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하염없이 시간은 흘렀고 몇 날, 몇 달을 지나 계절에 변화가 느껴지는 온도와 습도가 다가왔다. 가게주인과는 더 가깝게 지내며 서로의 알 수 없었던, 각자의 인생 이야기에 대한 부재에 대해서 많은 대화를 나누었다. 돌아가신 할머니와 대화를 나누는 것 같았다. 한없이 편안하고 부드러웠다. 그러기에 또 불안했다. 가게주인은 조금씩 활기를 잃어가고 있었다. 그것은 마치 태양이 빛을 잃어가는 것 같아 보였다. 완벽하고 강인한 존재이지만 영원한 것이 없다는 것을 실감하는 기분이다. 그러기에 나는 더욱 힘을 내기 시작했다. 그의 강인한 불의 심지를 나에게 심는다는 생각으로 하루하루를 보냈다. 여전히 불안과 두려움은 존재했지만 나를 곧추세우니 스스로가 높아졌다. 그 높이가 높아질수록 불안과 두려움은 시선에서 점점 멀어져 갔다. 나는 일을 하는 동안에는 최선을 다해 몸을 움직였다. 그리고 틈틈이 나는 시간에 연필을 종이 위에 이리저리 옮기기도 했다. 그리고 삶의 경험을 바탕으로 내가 선호하는 것과 비 선호하는 것을 분리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둘 다 사랑하기 위해 노력했다. 왜냐하면 두 가지 모두 ‘나’ 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또 시간은 기다림 없이 흘러갔다. 손에 잡히지 않는 시간의 속도는 어느새 완연한 여름이 온 것 인지 강렬한 햇살이 내려앉아 있고, 그늘막에 있으니 바람은 아주 시원했다.
“이제 슬슬 반팔 티셔츠를 입어도 되겠어.”
“그러게요 정말. 풀들의 생명력이 대단해 보입니다 안 그래도 여름의 색을 좀 그려보고 있습니다.”
“자네 요새 들어 그림을 그리는 횟수가 점점 늘고 있구먼.”
“조금은 예술가 같아 보이나요?”
“보기 좋아. 자네가 누군지 보이기 시작했어.”
“감사합니다 어르신. 요새는 정말 홀가분한 기분으로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고맙네.”
가게주인의 고맙다는 말에 말을 이어갈 수 없었다. 그것은 분명한 시한부의 말투였기 때문에. 나는 도대체 무슨 마지막 말을 건넸어야 했을까? 그 어느 날 어르신의 댁에서 맥주를 더 마셨다면 어땠을까? 훗날 그곳으로 맥주를 여러 개 챙겨간다는 농담을 건넸다면? 아직도 후회가 된다. 얼마나 눈물을 쏟아냈는지도 모르겠다. 왠지 모르게 나를 기다려준 것 같다. 그리고 어르신만이 나에게 마지막을 남기고 떠났다. 언제 구입했는지 가늠할 수 없는 색이 바랜 줄노트에 오래된 글씨체로 남겨진 편지. 사실, 이것을 편지라고 해야 하는지 잘 모르겠다. 쪽지 같기도 하다. 하지만 그런 것 들을 정의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나의 낡고 따뜻한 친구가 남긴 소중한 마음 한 장은 우리가 항상 함께 녹차를 마시며 대화를 나누던 테이블 위에 가볍게 툭 놓여 있었다. 나는 그 자리에 서서 적지 않은 시간 동안 과거를 회상하는 시간을 보냈다. 이 시간의 흐름에 대하여, 희비의 찰나에 대하여, 아주 찰나 같은 현재에 대하여, 만남과 이별에 대하여, 그리고 예측할 수 없는 먼 미래에 대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