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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호영 Mar 15. 2022

오십년 전 ...

 ‘부임한지 겨우 이주일. 내게도 줄까?’

 내일이 추석이라 보너스 가 지급 될 것이라는 의외의 희소식이 아침 교무실에 날아들었다. 그래서 지금 교무실은 기다림에 화기(和氣)로 차 있는 것이다.

 드디어 수업이 끝났다. 그런데 아직도 보너스 가 들어있는 봉투는 보이질 않는다.

 성미 급한 한 남자 선생님이 참다못해  “정말 보너스 는 준답니까?” 라며 조금은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말했다. 

 그러자 좀 뚱뚱하고 여교사 중에는 가장 나이가 많은 노처녀 선생님이 “네, 지금 주 씨가 은행엘 갔습니다.” 하고 조금만 참으란 듯이 말했다. 

 그 소리를 듣자 평소에 웃기길 잘하고 동그란 눈이 항상  빛나는, 그리고 깡마른 남자 선생님이 “그럼 이렇게 합시다. 우리 내일이 추석도 되고, 또 보너스 도 준다니 나가서 우선 먹고 봅시다. 점심 값은 보너스 를 그리로 가져오라고 해서 주면 되지 않겠습니까?” 라고 했다. 

 오늘은 오전 수업만 해서 모두 도시락 준비를 안했기 때문에 배는 고프고, 은행에 갔다는 서무실의 주 씨는 빨리 와 주질 않아 지루하던 참에 기발한 아이디어를 제공했다. 선생님들은 만장일치로 학교에서 과히 멀지않은 조그만 음식점 이층에 자리 잡고 앉았다. 모두들 화안한 얼굴이었다. ‘아마도 보너스 에 대한 기대감 때문이리라.’ 

 허나 나는 여 선생님들한테 끌려오다시피 해서 오기는 했지만 (나도 보너스 라는 것을 받을 수 있다고 하 길래.) 마음은 아주 불안했다. 

 여기 앉아 있는 사람들한테는 다 주고 나만 안 줄때의 광경을 상상만 해도 얼굴이 붉으락푸르락 거리는 듯 했다. 이러한 내 속 사정을 헤아릴 수없는 아이디어 선생께서는 메뉴 판을 들고 모처럼 이 음식점에서 제일 비싼 런치 A를 먹자고 했다. 그러자 교감 선생님께서 “그렇게 비싼 것은 누가 사준다고 할 때 슬쩍 시키고, 오늘은 비프스테이크로  주문하는 것이 어떻습니까?” 해서 모두 그렇게 했다. 

 그 대신 식사 후에 다방에 가기로 하고, 즐겁게 식사를 마쳤다. 나를 제외하고는….

 조금 후였다. “그런데, 주 씨는 왜 안 오지요?” 어느 선생님의 말이었다.

 그때서야 잊었던 것을 생각해낸 듯이 혹시나 안 오면 어쩌나 하는 엷은 불안이 감도는 것 같았다. 집에 가지고 갈 돈 보다도 우선은 이미 먹은 음식 값을 그 돈에서 내야 할 텐데 하는 걱정이 앞서는 듯이 보였다. 

 그러자 아이디어 선생께서는 책임이 자신에게 돌아 올 것을 염려하는 것처럼 재빨리 “선생님들, 걱정 마십시오. 우리 교감 선생님께서 여기 이렇게 버티고 앉아 계신데 뭘 그러십니까? 안 그렇습니까, 교감 선생님?”하며 교감 선생님을 쳐다보았다.

 “허허허…” 반가움이 아닌 억지웃음이 역력한 교감 선생님이다.

 그렇게 모두 속으로는 소화도 안 될 판이었을 때, 그 기다리던 주 씨가 나타났다.

 수십의 눈은 그의 손을 거쳐 얼굴을 훑었다. 심부름만 하는 그 이지만 무척 난처하다는 표정에 빈손이다. 교감 선생님과 한참이나 무어라 주고받더니 그는 나가버린다.

