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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호영 Mar 16. 2022

그리움

 내가 아홉 살 까지 살았던 동네와 집은 수십 년이 지난 지금도 눈앞에 선하게 펼쳐지는 그리운 곳이다.

 그 아늑한 동네의 가장 위쪽에 자리한 우리 집은 넓은 안마당의 화단에 예쁜 색깔의 백일홍과 빨간 달리아, 작은 채송화, 봉숭아 등이 아름답게 피어있었다. 그리고 분홍과 노란색의 분꽃은 저녁때가 되면 핀다고 했다. 아마도 분꽃은 해님보다 달님을 좋아하나보다. 아니면 ‘수줍음’의 꽃말처럼 낮에는 수줍어서 오므리고 있는 걸까?

 저녁에는 할머니가 봉숭아물을 들여 주셨다. 손가락에 매어놓은 봉숭아꽃이 빠져 버릴까봐 잠을 설치기도 했지만, 다음날 아침이면 눈을 뜨자마자 빨갛게 물든 손톱이 신기해서 자꾸만 보았다. 그 빨간 손톱은 자라지 않기를 바랐다. 

  장독대가 있는 뒤 곁은 경사진 나지막한 산으로 이어지다가 담장이 막았었다. 그 담장 아래에 자그맣고 까만 장난감 쇠솥을 걸어놓고 밥을 하는 나의 부엌 놀이터가 있었다. 햇빛이 따사롭게 내려앉는 호젓한 곳이었다. 밥상을 차려 누구에게 대접하고 싶었을까?

 비가 오는 날에는 장독대 아래로 생긴 아주 작은 개울에  종이배를 띄우며 즐거워했다. 그 종이배를 타고 한 번도 가 본적 없는 강을 지나 넓고 넓다는 바다로 가는 꿈을 꾸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겨울에는 처마에 달려 있던 투명하고 끝이 뾰쪽한 고드름도 아스라이 눈앞에 어른거린다. 더러는 얼음과자라도 되는 양 먹어보기도 했다. 

 대문을 열고 나가면 커다란 나무 그늘아래에 납작하고 큰 돌이 여러 개 놓여있어 꽃잎을 따다 작은 돌멩이로 콩콩 찧어 색색의 떡을 만들기에 적당한 곳이었다. 

 사랑채 뒤에 있는 넓은 마당에는 가을 이면 떨어지는 반질반질한 감나무 잎으로 동무들과 마루에 앉아 소꿉놀이를 하며 깔깔대기도 했다. 무엇이 그리 재미나서 초롱한 웃음으로 사랑채의 할아버지가 내다보시고 미소 짓게 해 드렸을까? 

 그 뒤쪽으로 오솔길을 따라 올라가면 산등성이에 하얀 찔레꽃이 옹기종기 피어 있었다. 오롯이 나만을 기다리다 반기고 있는 것 같아 자주 가서 동무해 주었다. 작은 꽃들이 속삭이고 있는 것 같아 참으로 좋아하는 꽃이었다. 훗날에도 어쩌다 찔레꽃을 보게 되면 그때의 그 꽃인가 하며 하염없이 바라보곤 한다.

 대문 밖 왼쪽의 밭에는 보라색의 빤질빤질한 가지가, 또 옆의 밭에는 빨간 고추가 밝은 햇빛을 받아 반짝이며 예쁘게 달려있기도 했다. 


 동네 사람들은 우리 집을 대감 댁이라고 불렀다. 집에서 조금 떨어진 산에 아주 커다란 산소와 비석, 그리고 산소 앞에는 반들반들하고 넓적한 돌이 있어서 소꿉장난하기에 안성맞춤이었다. 어른들은 그 산소가 나의 증조부인 대감 할아버지의 묘이니 함부로 가서 놀이를 하면 안 된다고 했다. 그래도 대감이 무엇을 말하는지도 모르는 우리들은 양지바르고 편편해서 자주 가서 놀았다.

