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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들국화 Oct 26. 2024

둘이 함께

3. 우리

“마감할까?”

“그러죠, 형님.”

“한 잔 할래?”

“여자친구 허락 좀 맡고 올게요.”

“아니다. 그냥 다음에 마시자.”

“갑시다.” 


 시간의 무한함과 유한함. 이 모순적인 시간 속 우리는 함께 네 번의 계절을 두 번 지나 보낸 뒤 이어 세 번째 계절을 다시 맞이했다. 어르신의 기일이 지나고 나면 형님은 술을 자주 찾는다. 지겹지도 않은 지 매번 ‘스페셜 양지수육’만 고집한다. 나는 얼큰한 국물이 먹고 싶을 때도 있고 불 판에 구운 강력한 고기도 먹고 싶은데 말이다. 하지만 형님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기에 얌전히 함께 시간을 보낸다. 그리고 작년에 비하면 올 해는 딱 보아도 생기가 더 있어 보여서 조금은 안심이 된다. 자주 방문하는 공간으로 향하는 우리의 모습을 누군가가 지켜봐 왔다면 정말 웃긴 장면으로 보일 것이다. 첫째로는 마감 때 트는 음악은 항상 정해져 있으며 같은 부분에서 온 힘을 다해 함께 부른다.(음 이탈 부분도 항상 비슷하다.) 둘째는 술집으로 향할 때 위치가 똑같다. 너는 왼쪽, 나는 오른쪽. 이렇게 정한 것도 아닌데 말이다. 셋째는 술에 취해 집으로 향할 때이다. 항상 또 같은 위치에서 어깨동무 방향도 같고 좌우로 비틀 거리는 것까지 항상 비슷하다.  


 아침 시장을 다녀와야 하기에 이른 아침에 눈을 뜬다. 우리는 약속한 시간에 시장 입구에서 만난다. 혹여나 늦는 사람이 있다면 늦은 사람이 장바구니를 전담하기로 했다. 나는 단 한 번 지각을 한 적이 있다. 그전 날에 형님은 몸살을 크게 앓았다. 나는 그 사실을 알고도 여자친구와 늦은 밤까지 한 잔 걸치느라 늦었다. 하지만 형님은 약속시간 전에 도착해 있었다. 나는 그 뒤로 한 번도 지각한 적이 없다.  


 형님은 시장 상인 분들과 아주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워낙 예의가 바르고 섬세하며 다정하기 때문 인 것 같다. 나는 그런 점 들을 가장 가까이서 지켜보고 있다.(확실히 닮고 싶은 부분이 많다.) 그런 좋은 관계로 인하여 재료를 선정하는 것에 있어서 큰 걱정이 없다. 우리는 날씨에서 쌀쌀한 가을바람을 느끼고 굴 국을 만들기로 하였다. 얼마 전 멸치와 다시마 각종 채소로 진하게 우린 육수가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싱싱한 굴과 매생이, 배추만 구입을 했다. 점심에는 굴 국밥, 저녁엔 전골이다.(양도 양이지만 맛에 변주를 조금 준다.)  

가게에 도착한 뒤 함께 청소 먼저 신속하고 깔끔하게 마친다. 그리고 커피 내기를 하고 진 사람이 사는 것과 사 오는 것을 다 해야 한다. 오늘은 사다리 타기 그 50:50 확률에 내가 패배했다. 그동안 형님은 재료를 준비한다. 굴을 씻어내고 물기를 빼고 무와 배추, 마늘, 홍고추를 알맞게 썰어낸다. 커피를 사 온 사이에 이미 많은 재료들이 준비되어 있다. 나는 조금 늦게 합류하여 재료 준비를 시작했다. 칼질 연습을 열심히 하지만 적응하는 게 생각만큼 쉽지 않다.  


 이 계절, 이 시기엔 단골손님들이 평소보다 자주 방문한다. 이것 또한 어르신의 영향일 것임은 분명하다. 다들 각자의 방식으로 추모하는 것이다. 따뜻한 음식과 따스한 실내의 온기 같은 무언가는 그들의 마음으로부터 새어 나온다. 우리는 굳이 말하지 않아도 느낄 수 있다. 다들 자연스럽게 서로를 마주하고 웃고 소통하며 취기도 올린다. 어느 일순간에는 침묵과 동시에 감정을 공유하기도 한다. 나도 어느새 동화되어 그것들을 느낄 수 있게 되었다. 나는 문득 이 가게를 처음 방문 한 날이 떠오른다. 축 처진 어깨와 당당하지 못 한 발걸음, 외로움이 빚은 혼잣말. 마치 이 큰 땅에 혼자인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더 이상 나는 혼자가 아니다. 


“마감할까?”

“그러죠, 형님.”

“한 잔 할래?”

“여자친구 허락 좀 맡고 올게요.”

“아니다. 그냥 다음에 마시자.”

“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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