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들국화 Oct 19. 2024

미루었던 청소와 빨래

 나는 아르바이트를 끝낸 뒤 곧장 집에 도착했다. 집을 둘러보니 한숨이 나왔다. 정리를 오랫동안 안 했구나 싶었다. 수건이 없었던 것이 가장 먼저 떠 올라 수건을 세탁기에 모두 넣고 돌렸다. 수건은 잘 말리고 빨아야 한다고 하지만 내일 당장 또 쓸 수건이 없기에 어쩔 수 없다. 대신 세제를 평소 보다 3배는 더 넣었다. 어질어진 책상도 정리를 한다. 냄새가 많이 나는 것 같아(아마도 생선 비린내와 습기일 것이다.) 환기를 위해 모든 창문을 열었다. 세탁기가 돌아가는 소리가 귀에 잘 박힌다. 창문을 통해 공기가 순환되는 것이 보인다, 혹은 느껴진다. 오랜만에 청소를 시작했으니 두세 시간은 몰두하자고 마음먹었다. 아, 사실 청소를 미룬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지난주 주중 어느 날이었다. 그날은 기대하던 최종 면접의 결과를 기다리고 있었고 어느 정도 확신이 있었다. 기대감이라는 것을 그리 선호하지는 않지만 나는 어쩔 수 없이 기대를 했던 것 같다. 하지만 보기 좋게 떨어졌다. 나는 정말 큰 상실감에 말 그대로 멍- 한 상태로 집으로 향했었다. 그리고 생각했다. “도대체 무엇이 문제였을까?”,”나의 질의응답에 문제가 있었나?”,”자소서를 너무 솔직하게 적어냈나?”,”애초에 나는 다른 사람이 붙기 위한 들러리였나?”등. 정말 끝이 보이지 않는 자책, 그리고 여러 탓과 이유를 찾기 위한 노력을 했다. 나는 어느새 집 앞에 도착을 했고 문 앞에 걸려있는 수도와 전기세에 대한 공과금 지로를 보았다. 당장 찢어버리고 싶은 충동을 참아내고 약간의 구김을 줄 정도로 쥐여냈다. 그리고 문을 거칠게 열고, 신발을 던지듯 벗고 옷가지를 의자에 대충 던져 걸어 놓고 창을 확- 열고 침대에 꽝! 누웠다. 그 순간 바람이 크게 불어옴과 동시에 담배 갑 겉 비닐 같은 것이 집 안으로 날아왔다. 한 숨을 낼 여력도 없이 두 눈을 질끈 감고 잠에 들기를 기도한다. 믿지도 않는 신에게 잠이라도 허락해 달라고. 한 시간쯤 지났을까? 눈앞에 어둠과 머릿속의 어둠에게 일방적으로 폭행을 당했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이 무력감과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무기력함 전혀 앞이 보이지 않는 이 크나 큰 그리고 긴 어둠.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침대 가장자리에 걸 터 앉았다. 허리는 많이 굽었고 머리는 지구 중력 이상의 영향을 받듯이 땅 방향으로 쏠렸다. “눈물이라도 흐르면 나아질까.”라는 한 문장과 함께 태어나 가장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현재는 그 뒤로 대략 일주일이 지난 것이다. 이 기억을 회상하고 나니 오늘 하루가 더 각별하게 느껴진 것 같다는 생각을 해본다. 나는 말 그대로 눈가리개를 씌운(자의가 아닌 타의에 의한.) 경주마 같았다. 주변을 살피는 것이 잘못된 것은 혹은 금기시된 것 같은. 


 나는 정신을 차리고 청소를 시작했다. 화장실의 물 곰팡이들을 세제를 넉넉히 뿌려서 불려 (분다. 그 시간 동안 여기저기 숨바꼭질하듯이 숨어 있는 옷가지들을 모두 한 곳에 모은다. 하나씩 상태를 확인하고서 빨래가 필요해 보이는 옷들은 세탁망에 상태가 좋은 옷들은 탁, 탁- 털어내 개거나 옷걸이에 걸어 둔다. 이불을 털고, 쌓인 먼지들을 털어낸다. 완성된 빨래를 건조대에 널고 구식 제습기의 물을 비어 낸다. 바닥을 쓸고 그리고 닦는다. 마지막으로 화장실을 솔로 빡, 빡- 밀고 찬 물로 마무리한다. 그리고 내 몸의 여러 노폐물과 먼지들을 찬물로 흘려보낸다.  


