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가게 주인
칼날 같은 찬바람, 생기를 찾아볼 수 없는 나무들, 꽁꽁 얼어붙은 흙 땅. 나의 먼 기억 속 첫 장면이다. 나는 부모의 그 어떠한 기억도 없다. 이 넓은 세상에 혼자라는 생각을 가진 나는 고작 일곱 살이었다. 물론 나를 보살펴 주는 고아원 선생님들이 있었지만, 나는 혼자였다. 그즈음에 나의 일곱 번째 생일이 있었다. 작은 초코파이 과자에 초를 하나 꽂고서 선생님들과 형, 누나, 동생들이 각자의 입김과 함께 조금은 우울하기도, 힘이 빠져 보이는 생일 축하 노래를 내게 불러주었다. 나의 눈물은 이미 얼음이 되어있었다. 내 감정은 무채색이며, 나의 얼굴은 굳어 있었다. 나는 겨울에 태어났다.
과거의 기억 중 어떤 부분은 선명하게 기억이 나지만 몇몇 기억들은 해져 잃어버리거나 가까스로 남겨두고 있다. 나의 유년시절 첫 기억과 몇 가지 큰 사건들은 아주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다. 춥고 외로웠으며, 굶어서 배가 많이 고프기도 했다. 그래서 나는 춥지 않고 외롭지 않으며 굶지 않아서 배가 고프지 않은 삶이 나의 ‘꿈’이라고 말했던 기억이 남아있다. 나는 학창 시절에 대한 추억이 없다. 학교를 다닐 형편이 되지 못하였기에 고아원 선생님들의 가르침을 받았다. 나에게 관심을 주는 유일한 선생님이 계셨다. 그분은 문학과 철학을 좋아했다. 내가 책을 읽을 수 있도록 개인적인 시간을 내서 가르쳐 주셨다. 글을 공부한다는 것이 썩 좋지도 싫지도 않았다. 연필을 잡고 한 글자, 한 글자 적다 보면 어느새 밥 먹을 시간이 다가왔다. 생각보다 시간이 빠르게 흘러가서 좋았다. 특별할 것 없는 비슷한 날 들이 반복되었던 것 같다. 그러던 어느 날 사건이 하나 있었다.
사건의 시작은 잘 기억나질 않는다. 그저 나보다 2살이 많았던 형과의 주먹다짐이 있었다. 나는 그날 분노의 감정을 느꼈던 것은 확실히 기억한다. 나의 온몸은 추위에 떠는 것처럼 떨렸다. 참을 수 없는 분함에 눈물이 나왔다. 이 분노의 열기가 얼었던 나의 눈물을 녹인 것일까? 각설하고 그날 시원하게 얻어터진 기억이 그 사건의 마지막 기억이다. 그 뒤로 한 동안 여기저기서 싸움을 일으켰다. 어떤 날은 항복을 받아 내기도 하였고 어떤 날은 항복하기도 하였다. 그렇게 또 시간이 흘렀다. 나의 육체는 눈에 띄게 성장해 있었다. 그렇게 큰 키는 아니었지만 뼈가 굵은 탓인지 몸이 단단했다. 그래서인지 고아원 아이들은 나에게 더 이상 함부로 대하지 못했다. 나는 고아원 아이들을 데리고 동네를 무리 지어 다니기 시작했다. 그리고 우리는 동네에서 자주 싸움이 일어났는데 특히 학교를 다니는 아이들과 자주 시비가 붙었다. 내 생각에는 비슷한 또래이지만 확연하게 다른 환경은 우리를 서로 적으로 만드는 것 같았다. 의미도 잘 모르는 싸움들은 나의 내면에 분노가 되어 쌓여 갔다. 마치 바다 해저의 쌓이는 온갖 쓰레기와 오물처럼. 걷어내고 싶지만 숨을 참고 그곳에 도달할 용기는 없다. 그저 거친 파도가 되어 부딪히고 깨지는 것을 반복할 뿐이다. 그래서인지 나의 몸은 항상 경직되어 있었다. 누군가와 부딪혀야만 깨지는 나의 몸. 그래야만 살아 있다고 느꼈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그런 마음가짐으로 고아원 무리들과 함께 동네를 어슬렁 배회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동네 구멍가게 하나가 눈에 잘 들어왔다. 가판대에 진열되어 있는 과자 봉지들을 본 순간 훔치겠다고 다짐했다. 그리고 가게 아저씨를 잘 살피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