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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들국화 Oct 05. 2024

좋은 어지러움

나는 쉽사리 대답을 할 수가 없었다. 머릿속이 어지러웠는데 술기운 때문인지 생각이 많은 탓 인지 알 수가 없었다. 나는 수많은 선택 속에서 기분 좋게 결정하는 것이 없다. 하지만 마음 깊은 곳에서 어떤 일렁거림이 느껴진다. 어떤 변화의 징조가 아닐까? 아주 작고 희미한 기대감이 별빛처럼 느껴진다.  


“글쎄요. 지금 당장 선택해야 한다면 어려운 일이 되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용기를 얻었습니다. 신중한 고민을 시도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래, 그렇게 하도록 해. 사실은 말이야 이미 자네도 눈치를 챘겠 지만 말이지. 얼마 전 다녀온 병원 결과가 그리 좋지가 않아. 물론 당장 오늘내일하는 것은 아니지만 말 일세. 나 또한 현명하고 신중하게 삶을 마무리해야 하는 선택의 갈래길에 놓여 있다네. 첫째로는 자네를 더 알고 싶었어.” 

“저는 꼭 술이 없어도 언제든 환영입니다.”

“정말 재밌는 친구야. 내 걱정을 앞서하는 것 인가?”

“아니요, 술은 맛이 없으니까요.”  


우리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가게 바로 옆에 위치한 가게주인의 댁에 모셔다 드리고 집에서 맥주 한 잔을 하자는 권유를 정중하게 거절했다. 그리고서 터 벅 터 벅 집을 향해 걸어가고 있다. 오늘처럼 긴 하루가 인생에서 있었나 싶은 하루이다. 오늘은 더 이상 아무 생각을 하고 싶지 않다. 피곤함으로 인하여 마음에 발걸음은 급 해졌고 나는 빠른 걸음으로 20여분을 걸어 집에 도착을 했다. 그리고 그대로 침대에서 눈을 감았다.  

어김없이 밝아 온 아침. 오늘은 가게의 고정 휴무 날이다. 둘이서만 운영을 하기 때문에 하루는 가게를 닫을 수밖에 없다. 그 편이 월급도 높고, 나는 딱히 쉬고 싶은 마음이 크지 않기에 오히려 좋은 조건이었다. 뜬 눈으로 침대 위에서 시간을 더 보낸다. 점심때가 되면 간단히 세수와 양치만 한 뒤 모자를 눌러쓰고 녹색 클래식 자전거를 타고 집 근처 일본식 라멘 가게로 향한다. 돼지사골 육수로 끓인 진한 육수가 특징이다. 거기에 삼겹 차슈와 양파, 파, 어패류 가루가 함께 나온다. 염도 또한 높아서 자극적인 한 그릇이지만 왠지 쉬는 날 먹지 않으면 힘이 나질 않아서 꼭 챙겨 먹는다. 라멘을 먹고 나면 음악을 들으며 동네 산책을 한다. 아주 선선한 바람이 잘 느껴지고 그 바람을 타고 흔들리는 여러 녹색들의 속삭임에 기분이 좋아진다. 나는 어떠한 대상을 들여다보고 느끼는 것을 좋아한다. 그래서인지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던 것 같다. 아, 어느 날 재미있는 경험을 한 기억이 있다. 나는 본래 아스팔트를 좋아하지 않았다. 그러던 그 어느 날 자전거를 타고 어딘가를 가야 했던 그날, 내리쬐는 햇살이 너무 아름다워 보여서 멍하니 들여다보고 있었다. 차들은 적색 신호에 맞춰 아스팔트 위에 진열되어 있었다. 그 풍경을 함께 몇 분을 보고 있으니 주황색을 품어낸 아스팔트마저도 그림 같아 보였다. 나는 그 풍경을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나는 볼 일을 서둘러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 그 풍경을 열심히 화폭에 옮겼다. 그런 이유로 나는 천천히 오래도록 또 여유롭게 시간을 보내는 것이 더 좋아졌다. 하지만 시간은 무심하기도 하다. 기다림 없이 흘러가기에. 나는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이곳저곳 사유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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