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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들국화 Nov 06. 2024

어른

 그 후 묵묵히 나를 바라보던 아저씨는 따라오라는 한마디만 뱉고서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그 순간 아주 짧은 시간 동안에 안정감이라는 것을 느꼈다. 왜 인지 모르게 무섭게만 느껴지던 아저씨의 큰 몸이 나를 지켜주는 아주 단단한 방패 같았다. 하지만 그 기분은 삽시간에 휘발되어 겨울바람을 타고 사라졌다. 왜냐하면 나는 나의 잘못에 대한 책임을 지러 가고 있기 때문이다. 꽁꽁 얼어붙은 땅은 나를 더욱더 비참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고아원으로 가자는 아저씨는 아무 말 없이 걸어 가게에 도착했다. 아저씨는 의자 하나를 내어 주셨고 따뜻한 물도 가져다주었다.  그리고 아무 말 없이 할 일을 시작하셨다. 진열된 물건들을 정리하기도 하였다. 그러던 중 과자 두 봉지가 툭 떨어졌다. 반사적으로 돕고 싶었으나, 나의 상황을 인지하고서 행동의 욕구를 멈추었다. 아저씨는 그렇게 한참을 나의 존재를 잊은 듯이 행동하였다. 손님들이 다녀 가기도 하였고, 창고를 몇 번이고 다녀왔다. 그렇게 긴 침묵을 깨는 아저씨의 한 마디. 


“배는 안 고프냐? "

나는 의아했다. 그리고 사실 배가 많이 고팠지만 솔직하게 대답할 수 없었다.

"아니오. 괜찮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

“정말 배가 안 고파? "

“네. 괜찮습니다, "

“괜찮은 게 아니라, 배가 고픈지 안 고픈지가 궁금하구나. "

이 상황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도저히 배고픈 것을 솔직하게 대답할 수 없었다.

"정말 배가 고프지 않습니다. “

아저씨는 조용히 미리 끓여 놓았던 것 같은 닭죽을 두 그릇 데워 왔다. 

“먹어라. “  


 나는 영문을 모른 체 조용히 나무 수저를 들었다. 그리고 찰나에 많은 생각들이 스쳐 지나갔다. 나의 그릇된 행동, 날 두고 떠난 고아원 아이들, 얼굴조차 기억이 나지 않는 부모, 너무 가혹한 겨울 속 나의 생일들... 잿빛에 얼음장 같은 기억들은 조그마한 상자 속 가득 채워져 있구나 싶었다. 그것을 상상하고 있자 하니 참 답답했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인지, 내가 앞으로 무얼 할 수 있을지 등 질서 따위는 찾아볼 수 없는 형태다. 그에 비해 닭죽은 굉장히 따뜻하다. 색도 하얀 미색에 당근과 대파도 있어서 이상하게 화려해 보이기도 했다. 수많은 밥알 들은 묘하게 질서 정연 해 보이는 게 나의 모든 것과는 대비되는 것들이다. 나는 닭죽 앞에서 초라 해진다. 

 

“사내자식이 깨 작 깨 작 먹는 모습이 아주 보기 좋다. "

“천천히 먹고 있어요… 감사합니다. 맛있어요. "

“남기지 말고 다 먹어라. "

나는 머뭇거리며 대답한다.

“저를 어떻게 하실 건가요? "

"뭘 어떻게 해? 방법이 없는데. 앞으로 시간 날 때마다 가게로 와서 청소나 좀 해라. 과자 그거 몇 봉지 얼마 안 하니까 서너 번만 나와. “ 


나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고 말없이 닭죽을 입에 넣기 시작했다. 안도감이 들었다. 청소 따위는 매일 하는 일이기에 어렵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때문에 마음이 푹 놓였다. 나의 죄에 대한 벌을 면 한다는 것이(경찰서 혹은 고아원에 알리지 않은 것.) 이 기뻤던 것 같다.   


“저... 그러면 내일부터 나오면 될까요? 아, 그리고 자유시간은 오후 네시 반부터 여섯 시까지 에요. "

"그래. 곧장 이리로 와. “ 


 그렇게 나의 일생일대 가장 기나 긴 하루가 지나갔다. 나는 몸을 웅크리고 양팔로 나의 몸을 감싼 체 고아원을 향해 걸었다. 긴장이 풀린 탓인지 유난히도 강한 추위가 느껴졌다. 고아원 입구에 들어서자 나를 두고 떠나갔던 아이들이 애써 빠른 뜀걸음으로 달려온다. 그들은 나를 걱정하는 듯한 말투와 눈빛을 보내며 이것저것 질문을 던졌지만, 나는 아무런 대화도 하고 싶지 않았기에 “잘 끝났어. “라는 한 마디만 던지고서 방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바닥에 얇은 이불을 펼치고 베개를 머리맡에 던졌다. 그리고서 알맞게 그 위에 안착했다. 닭죽의 포만감과 끝이 보이지 않던 하루의 끝을 실감하고서는 깊은 잠에 빠졌다.  


