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호숫가, 초록의 숲 속에 로제 할아버지는 홀로 살고 있었습니다.
고요한 숲길을 거닐던 어느 날 '끼로 끼끼'하는 소리가 들려오는 소리를 따라가 보니 황새 한 마리가 풀숲에 있었습니다. 가만히 보니 한쪽 다리에 상처가 나 있었지요. 그래서 날 수도, 걸을 수도 없어 울부짖고 있었던 것입니다.
할아버지는 황새를 조심스럽게 안고 오두막 집으로 와서 상처에 약을 바르고 붕대로 감아 주었습니다. 그리고 먹이를 구해다 주며 정성껏 치료를 해 주었지요. 이렇게 여러 날이 지나니 하얀색의 멋진 날개를 활짝 펴고 붉은색의 긴 다리를 뽐내며 날을 수가 있었습니다.
할아버지는 너무도 기뻤지요.
"그래. 잘 가라. 앞으로는 다치지 말고."
날아가는 황새에게 손을 흔드는 할아버지의 눈에는 눈물이 맺혔습니다. 황새도 얼른 날아가지 않고 할아버지의 머리 위에서 뱅뱅 돌더니 천천히 가버렸습니다.
황새가 떠난 오두막은 몇 해 전 할머니가 세상을 떠났을 때처럼 할아버지에게 쓸쓸함을 가져왔습니다.
그런데 며칠이 지난 어느 날 오두막을 나와 하늘을 쳐다보던 할아버지는 깜짝 놀랐습니다. 키가 큰 나무 위에 황새가 둥지를 짓고 있는 것입니다. 분명히 다리를 고쳐준 그 황새였습니다.
너무도 반가웠지요. 할아버지는 매일 나무 위를 쳐다보며 미소를 지었습니다.
그렇게 여러 날에 걸쳐서 집을 짓고는 그곳에서 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던 어느 날 보니 수컷 황새가 날아와서 정답게 지내는 것이었습니다.
할아버지는 암컷에게는 '루비'. 수컷에게는 '사파이어'라는 이름을 지어주고 매일 이야기도 하며 행복해했습니다.
그런데 한 동안 루비가 보이지 않는 것입니다. 사파이어는 열심히 둥지를 들락거리는데 말입니다. 할아버지는 걱정이 되었지만 높은 나무 위에 올라갈 수도 없어서 안타까웠지요.
걱정스러운 날들이 한 달 남짓되었을까요?
루비가 둥지 밖을 내다보는 것입니다. 할아버지는 너무도 반가워서 눈물이 났습니다.
"아이고 루비야, 그동안 아팠었나 보구나."
할아버지는 다시 황새 부부와 이야기하며 평온한 날들을 지내고 있었지요.
아니,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할아버지는 눈을 크게 뜨고 입을 다물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둥지에서 아기 황새 네 마리가 루비와 함께 할아버지를 쳐다보고 웃고 있는 듯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아니 루비야, 그동안에 아기를...." 할아버지는 기쁨에 눈물이 났습니다.
루비는 알을 품고 있느라 날지 않고 있었던 것입니다. 황새는 33일 동안 알을 품어야 아기가 태어나는 것을 할아버지는 생각도 못했던 것이지요.
할아버지는 식구가 많아진 황새 가족을 위해 나무아래에 먹이를 놓아주면 어떻게 알았는지 사파이어가 가져다 아기들에게 먹이는 것이었습니다.
아기 황새는 엄마의 보호아래 행복한 나날을 보냈지만 태어난 지 55일 정도 되면 엄마 곁을 떠나곤 합니다.
엄마는 몹시 슬펐습니다. 아기 황새도 처음에는 엄마 곁을 떠나기가 두려웠지만 하늘을 훨훨 날아보니 새로운 세상이 신기해서 즐거운 날들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얼마쯤 지나니 아기 황새들은 엄마, 아빠가 그리워졌습니다.
그래서 엄마의 둥지 주변에 집을 짓고 살았지요.
그러다 보니 루비와 사파이어는 여러 해에 걸쳐 수십 마리의 가족을 거느리게 되었고, 이곳은 황새의 마을이 되었습니다.
할아버지는 매일매일 즐거웠습니다. 황새 가족들이 분주히 다니며 놀기도 하고 날개를 활짝 펴고 춤을 추는 것이 마치 로제 할아버지를 기쁘게 하려는 모습 같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호수에 아침 안개가 부옇게 피어오르고, 햇살이 숲을 깨울때 할아버지도 상쾌한 아침을 맞이하려 일어났습니다. 그런데 어디선가 아련히 새의 다급한 소리가 들리는 듯하였어요. 할아버지는 불안한 마음으로 급히 오두막의 문을 열고 나갔습니다.
마당에는 루비가 쓰러져 있고 그 곁에서 사파이어가 울부짖고 있는 것입니다. 마치 할아버지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것 같았어요. 놀란 할아버지는 부리나케 가서 루비를 안아보니 어찌 된 일인지 루비는 움직임이 없었습니다. 이미 죽은 것이었습니다.
사파이어의 슬픈 눈망울은 마치 할아버지를 원망하는 것 같아보였지요. 할아버지는 어찌할 바를 모르고 허둥허둥 루비를 안고 있었습니다.
슬픔에 젖은 할아버지는 루비가 살던 둥지의 나무 아래에 루비를 묻어 주고 예쁜 들꽃으로 덮어주었습니다.
그러는 동안에 사파이어는 그 곁을 떠나지 않고 있었지요. 슬픈 모습으로.
숲의 모든 새들도 그날은 날지도 않고 노래도 부르지 않았습니다.
그 이후 사파이어는 매일 루비의 무덤을 지키기라도 하는 것처럼 찾아와서 주변을 걷기도 하고 낮게 날기도 합니다. 어느날에는 들꽃을 물고 와서 무덤위에 놓아 주기도 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루비야, 네가 없는 세상은 왠지 아름답지가 않구나. 그 따스하던 햇살도 서늘해지고, 너와 함께 날아다니던 푸른 하늘도 온통 시커먼 먹구름만 가득하단다. 초록빛의 숲은 퇴색된 나뭇잎이 매일 우수수 떨어지고 있어. 너의 따스한 온기가 없는 둥지는 가고 싶지도 않아. 너와 사랑을 나누던 그날들만이 내 기억 속에 남아 나를 지탱해가고 있단다. 영원히 잊지못할 루비야, 나도 네 곁에 함께 묻히면 우리 다시 사랑할 수 있을까?'
사파이어의 눈에는 언제나 눈물이 그렁그렁 합니다.
* 이 글은 유럽의 어는 마을에서 있었던 일을 참고로 엮은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