 대강 짐작은 갔지만 막상 교감 선생님께서 “은행에서 돈이 안 나오겠답니다.” 고 하자 모두들 어이없이 교감 선생님의 애써 미소하는 얼굴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럼, 여기는 어떻게 나갑니까?” 잠시 후에 아이디어 선생께서 이 난처함의 근원이자기 인양 어눌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이어서 “그럼 이렇게 하지요. 먼저 사정 이야기를 하고 모두 나가니 보다는 우리가 먼저 나간 뒤 교감 선생님께서 주인하고 잘 알고 계시니 외상을 말씀하시도록 하면 어떨까요?” 했다. 

 교감 선생님의 의사도 묻지 않고 자기가 당면한 문제를 해결해야 할 의무라도 있는 것처럼 떠듬떠듬 말했다. 또, 기발한 아이디어로 이 예기치 못한 상황을 모면 하려는 그의 모습은 우리 모두에게 우울함을 주었고, 빨리 이곳을 빠져나가고 싶은 마음 뿐 이었다. “뭐, 좋도록 합시다.” 울며 겨자 먹기의 애처롭기 까지 한 교감 선생님.

 들어갈 때의 활짝 피었던 모습은 다 어디로 사라지고, 모두들 소나기라도 쏟아질 듯   한 하늘과 같은 표정이다. 그러나 그와는 반대로 나의 속마음은 불안이 가셨다. 

 각기 무슨 골똘히 생각할 것이라도 있는 듯이 고개를 숙이고 계단을 조용히 내려왔다. 모두 들 쓴 웃음에 다방에 가자던 말은 다 잊어버린 듯 덤덤하게 인사를 나누고 헤어졌다. 오는 길에 나는 같이 오던 김 선생한테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럼, 보너스 는 이제 안 주는 건가요?”

 “아니요, 주기는 줄 거예요.” 라는 대답은 어쩐지 꿈 많은 새내기 동료에게 더 실망을 안겨주고 싶지 않은, 그리고 선배로서 보이고 싶지 않은 치부를 들켜버린 창피함을 무마하려는 것 정도로 들렸다. 그의 표정에는 허탈함이 지나가고 있었다.

  조그만 소문도 금 새 파다하게 퍼지는 작은 지역에서 선생들이 단체로 외상 밥을 먹어야 하다니. 그  마무리를 책임지고 말았던 교감 선생님의 비감이 마음 아프다.

 ‘제기랄, 해가 못나오게 하는 저 심술궂은 구름 탓일까?’ 나는 속으로 중얼거리며 애매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그러나 시커먼 먹구름은 잔뜩 빗물을 품었지만 그 위의 하늘은 평화로워 보였다. 저 멀리에는 햇살이 숨어있었다.


 ‘세월은 흐르는 물과 같다.’ 더니 어느덧 오십여 년 전의 일이다. 

 ‘피천득’님의 글귀가 생각난다. 

 “30년 전이 조금 아까 같을 때 가 있다. 나의 시선이 일순간에 수 천 수만 광년 밖에 있는 별에 갈 수 있듯이, 기억은 수십 년 전 한 초점에 도달할 수 있는 까닭이다.” 그런 이치 때문일까? 반세기가 지난 일이 기억 속 에 생생한 것은. 그 사이의 ‘생활’에는 생각의 굴곡이 얼마나 많았던가.

 지금과 같이 신용카드라는 것도 없던, 봉급을 누런 봉투에 현금으로 받던 시절의 이야기이다. 한낱 웃음을 자아내는 그 옛날의 일이라기보다는 삭막한 현실과 맞닥뜨린  인생 수업의 시작이었다. 그 때 선배 교사들은 얼마나 씁쓸한 명절 전날의 귀가 길이었으랴. 아니, 어쩌면 만만치 않은 또 하나의 세상사 일 뿐이라며 바람에 휙 날려 보냈을지도 모른다. 새삼스레 가슴이 저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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