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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들국화 Oct 27. 2024

이별의 마지막은 새로운 막이길

 이별의 마지막은 새로운 막의 시작이길 바란다. 왕성한 생명의 무한함을 지나 떨어지는 잎은 땅으로 돌아가고 순환되는 것처럼. 하지만 어딘가 고장 난 것 같은 이 기분은 쉽게 떨쳐버릴 수 없다. 마치 자명종. 열두 개의 시간은 열두 개의 달로 바뀌어 그 시간이 다가오면 소스라치게 놀라기도 한다. 그다음은 일어나 몸을 씻어내는 것과 같이 술로 목을 씻어낸다. 몸은 피로하고 정신은 몽롱하지만 몸은 기어이 움직인다. 그의 불이 꺼지게 둘 수는 없기 때문이다. 여전히 빳빳한 솔로 바닥을 박박- 밀어내고 구석구석 깨끗하게 닦아낸다. 재료 손질 할 때는 일정한 간격을 잘 유지하며 계량을 철저하게 한다. 불 위에 재료들에게 눈은 절대 떼어내지 않는다.  가을이라 그런지 쌀쌀함이 느껴지기 시작한다. 어르신은 추위를 곧잘 느꼈기에 따뜻한 국 하나 끓이기로 마음을 먹고 시장으로 향했다. 여러 해산물과 생선들이 가장 눈에 들어온다. 그중 가장 통통해 보이고 까만 테 가 선명한 우유 빛의 굴을 선택했다. 무와 매생이 그리고 배추를 넣고 담백하게 끓여 낼 생각이다. 오늘은 단골손님들의 예약석이 많다. 목소리만 들어도 알 수 있는 감사한 손님들이다. 누구 하나 늦는 법이 없다. 좌석은 가득 메워지고 실내는 북적거린다. 그러면 나는 또 과거를 회상한다. 그 속에서 바라보았던 어르신의 눈을. 그러면 또 나도 모르게 눈시울이 붉어지기도 한다. 멍하니 서 있다 보면 직원 동생은 한걸음에 달려와 휴지로 대충 내 얼굴을 문대고 밝게 웃고 간다. 무언가를 얻고, 무언가는 잃는다. 이것들은 떼어낼 수 없나 보다. 나는 언제나 그렇듯이, 그래왔듯이 또 무뎌지고 새로운 것들을 사랑해야 한다. 쓸쓸한 가을을 지나 겨울이 세상을 얼리고 봄의 기다림이 탄생을 알리듯. 그 모든 것들을 사랑할 수 있도록 두터운 옷을 꺼내야 한다. 


“형님.”

“왜.”

“얼마 전에 문득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뭐.”

“이별이란 것이 정말 마지막 인가에 대해서요.”

“….”

“만약에 있잖아요. 연극에 마지막이 있다면, 그것은 또 다음에 있을 새로운 ‘막’의 시작을 알리는 것은 아닐까요?”

“아주 틀린 말은 아닌 것 같네. 일리가 있는 말 같긴 해.”

“그렇지 않아요? 생각이란 것은 하기 나름인 것 같아요. 내가 마지막이라고 결정해 버린다면 그것은 정말 죽은 마지막일 것이고 마지막을 새로운 ‘막’의 시작을 알리는 것이라고 믿는다면 새로운 희망을 가질 수 있잖아요.”

“나를 위로하는 거야?”

“형님을 위로하는 것일 수도 있죠. 혹은 저를 위로하는 것일 수도 있고요.”

“고맙다.”

“저도 고마워요 형. ‘우리’함께 새로운 시작을 위해 준비합시다.”

“그래. 오늘 끝나고 수육이나 먹으러 가자. 내가 살게.”

“…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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