 여덟 살이 되어 학교에 가게 되었는데 집에서 한 참을 걸어가다가 개울을 건너야 했다. 아이들이 그 개울에 얼굴은 사람인데 몸은 오리와 같이 손가락과 발가락이 붙어 있은 여자 괴물이 산다고 했다. 특히 비가 오는 날이면 나온다고 해서 더 무서웠지만 한 번도 본적은 없다. 또 학교의 화장실에는 달걀귀신이 있다고 혼자 가기를 꺼렸다.   달걀귀신은 달걀처럼 조그말 텐데 어떻게 사람 목을 조를 수 있을까 궁금했다.

 담임 선생님은 항상 하얀 색 저고리에 발목이 보이는 검정 색 치마를 입었고 머리는 꼬불거렸다. 그 이름도 기억이 나는 예쁘고 조용한 선생님은 나도 커서 선생님이 되어야겠다는 꿈을 갖도록 했다. 

 어느 날에는 선생님이 오후에 조금 떨어진 중학교에서 또 수업을 하고 올 테니 나더러 한글을 모르는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으라고 했다. 커다란 검정 고무신을 신은 아이들이 글자를 익히는 데는 더뎠다. 그때의 교실은 쌀을 담는 가마니를 펼쳐서 깔고 그곳에 엎드려 공부를 했다. 한국 전쟁 이후의 어려운 시기라서 인가보다.

 언제인가는 밤에 비행기 소리가 요란하게 들리자 불빛이 밖으로 새어나가면 안 된다고 창호지로 바른 문에 담요로 가렸던 기억도 있다. 하얀색의 작은 등잔에 켠 불이 하늘의 비행기에 까지 보이기도 하였나보다. 바람이 없는데도 가물 가물거리는 그 애잔한 빛이 그렇게 멀리까지도. 

 인류의 역사에서 전쟁이라는 단어가 완전히 사라지는 날은 언제일까?

 학교에도 전기불이 없었던 것 같다. 웬 일인지 밖이 캄캄해지도록 선생님은 오시지 않았다. 충청도 면단위의 작은 학교는 여기저기서 귀신이 나올 것 같았다. 나무가 흔들리는 소리도, 이름 모를 새가 우는 소리도, 찍찍 거리는 쥐 소리도, 모두 한 번도 본적이 없는 귀신 소리가 아닌 가 했다.  귀신이 문을 드르륵 열고 들어올 것도 같은 으스스한 밤이었다. 그래도 마침 보름 쯤 되었는지 달빛이 환하게 창문 안으로 들어와 주어 우리를 보듬었다. 밤이 되었기 때문에 나는 선생님 집에서 잤다. 선생님은 왜 늦게 오셨는지, 다른 아이들은 어떻게 했는지는 기억이 안 난다. 

 그곳은 작은 집이었고 머리가 하얀 선생님의 어머니가 홀로 계셨다. 나는 그 할머니를 보자 뒷동산의 무덤가에 처음에는 자주 빛으로 피었다가 하얗게 세어버려 꽃도 아닌, 머리 숙인 할미꽃을 생각했다. 그리고는 매일 아침 경대 앞에서 검은 머리에 동백기름을 반지르르 바르고, 은빛의 비치개로 앞가르마를 반듯하게 갈라 고운 참 빛으로 빗어 쪽지는 우리 할머니의 모습과 비교되어 불쌍해 보였다. 


 그리움은 비가 처연히 내리는 날이나, 붉게 물든 석양이 산 넘어 가고 있을 때, 창가에서 날갯짓을 하는 하얀 나비를 볼 때에는 더욱 처절하게 다가온다. 

 천진난만 했던 어린 시절 동무가, 그리고 그들과 뛰어 놀다 쫓아가던 빨간 잠자리도, 풀밭위에서 바라보던 구름도, 달빛도, 찬란한 별빛도 그립다.

 그 앵두 같은 어린 시절은 장독 항아리 뚜껑위에 소복이 쌓인 눈처럼 포근함을 가져온다. 아련한 그 때는 두고두고 내 마음을 순화시켜 편안함에 안기게 한다. 

 오늘의 일상 또한 내일의 그리움이 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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