여러 일 들이 해결 되면 다시 돌아오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꽤 한참을 문 앞에 서 있었다. 그녀는 나를 헤아리는 것인지 깍지 낀 손에 힘을 더 불어넣었다. 그날따라 그녀와 잡은 손이. 그 손가락 마디의 닿음은 유난히 기억될 것 같다. 나는 그녀의 눈을 바라보고 말했다. 


“나 있잖아. 주인 어르신 문상에 좀 다녀와도 될까?”

“응. 인사 잘 드리고 와.”

“고마워. 다녀올게.” 


무작정 수소문하였고, 장례식장 위치를 찾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상주로는 젊은 직원 분이 계셨고 조금은 놀란 표정으로 날 맞이했다. 나는 조문을 마치고 식사를 하기 위해 가장 한산해 보이는 곳에 착석했다. 이내 젊은 직원분이 다가온다. 


“와 주셔서 감사해요. 조금 놀리긴 했지만요.”

“아. 오늘 식당에 다녀왔습니다.”

“그러셨군요. 어르신께서 좋아하실 거예요.”

“그랬으면 좋겠네요.”

“그렇고 말고요. 식사 좀 가져다 드릴까요?”

“아, 네. 부탁드리겠습니다.” 


 나는 조용히 식사를 마치고 나왔다. 그리고 곧장 확신에 찬 걸음과 미세하게 느껴지는 가을의 바람과 함께 집에 도착했다. 도착하자마자 일말의 망설임 없이 노트를 펼쳤고 연필을 잡았다. 식당에서 일을 하고 싶다는 내용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처음으로 식당에 방문하여 두 번의 끼니를 해결한 것에 대하여 그 전날에 먹은 배달음식에 대하여 처음으로 음식을 만들어 본 것에 대하여 나의 고민에 대하여. 한참을 써내려 갔다. 이 연애편지 같기도 한 고백이 담긴 종이 한 장을 반듯하게 접은 뒤 그녀에게 향하였고 식당에서 일을 배워 보고 싶다는 이야기를 꺼냈다. 그녀는 기다렸다는 듯이 귀여운 미소로 화답해 주었다.  


 인생을 전반적으로 바라보았을 때 나는 아직 출발 선상에 놓여있다. 하지만 모종의 사건과 사고와 그리고 상황들로 인해 ‘나’를 스스로 작은 방안에 가두어 놓았다. 어둠은 나를 숨기는 것에 탁월한 능력이 있기에 자꾸만 저 구석으로 나를 몰았던 것이다. 빛은 스스로 돌아볼 수 있는 기회를 끊임없이 제공하지만 용기는 스스로 내라고 한 것이다. 나는 마침내 용기의 문을 열고 나왔고 눈물을 강요하는 것 같은 빛이 나를 환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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