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례하겠습니다. 맛있게 드세요. 그리고 갈치 가시는 전부 손질되어 있으니 편하게 드실 수 있을 거예요.”
“아아, 네 감사합니다.”
아주 통통한 갈치가 뚝배기 중앙에 탁 놓여있다. 갈치 주변엔 무가 이쁘게 둘러싸고 있고 양파와 대파도 정갈해 보인다. 갈치의 중앙엔 홍고추와 청고추가 썰린 채로 올라가 있다. 아주 맛있는 갈치조림 냄새와 고춧가루의 색이 침샘을 자극한다. 우선 국물의 맛이 너무 궁금해서 수저로 국물을 뜨는 순간 실제로 침이 좀 흘렀다. 이런 경험이 처음이라 조금 당황스러움을 느꼈다. 나는 재빠르게 냅킨으로 닦아내고 다시 수저로 국물을 퍼내어 조심스럽게 입으로 가져갔다. 풍부한 맛이다. 갈치의 담백함이 잘 느껴졌고 고춧가루의 맛이 아주 좋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뒤에는 각종 채소의 깔끔한 맛이 마무리를 해주는 것 같다. 그다음으로 무와 야채를 윤기가 흐르는 쌀밥 위에 올려놓고 수저로 적당한 양의 밥과 함께 퍼냈다. 입천장에서 기분 좋게 뭉개지는 무의 식감 뒤에 흘러나오는 즙이 밥에 곧바로 스며들었다. 그리고 치아로 씹을 땐 씹을수록 단맛과 감칠맛이 풍부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대망의 갈치의 살 부분을 크게 발라내어 곧장 입으로 넣었다. 갈치의 결들이 잘 느껴졌고 굉장히 촉촉했다. 근래에 먹은 식사 중 가장 인상 깊었다. “아, 밥이라는 표현이 더 맞으려 나...” 하고 혼잣말을 뱉었다. 그리고 특이한 점을 하나 느꼈다. 분명히 엄마가 해준 갈치조림과 맛은 분명히 다르지만 자꾸만 엄마가 해주는 음식이 생각이 났다. 아 그리고 또 마지막으로 밑반찬으로 나온 나물도 정말 훌륭했다. 평소 워낙 밥을 빨리 먹기에 음식이 나온 지 10분이 체 지나서 않아 결제를 하고 나왔다. 7000원의 행복이다. 그리고 마침 주머니에 현금을 딱 맞게 가지고 있어서 더 기분 좋은 계산이었다. 그리고 푹푹 찌는 더위와 함께 도서관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도서관에 도착했다. 나는 습관처럼 자기 계발 도서를 펼쳐 내어 읽기 시작한다. 처음 삼십여분 까지는 나름 집중을 하지만 나와 거리가 너무 먼 이야기들 속에 싫증을 느낀다. 꼭 드는 생각이 있다. “왜 남의 성공한 삶을 보고 있는 걸까…”라고 중얼거린다. 하지만 딱히 떠오르는 건 없기에 전공 서적과 노트를 꺼낸다. 필통에는 주황색 연필과 작은 연필깎이 그리고 지우개가 있다. 형광펜 혹은 다른 색이 들어간 것 들은 왠지 모르게 정이 가지 않아서 사용하지 않는다. 그렇게 한참 시간을 보냈다. 오롯이 집중하진 않았지만 스스로에게 부끄럽지 않을 정도의 그런, 딱 그런 정도의 공부를 마쳤다. 중간에 휴대폰을 잠깐 들여다본 것을 제외하고는 앉아 있는 시간을 지켜냈다. 시계를 보니 어느덧 저녁이 다가와 있었다. 주섬주섬 서적과 필기구를 챙기고 도서관을 나서기 시작했다. 익숙하지만 차가운 그 공간에서 주뼛주뼛 사람들 틈을 나선다. 저녁이 되니 시원하고 기분 좋은 바람이 불어온다. 그리고 나는 마치 평소의 나의 일상의 한 부분인 것처럼 점심을 해결했던 식당에 들어갔다. 무의식 중 이곳에서의 저녁식사를 당연하게 그리고 있었구나 싶었다. 저녁에도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자리가 많이 채워져 있었다. 저녁식사와 안주 류 메뉴 두 가지가 벽에 하나씩 적혀 있었다. ‘간장 불고기’와 ‘간장 불고기전골’이었다. 그리고 다시 보니 메뉴를 적어 놓은 글씨체가 아주 정갈한 붓글씨의 궁서체였다. 수기로 적으신 것 같아 주위를 좀 더 둘러보니 실제로 계산대에 먹과 붓이 놓여 있었다. 멍하니 계산대를 지켜보고 있던 중 낮에 젊은 직원이 다가온다.
“안녕하세요. 또 오셨네요?”
“아, 네 안녕하세요. 네 맞습니다. 점심을 너무 맛있게 먹었나 봐요.”
“감사합니다. 그러면 식사메뉴로 준비해 드리면 될까요?”
“아, 네네 부탁드리겠습니다.”
나를 알아봐 준 이유 때문일까? 나도 모르게 젊은 직원을 관찰하게 되었다. 첫째로 눈에 띄는 것은 정확하고 명확한 걸음걸이다. 머릿속에 모든 것이 계산된 것처럼 군더더기가 없어 보인다. 나의 주문을 받고 주방으로 향하는 길에 손님들의 빈접시가 보이는 곳을 최선의 동선으로 지나간다. 부담스럽지 않은 친절함과 소리가 크진 않지만 듣기 좋은 어투로 반찬이 더 필요한지 여부를 묻는다. 반찬이 필요한 손님은 빈 그릇을 치운 뒤 새로운 그릇에 내어주고, 반찬이 더 이상 필요 없는 손님에게는 그릇을 정리한다. 그리고 음식이 나오는 시간에 대한 타이머가 있는 것처럼 딱 맞춰 주방으로 향하고 능숙하게 음식을 테이블로 옮긴다. 나는 평소 음식점에서 하는 일은 별 것 아니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깊고 유심히 관찰을 하다 보니 그 안의 세계를 조금이나마 경험하게 되었다. 그저 단순 노동 이라고만 생각했었다. 무언가를 깊게 들여다보는 것이 오래된 책을 펼치는 것 같았다. 매일 들여다보는 것이 책인 것에도 불구하고 저 직원이 일 하는 모습을 보고 오래된 책을 펼치는 것 같다는 생각에 잠시 헛웃음이 나왔다. 그리고서 가방에 있는 취업에 관련된 책들과 자기 계발 도서를 들여다보게 되었다. 소중하다고 생각하던 것들이 무의미하게 느껴지는 것은 단순한 기분 탓일까. 갑자기 힘이 쭈욱 빠진다. 에라 모르겠다. 그냥 맛있는 간장 불고기가 어서 나의 식탁 위로 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고 생각하는 그 순간. 직원분이 들고 오는 저 뚝배기는 무조건 나의 간장불고기라는 것을 직감했다. 아니 확신했다. 보글보글 끓는 소리가 왜 이리도 귀에 잘 꽂히는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