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례하겠습니다.”
“아, 네.”
“맛있게 드세요. 그리고 뚝배기가 많이 뜨거우니 조심하세요.”
“네. 감사합니다. 잘 먹겠습니다.”
역시나 이번엔 나의 간장불고기가 맞았다. 우선 간장의 향이 정말 좋았다. 다른 음식점의 뚝배기 불고기와는 사뭇 다른 느낌이었다. 무언가 더 풍부한 향이 난다고 해야 할까? 달고 짠 내가 은은하게 풍겼고 잘 모르겠지만 과일 향 같은 것도 느껴졌다. 그리고 야채나 당면은 찾아볼 수 없었다. 무언가 서운하기도 했지만 또 다른 마음으로는 더 기대가 되었다. 어차피 밑반찬으로 빨간 무나물 무침과 김장김치가 나왔기에 균형이 잘 맞아 보였다. 나는 우선 자작한 국물을 먼저 후- 불고 한 김 식혀서 맛을 보았다. 정말 아주 적절한 간이다. 그리고 아까 맡았던 향들이 입안에서 코로 잘 퍼진다. 끝 맛 에는 아주 미미한 신맛도 느껴진다. 나는 참을 수 없이 불고기를 바로 젓가락으로 집고 입 속으로 보냈다. 살코기의 비율이 높고 지방이 조금씩 느껴진다. 아주 얇게 썰어진 고기에 양념은 잘 배어 있다. “아...”하고 탄성을 뱉었다. 매일 바뀌는 메뉴들과 그에 찰떡인 밑반찬들… 식사는 꼭 여기서 해결해야겠다고 다짐했다. 나는 기분 좋게 식사를 마친 뒤 저녁 아르바이트를 하기 위해 부지런히 움직였다. 집 근처 도보 10분 내에 있는 조금은 작은 개인 카페이다. 간단한 주류도 취급하고 있어서 밤 열한 시까지 운영한다. 누군가는 커피나 음료를 마시며 책을 읽거나 공부를 하기도 하고 누군가는 병맥주나 와인 한 잔을 마시면서 수다를 떨기도 하는 그런 카페. 테라스에도 자리가 있어서 지금처럼 선선한 날에는 다들 밖에 앉으려고 눈치 싸움을 벌이기도 한다. 나는 사장님과 교대를 하고 커피 한 잔을 내려서 마신다.(하루에 한 잔씩 무료로 마실 수 있다.) 새벽까지 버텨야 하기도 하고 여기 커피 맛이 입에 잘 맞는다. 한가한 시간에는 책을 읽거나 공부도 시켜주는 아주 좋은 아르바이트 자리이다. 나는 커피 한 잔을 마신 뒤 물기를 빼고 있는 컵과 접시들을 마른 마른 수건으로 닦아서 제자리에 놓음과 동시에 손님이 들어왔다.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혹시 지금 주류 메뉴도 주문이 가능한가요?”
“네, 가능합니다. 메뉴 보시고 말씀해 주세요.”
“아, 음.. 그냥 시원한 시그니쳐 라테 한 잔 주시겠어요?”
“네, 결제 도와드리겠습니다.”
나는 커피를 자리로 가져다 드리고 오는 길에 오늘 낮에 식당에서 보았던 여성분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뒤 쪽으로 땋은 머리를 기억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계산할 때 마주친 눈은 꽤나 강렬하게 다가왔다. 속 쌍꺼풀이 아주 연하게 자리 잡고 있었고 검은 자가 컸고, 앞머리는 삐쭉삐쭉 내려와 있었다. 굉장히 차분한 어투와 목소리도 인상 깊게 남았다. 첫눈에 반한 것은 아니지만, 그녀가 앉아 있는 자리가 자꾸만 신경 쓰였다.
곧 저녁 식사를 마친 손님들이 커피나 간단한 주류를 즐기기 위해 하나 둘 모였다. 동네 카페이다 보니 아무래도 눈에 익은 손님들이 많이 보인다. 따님과 함께 오는 중년의 여성분은 매 번 카페라테에 샷을 추가해 따뜻하기 드신다. 그리고 따님 분은 메뉴를 항상 바꾸어서 주문한다. 또 다른 그룹은 근처 대학교 학생들처럼 보인다.(아닐 수도 있다.) 그들은 매 번 병맥주를 한두 잔씩 마시고 간다. 내가 일 하는 매장은 간단한 음식이나 과자를 포장해 와서 먹어도 되기에 떡볶이나 봉지과자들을 사 와서 먹기도 한다. 나머지 손님들은 낯이 익지 않은 것을 보아 처음 방문했거나 자주 방문하지 않는 분 들인 것 같다. 나는 정리를 대충 마치고서 노트를 펼쳤다. 그리고 다시 덮었다. 오늘 식당에 대한 여운이 자꾸만 남는다. 단순히 맛있는 식당에 다녀온 그런 류의 여운이 아니다. 나는 고등어조림과 간장불고기 조리법에 대해 검색해 보았다. 대표적으로 보이는 조리법들이 가장 먼저 눈에 띄지만 재료들도 미묘하게 차이가 났고 양념의 비율은 천차만별이었다. 누군가 해주는 음식은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어머니가 차려주는 식사, 어떠한 식당에 가서 사 먹는 음식 모두. ‘식(食)’에 대해 깊은 생각을 해본 적이 없던 것이다. 이상하게 미세한 떨림과 흥분이 느껴진다. 맛있는 음식을 먹는 행위가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 내일 점심과 저녁 메뉴는 무엇 일지 그들이 다니는 시장은 어떤 모습 일지, 재료 손질은 어떻게 하는지 등. 상상이 끊이질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