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시간은 빠르게 흘러갔다. 하루의 시간이 빨리 지나가면 내일을 기대하게 되었고 그런 날 들이 반복이 되었다. 그러던 여느 날과 다를 것 없었던 그날 아저씨는 왠지 모를 어색한 기운을 하루 종일 풍겼다. 어색한 말투와 행동이 이어졌다. 그리고 헤어지기 전에 나를 불러 앉힌다.
"얘 야, 사실 오늘 너에게 할 말이 있다."
“네. 아저씨 말씀하세요!”
"사실 아저씨는 고향에 가족들이 있단다. 하지만 사정이 있어서 따로 지내고 있었단다. 그런데 말이다. 이제 다시 돌아가야 해. 가족들과 다시 함께하게 되었어.”
“아… 네.”
“너에게 갑작스럽겠지만, 어쩔 도리가 없구나. 그래서 말인데 오늘은 몇 가지를 당부하고 싶은 것이 있어.”
“…네. 말씀해 주세요.”
“그래, 고맙다. 음… 어디서부터 어떻게 얘기해야 할지… 그래. 우선은 말이다. 인간은 혼자 살아갈 수 없단다. 우리는 관계를 할 수밖에 없어. 서로에게 크고 작은 영향을 끼치고 그것은 언젠간 분명히 거대한 결과가 나온다. 여기까지 무슨 말인지 알겠니?”
“네. 알 것 같아요.”
“그래, 좋다. 아저씨가 어렸을 때는 음식을 먹는 것조차 쉬운 일이 아니였어. 그저 살아있음에 감사했지. 그래서 더욱 서로를 돕고 나누었단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개인의 욕망이 커지면서 나눈다는 것이 줄어들고 있는 것 같구나. 그럴 때일수록 더욱 관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처음 만난 날 기억하고 있니?”
“그럼요. 어떻게 잊을 수가 있겠어요…”
“그 당시의 너와 지금의 너를 비교해 보렴. 이 아저씨가 느끼기엔 짧은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너에게 많은 변화를 느끼는데, 넌 어떻게 생각하니?”
“맞아요. 제 스스로도 느끼고 있습니다. 아저씨를 만나기 전에는 웃을 일이 거의 없었어요… 그저 하루하루를 흘려보내는 것이 전부였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분명히 살아가고 있다는 확신을 가지고 있습니다. 의지를 갖고, 의미를 찾아가고 있습니다.”
“아주 멋진 생각을 하고 있구나. 이런 것들이 관계의 영향이라고 생각한다. 이 아저씨도 여러 멋진 어른들에게 크고 작은 도움을 받았단다. 그것을 그저 나눌 뿐이야. 이런 마음을 전달하는 방법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상대방을 살피지 않고 나의 일방적인 호의를 베푼다면 그 마음은 잘 전달되지 않을 수도 있단다. 모든 일이 마음처럼 되는 것은 아니야. 그것이 아무리 좋은 의도와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한들 말이다. 그렇다면 반대로 상대방의 호의가 너에게 상처를 줄 수도 있다는 것도 알아야 하지. 그리고 ‘자기 자신’을 잘 알아야 한다. 본인이 어떠한 사람인지, 내가 무엇을 선호하고 선호하지 않는지, 나의 장점과 단점은 무엇인지.
“무슨 말인지 알 것 같으면서도 잘 모르겠 어요... 어떻게 하면 ‘자기 자신’을 알 수 있는 건가요?”
“좋은 질문이다. 우선 지금처럼 질문을 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지. 감이 도통 오지 않는다면 누군가에게 질문을 건넬 수도 있단다. 그리고 스스로에게도 질문을 하는 것이지. 내가 진정으로 무엇을 원하는지 남들의 생각을 따라가기보다는 나의 선택을 존중할 줄 알아야 해. 그리고 책을 읽는 것도 좋단다. 책에서 얻는 지혜는 너의 사고를 확장시키고 간접적인 경험으로 인해 현명한 선택에도 도움을 줄 수 있지. 이런 과정들은 많이 지루하고 따분할 수 있어. 하지만 이런 것 들을 사유하게 된다면 분명히 ‘너’ 다운 삶을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사실 인생에서 정확한 정답이 있다고는 할 수 없다. 내가 너에게 그 무엇 하나 강요할 수 없어. 하지만 이 이야기들이 너의 마음에 남는다면 시도해 볼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아저씨. 솔직하게 말씀드리면 요. 겁이 나요. 얼마 전까지 아저씨와는 아무 관계도 아니었지만, 사실… 아저씨를 아버지처럼 생각했습니다. 그것이 어떤 느낌인지 또 기분인지 모르지만 요. 저에게 아버지가 계셨다면 이런 게 아닐까 하고요. 그래서 아저씨가 해주시는 말씀이 좋은 이야기라는 것을 알고 있지만 듣고 싶지 않아요…”
“너에게 정말 미안하다. 정말 미안하다. 아저씨가 먼저 너에게 손을 건네고 이렇게 떠나가서 미안하다. 하지만 너를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단다. 그리고 내가 이렇게 급작스럽게 떠날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우리가 영영 못 보게 되는 것이 아니란 다. 지금처럼 곁에서 자주 못 보는 것뿐이야.”
“거짓말하지 마세요! 애초에 저 같은 고아는 어떻게 되던 상관없잖아요. 저는 버려지기 위해 태어난 것 같아요. 아저씨가 해준 음식 때문에 제가 잠시 이상해졌나 봐요. 저 갈게요.”
그렇게 나는 그곳을 곧장 뛰쳐나왔다. 가는 내내 눈물이 멈추질 않았다. 정말로 눈물이 앞을 가릴 수 있구나 싶었다. 소리도 이상하게 나온다. 한 번도 내 본 적 없는 이상한 소리이다. 하지만 그 소리가 귀에 다시 돌아오면, 나는 더 목놓아 울었다. 어디로 향하는지 조차 모른다. 그러다 발이 꼬인 것인지 돌 뿌리에 걸려 넘어진 것인지 모르겠지만 차가운 흙 땅에 몇 바퀴 굴렀다. 주변에 사람들이 있었던 것 정도까지만 기억이 난다. 그리고 아무렇지 않게 일어나 고아원으로 향했다. 나는 걷는 동안 땅만 보며 걸었다. 그러다 보면 지나가던 사람과 툭 하고 부딪히기도 한다. 어떤 때에는 차의 경적소리에 흠칫 놀라 고개를 든다. 큰소리가 들려오면 나는 고개 숙여 대충 죄송하다는 표현을 하고서 그대로 걸어간다. 고아원에 도착했다. 그대로 방으로 향하려 하는 나에게 글을 가르쳐 주시던 선생님이 다가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