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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들국화 Oct 12. 2024

마음속 방화로 인한 공허함의 방

2. 가게 직원


많은 것을 내려놓은 채 흘러가는 시간을 가끔은 덤덤히, 또 많은 날은 애석하게 보냈다. 컴컴한 것이 날 찾을 땐 검게 물들었고 떠오르는 태양 앞에서는 밝아지기 위해 무던한 노력이 필요했다. 사실 나에겐 마음속 방화로 인한 공허함의 방이 생겨났다. 나는 그 범인을 찾기 위해 괴로운 나날을 보낸다. 그리고 좁은 틈에 살아야 할 이유들을 억지로 밀어 넣는다. 그럴 때면 꼭 “끙끙” 소리가 그 방 안에서 메아리처럼 울려 퍼진다.  


 뜬눈으로 밤을 지새웠다. 기분이 썩 좋지 않다. 요즘 들어 기분의 격차가 묘하다. 취직을 해야 하는데 의욕이 전혀 생기지 않는다. 침대 위 나의 몸은 오른쪽을 향해 있고 정면에는 어질어진 테이블이 눈에 띈다. 그리고 노트북의 충전기가 빠져 있었는지 전원이 꺼져 있다. 노트북 오른편에는 어제 주문해 먹은 배달음식의 잔해가 널브러져 있다.(갈치구이 정식) 나는 작은 한숨과 함께 “고약한 냄새.. “라고 뱉는다. 피로감에 절어 있는 몸을 무게 중심과 반동을 이용해서 움직인다. 화장실을 가기 전에 문 옆에 걸려있는 전신거울을 확인한다. 피부에 또 새로운 뾰루지가 올라왔다. 그리고 후다닥 화장실로 향한다. 화장실 청소를 해야 하는데 오랫동안 미루어 두었다. “청소를 할까?, 아니다.” 옷을 훌렁 밖으로 던져내고 샤워기 손잡이를 위로 올린다. 보일러를 켜는 것을 깜빡했다. 아주 찬 물이 나의 얼굴과 몸을 덮친다. 급하게 물을 끄고 큰 한숨을 뱉는다. 하루의 시작이 아주 좋다. 물이 묻은 채로 터벅터벅 보일러 전원을 켜고 돌아왔다. 평소엔 즐겨 듣는 노래들을 틀어 놓고 흥얼거리지만 오늘은 도저히 기분이 나지 않아 그냥 샤워를 마쳤다. 수납장을 열고서 아주 크게 소리를 지른다.(악!!!!!) 수건이 하나도 보이지 않는다. 그렇다. 빨래를 하지 않았다. 더 이상 한탄에 쓸 체력은 없기에 무기력한 모습으로 꽤나 오래 서 있었다. 이십여분 정도 서 있었나? 더운 날씨라 그런지 몸이 마르긴 했다. 속옷과 반팔 반바지를 입고 큰 검은색 가방을 메고서 냉장고에 있는 우려 놓은 보리차를 컵에 따라 마신다. 그리고 문을 나섰다. 창문을 열어 두어서 인지 문이 “쾅!” 하고 세게 닫힌다. 


 나의 발걸음은 동네에 있는 작은 도서관으로 향한다. 아주 뜨거운 햇살에 금방 땀이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흐르는 땀을 닦아내지 않은 채로 길을 걷던 중 코가 반사적으로 반응하는 음식 냄새가 나기 시작했다. 분명히 생선 조림이다. 어제 갈치구이를 먹었음에도 불구하고 먹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아주 자연스러운 걸음으로 냄새의 출발지를 찾아갔다. “킁킁.” 소리를 내며 가게 앞에 도착했다. 그곳은 시간의 흔적이 아주 잘 보이는 밥집이다. 나는 조심스럽게 무거운 나무 문을 밀어서 입장했다. 점심이 조금 지난 시간이었는데도 불구하고 아직 식사를 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이 보인다. 나는 가장 구석에 빈자리에 착석했다. 제작된 메뉴는 찾아볼 수 없었다. A4용지에 오늘의 메뉴 갈치조림만이 적혀 있다.‘갈치조림’을 바라보고 있는 도중 젊은 직원이 다가온다. 


“오늘 식사는 갈치조림만 준비되어 있는데 괜찮으세요?”

“아, 네. 그걸로 주세요.”

“네. 감사합니다.”

“아, 저기요. 그럼 점심  메뉴가 매일 바뀌는 건가요?”

“네. 맞습니다. 그날 아침 장을 보면서 좋은 재료로 준비하고 있습니다.”

“아아.. 네 감사합니다.” 


 직원과의 짧은 대화 이후 나는 가게를 관찰하기 시작했다. 이곳은 정말 말 그대로 시간의 흔적이 잘 보이는 가게라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왠지 모를 생명력도 느낄 수 있었다. 가게 내부에 있는 원목 테이블이나 의자는 오래되어 보였지만 아주 우뚝 솟아 살아있는 소나무처럼 느껴졌다. 위치가 아주 조금이라도 움직인다면 이질감이 느껴질 것 같다. 누가 보아도 아주 평범하고 일상적인 공간이지만 그런 풍경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이번에는 식사를 하는 손님들의 모습들이 눈에 띈다. 아직 유치원생 정도로 보이는 남자아이와 삼십 대 초반으로 보이는 모자지간 은 엄마가 양념을 물에 씻겨 아들에게 먹여준다. 그리고 머리가 조금 벗어진 오십 대 정도로 보이는 아저씨는 구부정한 자세로 휴대폰으로 뉴스를 시청하면서 식사에 집중을 하고 있고, (볼륨이 많이 컸다.) 대학생 같아 보이는 젊은 커플은 음식 사진을 찍는 것에 아주 열정적이다. 문득 “굉장히 다양한 사람들이 식사를 하고 있네..”라고 조용히 뱉었다. 그리고 벽지의 색감 때문인지 또 눈을 돌리게 되었다. 본연의 색은 잘 모르겠지만 지금 내가 보고 있는 벽지의 색은… 색은… 잘 모르겠다. 하지만 왜 인지 모르겠지만 눈이 간다. 벽지를 둘러보던 중 아까 의 젊은 직원이 갈치조림을 가지고 오는 것을 보고 수저통에서 수저와 젓가락을 꺼냈다. 하지만 그 갈치조림은 나에게서 조금 떨어져 있는 또래 같아 보이는 여성분에게 전달되었다. 그리고 곧바로 나의 갈치조림이 식탁 위로 올라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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