 다음 날 아침 평소보다 일찍 눈이 떠졌다. 온몸은 근육통으로 인하여 불편한 감이 있었다. 하지만 마음은 다른 날 보다 더욱 잔잔한 느낌이다. 나는 가장 먼저 이불 정리를 하였다. 곱게 접은 뒤 이불을 보관하는 장롱에 가장 아래에 딱 맞춰 올려놓았다. 그다음은 세면대로 향하여 아주 차가운 물을 얼굴에 흠뻑 뿌렸다. 그래야만 맑은 정신으로 하루를 시작할 수 있을 것 같기에. 다른 아이들은 이제야 하나 둘 일어나기 시작한다. 대부분은 바로 정신 차리지 못하고 이불 위에서 게으름을 피우고 있다. (사실은 평소의 나도 저 들과 같은 모습이다.) 다들 기상 후 이불 정리가 끝난 뒤에는 아침 식사를 한다. 식당에서 옹기종기 모여서 식사를 시작한다. 오늘 메뉴는 조금은 식은 보리밥과 묽은 시금치 된장국, 데친 두부, 김치가 나왔다. 이곳 에서의 식사는 대체로 살기 위한 음식들이다. (이 것은 단지 나의 주관적인 생각이다.) 당연히 감사한 마음으로 먹고 있지만 그렇게 맛있다고 할 수는 없다. 그때 문득 어제 먹은 ‘닭죽’ 이 다시 떠오른다. 어제는 복잡하고 복합적인 심정으로 맛을 음미하지 못했으나 지금 음식과 대비가 되었다. 닭죽은 굉장히 따뜻했고 어떠한 정성이 느껴졌으며 가장 중요한 것은 ‘맛’ 있었다. 아주 이쁜 미색에 색이 조금 빠진 당근과 풀이 죽은 대파에서 나오는 단맛은 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렇게 아침식사가 끝나고 각자 먹은 식판과 식기를 설거지한다. 그다음으로 각자 맡은 구역의 청소를 시작한다. 나는 운동장으로 쓰레기를 주우려 나갔다. 그때 마침 하얀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많이 가벼운지 아주 천천히 떨어진다. 결정이 안 보일 정도로 작은 눈. 떨어지는 눈을 기다렸다. 그렇게 나에게 가장 가까워진 눈을 향해 손을 내밀었고 그 눈은 나의 손바닥 정 가운데로 살포시 떨어진다. 아주 조금 차가웠다. 그리고 초를 셀 수 없을 정도로 빨리 녹았다. 그 녹은 눈은 금세 기분 좋게 흡수되었다. 


 그렇게 하루 일과로 시간을 보내고 시계를 보니 자유시간 5분 전이었다. 나는 주변의 눈치를 조금 살핀 뒤 걷는 것도 뛰는 것도 아닌 속도로 구멍가게로 향했다. 눈은 전 보다 더 굵어졌다. 결정이 보이는 눈도 있었으며 내리는 속도는 아까 전의 곱절은 되는 것 같았다. 내 머리와 어깨, 가슴, 허벅지 등에 조금씩 쌓인다. 바로 녹지 않는 눈을 흘깃 쳐다보고서 그 하얀 것이 오늘 유난히 아름다워 보여서 그냥 두기로 했다. 그렇게 나는 구멍가게에 도착했다. 아저씨는 내가 시간을 지키는 것을 확인하려는 것 인지 모르겠으나 앞에 나와 담배를 태우고 계셨다. 그리고 청소도구가 있는 위치를 알려 주신다며 따라오라고 하셨다. 가게 입구를 정면을 바라보고 왼쪽으로 가게를 따라 돌아가면 뒤편에 조그마한 창고가 하나 있었다. 그 안에는 각종 잡동사니가 있었다. 기다란 싸리 빗과 커다란 쓰레받기 가 보였다. 그리고 한눈에 보아도 고장 난 것 같은 갈색의 라디오, 먼지 쌓인 고동색의 나무의자. 짙은 팥 색의 커다란 고무대야. 등등 온갖 잡동사니로 가득하였다. 구석에는 거미줄도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아저씨가 깔끔한 성격은 아닌 것 같다. 이 창고도 시간이 난다면 정리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차가운 청소도구를 양손에 쥐고 가게 주변을 쓸기 시작했다. 아주 작은 쓰레기들이 떨어져 있다. 솔직히 말하자면 5분 안에 끝낼 수 있었지만 모종의 민망함에 시간을 조금 늘려서 청소를 하였다. 더 이상 쓸어낼 게 보이지 않게 되었을 때 아저씨를 찾아가 청소할 곳을 더 알려 달라고 하였다. 그리고 대답하는 아저씨. 

의자를 하나 꺼내 오며. 


“여기 잠깐 앉아 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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