 바람이 창을 흔들고 빗방울이 창을 두드리는 작은 소음은 나를 깨우기에 충분했다. 어제 청소와 샤워를 마친 뒤 잠에 들기 위한 시도를 하려 누웠고 곧바로 잠에 든 것 같다. 이 것 또한 잠에 깬 이유 중 하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곧장 일어나 제습기 먼저 확인했다. 잘 마른 수건이 너무 절실했기 때문이다. 다행히도 수건은 잘 말라 있었고 제습기의 물은 거의 차 있었기에 다시 비워냈다. 마른 수건을 나름 각을 잡아 개어낸 뒤 나머지 옷 들을 세탁기에 돌렸다. 그리고 오늘 아침은 직접 만들어 먹기로 마음먹었다. 아침에 좋은 메뉴가 무엇이 있을까 생각해 본다. 검색도 해본다. 집 밥 경우에는 몇 첩 반찬도 보이고 국도 보인다. 간단한 메뉴로는 식빵으로 만드는 토스트나 샌드위치가 눈에 잘 띈다. 하지만 어제 한식으로 두 번의 만족스러운 식사를 경험한 나로서는 빵은 허락되지 않는다. 그러던 중 소고기 야채죽이 보인다. 접근성도 쉬워 보이고 만드는 법도 어렵지 않을 것 같기에 필요한 재료들을 적은 뒤 마트로 향한다. 다진 소고기, 다진 마늘, 다시마, 소금, 멸치 액젓, 새송이 버섯, 참기름, 양파, 당근 그리고 밥이 필요하다. 생각보다 구입해야 할 재료들이 많았다. 집에서 음식을 해 먹은 역사가 없기에 소금과 참기름을 제외한 나머지 재료는 다 구입했다. 손에 쥔 재료가 담긴 비닐이 어색하다. 마치 무언가 큰 일을 한 것 같은 느낌도 동반된다. 그리고 묘한 설렘까지. 나는 집에 도착해 우산을 털고 사온 재료들을 하나씩 꺼낸다. 양파와 당근, 마늘을 다져야 한다. 칼은 거의 써본 적이 없어서 무섭다. 그래도 재료를 하나씩 손질을 해본다. 예상한 것보다 더 오랜 시간이 걸린다. 벌써 지치는 것 같기도 하다. 서너 번쯤 손가락을 날릴 뻔했다. 겨우 겨우 재료들 준비를 완성했다. 기름을 두르고 다진 소고기를 볶는다. 소고기가 다 익으면 다진 야채들을 넣어야 하는데 고기가 좀 탄 것 같다. 나는 급하게 불을 줄이고 냄비가 좀 식을 때까지 기다렸다가 다시 불을 약하게 올리고 야채들을 투하한다. 기대했던 요리 과정은 아닌 것 같다.(색도 좀 탁해 보이는 것 같고 기대가 되는 모습은 아니다.) 그렇지만 꿋꿋하게 밥과 물을 넣고 다시마를 넣는다. 약 불에서 저으면서 죽 느낌이 날 때까지 두고 본다. 마지막으로 소금과 멸치액젓으로 간을 맞춘 뒤 참기름을 두르면 완성이다. 내가 참고한 이미지와는 조금 다른 모습이지만 적당량을 공기에 덜어낸다. 한 숟갈을 퍼내어 후후 불어 한 입을 먹는다. 약간의 탄 내 혹은 탄 맛이 느껴진다. 하지만 따뜻하고 부드럽다. 간이 조금 과했는지 짠맛도 느껴진다. 그렇지만 묘한 성취감이 느껴진다. 다음에 다시 죽을 만든다면 불 조절과 간을 좀 덜 하면 어떨지에 대해 생각한다. 나는 식사를 마치고 재료들을 정리했다. 반찬통에 분리해서 넣어 놓고 설거지를 마치고서 보리차를 한 잔 벌컥 마셨다.

이전 09화 한 식당에서 1일 2식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