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들국화 Oct 29. 2024

창작극 'The Big Bath'

 저는 영화 보는 것도 꽤나 좋아했습니다. 보았던 영화를 전부 다 기억하진 못 하지만 왓차피디아에서 별점 평가한 영화가 770개 정도 있습니다. 어느 시점부터 더 이상 평가를 늘리진 않았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주위를 둘러보니 저보다 더 많은 영화를 보고 좋아하는 분들도 정말 많더군요. 이렇게 영화를 보다 보면 자연스레 생기는 호기심이 있는 것 같습니다. '내가 연기를 하면 어떨까?' 연기를 하고 싶다는 충동이 생기는 것이죠. 내가 좋아하는 장르에 좋아하는 배우가 멋진 연기를 선보인다면 보는 것만으로도 전율을 느낍니다만 그것을 내가 경험할 수 있다면 더 큰 것을 느낄 수 있진 않은지에 대한 궁금증이요. 7~8년 정도를 고민했습니다. 아주 작은 마음부터 서서히 키워나갔죠.


 27살에 그 충동은 풍선처럼 펑! 하고 터져버렸습니다. 더 이상 그 속에 담아둘 수만은 없는 지경에 다다랐고 어머니를 설득한 뒤 일을 그만두고 같은 고등학교 후배이자 친구인 동생이 운영하는 조그마한 연기학원으로 향했습니다. 아직도 생생한 첫 수업 전 날. 방의 불을 꺼놓고 아무것도 모르면서 처음 해보는 연기 연습을 열심히 하였던 기억이 있습니다. 정말 설레었고 소중한 순간으로 기록되어 있어요. 다음 날 도착한 학원에서 저는 새로운 인연들과 청춘의 나날을 보냈습니다. 다들 아르바이트를 하며 연기에 몰두하였고 매일같이 연기에 대한 토론을 하며 술에 취하면 각자 번갈아가며 연기를 보여주고 감탄도 하고 눈물도 훔치며 청춘의 시간을 음미했습니다. 이따금씩 느껴지는 작은 불안감은 뒤로한 채로요.


 연기를 배우는 1년 남짓한 시간은 인간에 대해 깊이 탐구하는 기회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너무 많은 이야기와 사정들 관계들 환경들. 이해하려고 노력할 수 밖에는 없습니다. 그것은 자연스럽게 주변인들에게도 투영되었습니다. 어렸을 적 오직 사랑받기 위하여  남 눈치를 보며 관찰하는 것이 아닌 인간의 본질적인 것을 추구했습니다. 뭘 좋아하고 싫어하는지에 대한 것이 아닌 '왜?'라는 물음표를 많이 붙였습니다. 사실 나와 다른 타인을 이해한다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비슷한 처지에 놓였다고 하더라도 각자의 인생의 출발선과 중간지점 그리고 현재까지 비슷한 점들도 있겠지만 그 반대의 경우가 더 많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그래서인지 저는 언젠가부터 이해한다는 이야기를 잘하지 않습니다. 관계에 있어 이해를 해야 할 것 같은 순간이 찾아오면 고민을 잘해보고 스스로 받아들일 수 있는지에 대해서 생각합니다.


 연기를 배우며 자연스레 영화를 더 자주 보게 되었습니다. 쉬는 날에 집에서 4~5편의 영화를 연속으로 본 적도 있어요. 깊게 보려고 하면 할수록 더 많은 것들을 보고 느끼지만 큰 혼란으로 번지는 날도 있습니다. 깊이를 알 수 없는 작품을 볼 때면 오히려 머리가 터질 것 같이 아프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럴 때일수록 더 궁금해집니다. 내가 모르는 세상. 그곳은 곧 내가 알아갈 수 있는 세상인 셈이죠. 그냥 보고 또 보고 책도 읽어보고 사람들과 많은 대화를 했습니다. 그렇게 반복되고 쌓이면 안 보이던 것들이 하나둘씩 보이기 시작합니다. 인물의 선택, 공간의 의미, 카메라의 목적, 감독의 의도 등 수많은 것들을요. 100퍼센트 그들의 목적과 의도를 알지 못해도 상관없습니다. 내가 본 것이 틀려도 괜찮아요. 우선 느끼는 것이 중요하다 여겼습니다. 알지 못하면 알려고 하면 되고 틀렸으면 바로잡으면 됩니다. 이런 작업은 내가 숨을 거두기 직전까지 곁에 두어야 하는 동반자입니다.


 그리고 서른셋에 제 공간에서 필연이라고 느껴지는 이들을 만나게 됩니다. 우린 각자 떨어져 오랜 시간을 보내왔지만 직감으로 서로를 느끼게 되었고 예정되었던 것처럼 만남을 이어나갔습니다. 그간 나누지 못했던 서로의 삶을 공유하고 현재에 대하여 토론하고 미래에 대한 꿈을 키워 나갑니다. 단순한 관계를 넘어서 자아실현을 동반하며 현대무용과 연극이 결합된 새로운 형태의 창작극을 4번의 올렸습니다. 우리가 가진 삶과 죽음에 대한 태도를 표현해 냈습니다. 함께 기획하고 극작을 하고 디자인하고 연습을 했으며 주변에게 알려 나름 성공리에 마무리했습니다.


 현재까지 큰 카테고리로 나누어 저의 전반적인 인생에 대하여 이야기를 들려드렸습니다. 이 글을 쓰기 시작하고 과거 여행에 대한 소중함을 느끼기도 합니다. 과정은 모두 다를 수 있지만 자기 자신을 위한 소중한 인생을 살아가고자 하는 목적은 비슷하다고 생각합니다. 다음 장에는 또 다른 미추 한 이야기를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이전 09화 비전공자의 그림 실력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