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가게주인으로서 가게를 운영하는 법을 배워 나갔다. 나를 도와줄 식구도 한 명 생겼다. 나에게 여러 질문을 던진다.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잘 모르겠다,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는 둥. (문득 나의 모습이 떠올라 픽 하고 웃었다.) 나는 천천히 이야기하자고 했다. 시간이 갈수록 나의 머릿속은 맑아졌고, 또한 분명해졌다. 발 끝에는 항상 불안과 고통이 희미하게 존재했지만 두려움의 크기는 점점 작아져 크게 느껴지진 않는다. 가게 직원과 함께 아침 일찍 시장을 나선다. 상인들에게 힘찬 목소리로 먼저 인사를 건네고 재료들의 상태를 잘 관찰한다. 그리고 마음에 드는 녀석들을 손가락으로 짚고 값을 치른다. 크기가 아주 크고 한 눈에도 달아 보이는 무, 색이 잘 나와있고 아삭아삭해 보이는 배추, 생으로 먹어도 맛있을 것 같은 양파, 알이 큰 아주 연한 노랑의 마늘 등을 좋은 값에 구입했다. 크게 다를 것 없는 일상들을 깊게 관찰하며 작품으로 옮기기도 한다. 특히 가게가 자주 등장한다. 오래된 테이블과 의자를 자세히 보면 사람들이 자주 닿은 부분에 변질되는 부분이 있고, 또 손님들이 고장 낸 것 부분을 수리한 흔적들도 보인다. 그런 부분들을 나는 조금 크게 그린다. 최대한 따뜻한 터치와 라인들을 사용하고, 색상들은 무채색에 가깝지만 어느 부분에는 연한 노랑, 주황색도 섞기도 한다.
그리고 나의 낡은 친구와 함께 했던 테이블과 의자는 초록의 들판 위에 덩그러니 놓여 있고 아주 따뜻한 해가 비추어 그림자가 지어져 있는 그림으로 그려내서 가게 안에 걸어 좋았다. 그 그림의 장소를 자세히 보면 술에 취해 흘린 맥주도 있고, 녹차 가루도 떨어져 있다. 빈 접시도 덩그러니 놓여 있는데, 아마도 ‘스페셜 양지수육’을 먹고 남긴 접시일 것이다. 하늘은 파랗다. 시원한 흰 바람도 찰랑 불어온다. 그림의 뒤에는 “내가 사랑하는 모든 것들.”이라고 적어만 놓았다. 연필로 적어내서 시간이 흐를수록 지워지거나 번질 수도 있겠다. 하지만 나는 연필이 좋다. 사용할수록 짧아지는 것도 좋고, 그려낸 것들이 시간의 영향을 받아 흐려지는 것도 사랑스럽다. 어느 날 관람한 영화에서 이런 대사가 나온다. “과거에 대한 향수는 현재의 대한 부정이다. 현재가 고통스럽기 때문에.”이런 류의 대사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 당시 난 한참 동안 깊은 고민에 빠졌다. 나는 오래된 것을 사랑하는데 또 과거의 삶들을 나의 이상으로 삼고 있는데. 그렇다면 나는 현재가 고통스럽기에 오래된 과거의 것들을 향수하는가. 지금은 이렇다. 누군가에게 향수라는 것은 그런 것이 구나. 하지만 나의 향수는 온전히 나의 것이구나.
여전히 세상은 빠르게 흘러가고 있다. 하지만 더 이상 좇을 생각을 하지 않는다. 이것은 포기가 아니다. 나의 속도와 나의 세상을 살아갈 것을 스스로 결정한 것이다. 언젠가 꿈에 나는 망망대해 위 작은 노를 젓고 있었다. 그렇게 한참을 노를 젓고 있을 때 저 멀리 따뜻한 빛이 나를 비추었다. 나는 영문도 모른 체 그 빛을 향해 노를 저었다. 그리고 도착한 곳엔 넓은 들판과 따스한 햇살 그리고 시원한 바람이 불었다. 그리고 나는 기분 좋은 걸음과 조금의 불안감을 동반한 채로 걷고 또 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