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의자에 앉았다.
“창고에 먼지가 많이 쌓여 있던데 먼지 좀 털어낼까요?”
"조금만 쉬었다가 하자.”
“네? 이제 10분 정도 한 것 같은데요…”
"그래. 괜찮아.”
그 짧은 대화 뒤에 아저씨는 조용히 담배에 불을 붙이고 끝이 어딘지 모를 곳을 응시한다. 검은색 동공이 굉장히 컸는데 그 느낌이 마치 외로운 우주 같아 보였다. 어둠 속에 빛이 존재하고 넓이와 크기는 가늠할 수 없다. 조금만 더 보고 있다가 는 빨려 들어갈 것 같았다. 그런 일이 일어나기 직전에 아저씨는 담배를 다 태우고 또다시 따라오라고 하신다. 가게 안 쪽으로 들어가 보니 작은 부엌 (흡사 부엌과 비슷한 느낌이지만 묘하게 다르다.)이 하나 딸려 있었는데, 그 옆에는 또 조그마한 방이 하나 있다. 나를 조그마한 방으로 안내를 해주시고 아저씨는 부엌으로 향하셨다. 식기가 부딪히는 달그락 소리와 도마 위에 칼이 탕 탕 탕 내려치는 소리도 들렸다. 나는 바로 닭죽이 떠올라 심장이 두근두근 뛰었다. 또다시 '맛' 있는 음식을 먹을 수 있을까? 하는 기대감이 있었다. 잠시 후 무언가 가 보글보글 끓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고춧가루에 맵싸한 냄새와 간장의 달큰하면서도 시큼한 냄새 뒤에는 고등어의 비릿하고도 고소한 냄새가 퍼지기 시작했다. 그 냄새들은 잘 어우러져 침샘을 자극했다. 눈을 감고 후각을 가장 앞세워 예민하게 만들었다. 그러고 있자 하니 냄새에도 어떠한 색이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말로 형용할 수는 없었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색은 아닌 것 같기에. 한참을 눈을 감고 음미하고 있었는데 아저씨가 작은 양은 밥상에 고등어조림과 연기가 풀풀 나는 흰쌀밥 그리고 콩나물 무침을 가지고 오셨다. 아저씨는 말 수가 굉장히 적은 것 같다. 이번에도 밥상과 함께 “먹어라.” 이 한마디가 전부였다. 나도 조용히 나무젓가락을 들고 흰쌀밥을 먼저 적당하게 입에 넣었다. 밥이 뜨거웠기에 후후 불면서 식혔다. 그리고 밥을 다 씹기 전에 콩나물을 집은 뒤 입으로 가져갔다. 뜨거운 밥과 차가운 콩나물이 조화가 아주 좋았다. 밥은 살짝 질은 밥이었다. 수분기가 적당히 느껴졌고 씹을수록 단맛이 잘 느껴졌다. 콩나물은 절묘하게 데친 느낌이다. 치아에 닿는 느낌이 매우 좋다. 간도 호불호 가 없을 것이다. 나물 위에 뿌려 놓았던 깨가 고소한 맛으로 마무리한다. 꼭꼭 씹고 잘 삼킨다. 그리고 고등어조림에 있는 무를 먼저 맛본다. 양념과 고등어의 기름이 깊숙이 배어 있다. 두께가 조금 있어서 완전히 부서지는 식감은 아니었다. 씹는 맛과 잘 풀어지는 그런 식감의 중간쯤. 그리고 고등어 등살을 크게 한 점 밥 위에 올렸다. 뒤이어 곧바로 양파와 대파를 고등어 위에 올리고 수저로 적당한 양의 밥과 한 술 입으로 가득 넣었다. 그 맛은 나의 작은 인생의 경력 중에 가장 맛있는 한 숟갈이었다. 맛을 표현하고 싶지도 않다. 그저 가장 행복한 한입으로 남겨 두어야겠다. 이 맛있는 음식을 먹다 보니 아저씨의 음식 솜씨에 대해 궁금증이 생겼다.
"저기… 아저씨, 음식 만드는 건 배우신 건가요?”
“가게 개업 전에 백반집에서 일을 배웠단다. 아저씨 부모님이 운영하시던 식당이었지.”
“아, 음… 아저씨가 해준 음식이 너무 맛있어요. 태어나서 먹어 본 음식 중에 제일 맛있어요.”
“하하하! 근래에 들어 본 말 중에 가장 듣기 좋구나. 음식은 마음이 중요하 단다. 맛있게 먹어 줄 대상을 생각하면서 요리한다면 더 맛있는 음식이 나올 수밖에 없지.”
“저도 음식을 만들 수 있을까요?"
“당연하지.”
나는 순간 심장 박동이 빨라지는 것을 느꼈다. 내가 '무언가'를 할 수 있다는 생각을 처음 해냈기 때문이다. 잿빛 도화지 위 물에 젖은 수채화 물감이 한 방울 떨어진다.
"아저씨, 청소를 더 열심히 할 테니 청소가 끝난 뒤 음식 만드는 법 좀 알려주시면 안 될까요?”
"그러면 2,3일 가지고는 안 되겠는데?”
"괜찮아요!” 나는 대답했다.
그날 이후로 나에게 변화가 일어나는 것을 천천히 느낄 수 있었다. 가장 먼저 이 세상에 내가 혼자가 아님을 느꼈다. 아주 차가운 땅 위에 홀로 서 보냈던 시간들이 무색해진다. 아저씨가 함께 서 있다는 상상만으로도 온기가 느껴진다. 그리고 얼굴에 표정이 점점 다양해진다. 고아원 아이들과 보내는 시간도 즐거운 때가 늘어났다. 어설픈 웃음도 지을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나는 매일 4시 25분에 구멍가게로 달려간다. 매일 별 다를 게 없는 시간을 보낸다. 가장 먼저 주변을 쓸고 가게 내부도 한 번 더 쓸어낸다. 가판대에 먼지가 쌓여 있으면 먼지를 털어낸다. 그리고는 부엌으로 들어가 아저씨가 미리 준비해 둔 재료들을 함께 살핀다. 예를 들어 양파는 껍질이 깨끗하고 빛깔이 선명해야 한다고 한다. 무거울수록 좋은(아마도 속이 꽉 차 있다는 뜻인 것 같다.) 양파라고 하며 냄새가 강하지 않고 탄성이 있는 게 좋다고 한다. 이런 식으로 재료를 고르고 보는 법부터 시작을 한다. 재료들은 음식에 따라 써는 모양이 다르기도 하다. 넣는 순서도 바뀌며 조리 방법, 양념장 비율도 천차만별이다. 나는 부엌에 있는 기분이 참 좋다. 여기저기를 둘러보아도 식자재 혹은 식기들이 여기저기 자리를 차지하고 있고, 크게 숨을 들이쉬면 각 재료들의 향이 흘러 들어와 충분히 맴돈다. 달달한 냄새, 시큰한 냄새, 매큼한 냄새,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맛있는 냄새 등... 요리하는 것은 어느새 나의 일상이 되어 있었다. 재료를 이해하고 그 재료를 알맞게 다듬으며 과정에 맞춰 음식이 되는 일 들을 내가 스스로 하게 될 것이라고 전혀 생각해 본 적 없다. 일상이나 미래 같은 평범한 것 들은 나와는 전혀 상관없는 것 들이라 여겼다. 나는 언젠가 불이 꺼져가는 연탄을 보면서 나와 같다고 생각했다. 잿빛에 온기를 잃어가는 모습이 나의 감정이 메말라 가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피어나는 연탄. 스스로 열을 내고 그 따뜻함을 누군가에게 나누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